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윤 새 칼럼 연재...오타쿠로 진화하는 인간 오타쿠랄로피테쿠스

[자칭 성공한 오타쿠왕 '오타킹'으로 불리는 오카다 토시오 유튜브 채널. 사진=UC0FFHRF1mytLDhs6nxqGIQg]

강기윤 ‘오타쿠카페’1...오타쿠랄로피테쿠스(Otakuralopithecus)  "오타쿠라서 행복"

“오타쿠가 시장을 변화시킨다. 오타쿠가 시장을 창조한다.”

이는 일본 노무라연구소의 한 시장조사 책의 캐치프레이즈다. 2005년 조사 기준으로도 일본의 오타쿠 인구는 170만 명이다. 오타쿠 시장 규모는 4100억엔(한화 4조 2600억원)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소위 ‘오락실세대 아재’이자 한국의 ‘게임 오타쿠세대’다. 요즘의 이미지가 정제된 단어로 말하면 ‘레트로 게임키드’ 세대다.

태어난 곳은 1979년 경상남도 진주시이지만 부산으로 이사 왔다. 부산에서만 40여년을 살아온 부산토박이다. 다섯 살이던 1984년 처음으로 ‘오타쿠’로 진화를 시작했다.

그 계기는 1984년 당시 도시 번화가나 주택가 초중고교 혹은 대학교 주변에서 100미터마다 하나씩 영업 중이던 ’두뇌개발 게임장(=오락실)’ 덕분이다.

1984년은 양면적인 시대였다. 정치적으로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이면서 사회적으로는 외국문화 쇄국정책을 썼다. 동시에 일본에서 유행하는 제품들을 수입, 모방, 카피, 유통하여 내수시장을 육성시키던 때였다.

대학가에는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민주화운동 데모로 취루탄이 가득 찼다. 이 혼란한 시기였음에도 그에 반할 만큼 일본에서 수입된 놀이시설인 전자오락기(아케이드 게임기)를 가져와 성업 중인 곳도 많았다.

[1984년 필자가 오락실에서 처음 접한 게임 마이티봄잭( 테크모 1984 )]출처= https://gamelory.tistory.com/2130

필자가 살았던 곳은 부산 남구 대연동이었다. 부산은 일본과 무역이 가장 빈번했던 항구도시였다. 대연동은 경성대학교, 공업대학교, 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교만해도 20여군데가 밀집해 있는 교육 특구였다.

소위 말하는 ‘교육열 높은 부자동네’로 일본게임 및 만화, 잡지, 애니메이션 비디오 등의 수입품에 대한 접점이 넘쳐나던 동네였다.

필자는 1984년부터 약 38년간 이곳저곳 수많은 오락실에 구비된 다양한 게임들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성장했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기며, 어른들에게 불량청소년(?)으로 핍박받으면서도 취미가 결국 업이 되는 ‘테크트리’(Tech tree)를 밟아 게임업계에 입성했다.

이 경험과 이력으로 기성세대들이 가진 왜곡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이제 부모가 된 ‘오락실세대 아재’가 비로소 부모와 아들과 함께 할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의 ‘게임’으로 대표되는 오타쿠 세대이기 때문이다. ‘레트로’는 복고풍을 가리킨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복고주의다. 그렇다. 필자는 ‘레트로 게임키드’ 세대다.
 
 ■  ‘우주전함 야마토'를 보고 자란 일본 오타쿠 1세대...'신세기 에반게리온' 전승

그렇다면 오타쿠 어원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현재 오타쿠 시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일본 야노경제연구소(株式会社矢野経済研究所)의 2020년 ‘일본 오타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오타쿠시장’이란 오타쿠의 성지인 아키하바라 등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재화와 용역 및 서비스 등을 가리킨다.

이를 세분화하여 총 13개 분야로 분류하여 시장조사를 실시하니 애니메이션(만화), 라이트노벨(동인지), 프라모델, 피규어, 돌(인형), 철도모형(디오라마), 아이돌, 프로레슬링, 코스프레의상, 메이드(코스카페), 보컬로이드, 토이건(총기), 서바이벌게임(밀리터리) 등으로 구분된다.

2019년 ‘오타쿠’ 주요 분야별 조사 시장 규모 추이를 보면 13개 분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분야였다. 약 3000억엔(한화 약 3조1140억원)이었다.

