[박명기 기자의 e스팟]e스포츠 신발끈 제대로 매라

지난 주말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하남시의 검단산에 올랐다. 겨울산은 노처녀처럼 변덕이 심했다. 설핏 산마루에 해가 비추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온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덮이고 갖가지 눈발이 쏟아졌다. 또한 냉기를 품은 살벌한 칼바람이 귓등을 베고 지나갔다.

일행이 정상에 못미쳐 회군(?)을 결정했건만 이번에는 눈이 쌓여 길이 지워져 있었다. 갈림길을 잘못 찾아들어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땐 원래 목표였던 윗배알머리가 아닌 엉뚱하게 팔당댐 아래쪽이었다.

2006 스카이 프로리그 후기 결승전이 MBC게임의 승리로 끝났다. 오는 20일에는 MBC게임과 SKT가 그랜드파이널을 벌인다. 지난해 기업 프로팀이 11개로 늘어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겁다. 인천삼산월드 체육관에서 후기리그 결승전을 보다가 문득 설중산행 중 느꼈던 생각이 겹쳤다. e스포츠도 정해년 연초부터 길을 잘못 든다면 엉뚱한 곳으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e스포츠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일까. 스폰서 문제와 리그 일정 분리 및 조정일 것이다.

2006 시즌 프로리그 메인 스폰서는 팬택계열 스카이였다. 그런데 모기업 팬택이 워크아웃 상태에 돌입. 팀 매각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새 시즌 시작 전에 어떻게든 스폰서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지난해 열린 e스포츠 업계 워크숍의 결론인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기간의 완전한 분리’도 꼭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그동안 선수들과 팬들은 대진 짜기는 물론 1주일 내내 프로리그와 개인리그가 뒤섞여 열려 적잖은 불편과 혼란을 감수해야 했다. 축구의 FA컵처럼 정규리그 기간이 아닌 시기에 개인리그를 편성해 팬들의 혼란을 줄이고 11개 팀이나 창단한 굴지의 기업들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게 만드는게 진짜 프로다.

시즌 조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스포츠에서 ‘광안리’는 더이상 보통 명사가 아니다.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관객을 누르고 10만 관객을 동원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e스포츠의 최대 축제인 7월 부산 광안리의 빅매치를 전·후기 우승자가 맞붙는 ‘그랜드파이널’이 아니라 전기리그 결승전으로 치러지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최대의 빅매치는 최대의 팬이 모이는 장소에서 열려야 한다.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의 일정 분리와 함께 ‘광안리’의 전설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대타협의 자세가 절실하다.

지난해 프로리그는 방송사들의 입김에 휘말리고. 스폰서사의 주장과 협회 입장이 맞서 1달이나 늦게 시즌이 시작돼 팬들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주먹구구식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공인스포츠 종목이 되는 것도. 미래형이요 글로벌 콘텐트라는 목표와 자부심도 한낱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e스포츠가 일부 마니아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국민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 프로다운 선택만이 팬들의 사랑을 받는 지름길이다. 올해 e스포츠계가 길을 한 번 잘못 들어 엉뚱한 지점으로 하산하게 되는 겨울 산행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일간스포츠 2007.1.11자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