그 다음이 아이돌 분야로 2610억엔(한화 약 2조7092억원)이었다. 그 밖의 11개 분야는 평균 100억엔 ~200억엔 규모여서 그 차이가 명확히 구분되었다.

이 조사 보고서를 보면 현재 일본의 오타쿠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오타쿠의 어원은 뭘까.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의 전 대표 오카다 토시오는 현재 자신의 오피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며 애니메이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카다 토시오의 말에 따르면 “일본 오타쿠 1세대는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1974)’를 보고 자라서 애니메이션 제작업계에 입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1980년대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오프라인 행사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모임이나 코믹마켓의 주축에서 사람으로 확대되었다”고 설명한다.

[ 2005년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저서 '오타쿠시장의 연구']

1990년대에는 1세대 애니메이션 오타쿠 출신의 감독들이 만든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이 크게 히트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자와 팬들 간에 ‘메시아’와 ‘추종자’ 형태의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해당 작품들은 오타쿠 팬들에게 ‘신성불가침’의 형태로 신격화되는 분위기를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극성 오타쿠 팬들의 선을 넘은 행동들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다. 초창기 사용되던 ‘오타쿠’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재해석이 시작되기도 했다.

 ■ 일본 오타쿠 시장의 형성과 영향력-일본 오타쿠는 170만 명, 시장규모 4조 2600억원

일본에서 오타쿠 시장조사는 2005년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오타쿠시장예측팀 저서 ‘오타쿠시장의 연구’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코믹, 아니메(애니메이션), 예능인, 게임, 조립PC, 자동차, AV기기, IT가젯, 여행, 패션, 카메라, 철도 12개 분야로 구분하여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2005년 조사 기준으로도 일본의 오타쿠 인구는 170만 명에 오타쿠 시장 규모 4100억엔(한화 4조 2600억원)으로 조사되었다.

책 표지에는 ‘건프라 런너’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사출품의 이미지와 함께 각종 오타쿠 분야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그려졌다. 캐치프레이즈로 “오타쿠가 시장을 변화시킨다. 오타쿠가 시장을 창조한다”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

이 소식은 한국 언론과 미디어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도 전해지면서 한국 오타쿠 세대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인터넷 상의 소수 서브컬처 마니아 커뮤니티처럼 겉으로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음지에서 숨죽이며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는 매년 다양한 신조어들이 생겨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 이슈와 오타쿠를 재조명하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오타쿠에 관련된 신조어들이 많이 생겨났다.

오타쿠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쳤다. 초기 애니메이션제작 업계 사람들을 부르던 것에서부터 ‘서브컬처 전반에 전문적인 수준까지 몰입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진화되었다. 

반대의 의미로는 보는 측의 이미지도 생겨났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분의 나빠지는 행동을 하는 오타쿠를 지칭하는(기모치와루이(気持ち悪い) + 오타쿠(オタク) = 키모오타(キモオタ=キモいオタク) 라는 단어도 생겨나게 되었다.    

[2019년 여대생살인사체유기 범인으로 체포된 게임 오타쿠.기분나쁜 오타쿠 라는 의미의 ‘기모오타’ 라고 보도됨] 출처 https://buzz-plus.com/article/2019/02/01/hirose-koichi-kimoota-news/

그 밖에도 오타쿠 생활이라는 의미의 오타카쓰(ヲタ活(おたかつ)라는 말이 있다. 오타쿠(ヲタク)와 활동(活動せいかつ) 의 합성어로 한국말로 바꾸면 ‘덕질’(오타쿠=오덕후=오덕=덕+질)이라고 부르는 정도의 단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재화 서비스에 주 수입원 대비 소비를 집중하는 행위로, 현재 일본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의 소비의 주체로서 혹은 기업들이 보는 소비자로서 어느 정도 상업적인 지위를 확보하며 생겨난 것이다. 

■ 한국 '폐인' 등장...오덕후->십덕후->건덕(건프라오타쿠) 등 ‘특정 소비 성공 삶’ 변화

그 시대의 특정 분야를 대표하는 언어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실제 어원의 발생적 의미와는 다르게 시대에 따라 ‘오타쿠’라는 단어는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초창기 의미는 퇴색되고, 나쁜 의미는 좀 더 순화되어 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정 사회적 사건이 발생될 때 그 의미는 때론 완전히 역전된다. 좀 더 세분화된 형태로 분류되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고 새로운 단어가 생성된다. 해당 단어에 익숙해지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초기의 의미조차도 희미해진다.

[오타카쓰 오타쿠 생활 굿즈 마켓]출처 https://www.hmv.co.jp/news/article/2002041001/

한국의 경우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의 PC통신 및 게임월드나 게임챔프 같은 서브컬처 월간잡지에서 일본의 오타쿠에 대한 소식이나 미국의 ‘너드(Nerd)’에 대한 소식을 간략하게 전하곤 했다. 

1997년 독일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쇼킹아시아’라는 비디오가 일본의 서브컬처 문화를 소개하면서 한국 PC통신에서 한동안 ‘오타쿠’라는 단어가 크게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 흐름에 따라 PC통신이나 초창기 인터넷에서는 ‘엽기’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 정제되지 않은 폭력, 살인, 자살, 사고 영상콘텐츠가 무분별하게 공유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2001년 ‘엽기적인 그녀’라는 황당한 제목의 영화가 대히트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서 PC통신이 쇠퇴하고 ‘IMF의 산타크로스’로 불린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이 한국에서 대유행을 하면서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대중화로 인한 정보의 홍수 속에 전세계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언어도 진화되었다. PC통신체와 귀여니 작가의 작품들이 유행하며 한글파괴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서브컬처 커뮤니티로부터 일본어 한국어 혼용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PC통신이나 인터넷 초창기 자주 사용되던 ‘엽기’ 같은 단어는 결국 거의 사어에 가까워졌다.

일본의 집단 괴롭힘 ‘이지메’에서 한국언론 미디어용으로 대체된 단어 ‘왕따’는 현재 ‘학폭(학원폭력)’의 순화된 버전으로 강등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1990년대 주류사회에서는 특정 문화에 과도하게 집착을 보이는 사람에 대해 열성팬, 내지 광팬, 혹은 죽돌이, 죽순이(한곳에 죽치고 앉아있는 사람) 같은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으나, PC통신에서는 주로 ‘폐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폐인은 ‘마니아’라는 단어로 대체되다가 일본서브컬처 커뮤니티 루리웹의 탄생과 집결로 인하여 일본어인 ‘오타쿠’라는 말이 보편화되었다.

소수 오타쿠들의 선을 넘는 사회적 이슈와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방송의 조명으로 ‘오타쿠’는 ‘오덕후’에서 ‘십덕후’로 악화되었다가 ‘십덕’‘오덕’으로 변화하더니 이제는 건덕(건프라 오타쿠), 철덕(철도 오타쿠), 성덕(성공한 오타쿠) 정도의 특정 소비계층을 대변하는 성공한 삶을 영유하는 사람의 단어로 역전되었다.

[20년이 넘은 한국의 비디오게임 커뮤니티이자 일본 서브컬처 오타쿠 성지 루리웹]

대신 새로운 멸칭인 ‘혼모노’ ‘찐’ 등의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면서 기존의 오타쿠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어느 정도 분화되고 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스스로 ‘오타쿠’라고 밝히고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지칭하며 글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변화에 따른 행운이기도 하기에 참으로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 "오타쿠는 ‘인정욕구’로부터 출발...‘하늘과 땅만큼’ 다양하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다양한 희로애락을 느끼하면서 살다보면 아주 드물게 운명 같은 만남 혹은 위안받거나 구원받는 느낌을 경험할 때가 있다.

특히나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다양한 인물, 예술, 종교, 분야에서 경험적 충격을 받게 된다. 특정인에 대한 과도한 애정,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느낌적 느낌’의 자기몰입단계로 들어서서, 섬세함과 집착의 경계에서 적정선을 달릴 때 보통 연인관계로 발전하거나 예술가가 되거나 신앙인이 되기도 한다.

[자칭 오타쿠 가수 데프콘. 출처 : 나무위키]

이와는 드물게 서브컬처 분야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집착이 발현될 때 일반인에서 오타쿠로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선을 넘어섰을 때 성공한 덕후가 되거나 실패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 ‘인정욕구’로부터 출발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라든지 유튜브, 트위치, 아프리카TV 같은 영상 서비스, 개인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같은 것들은 모두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개인의 인정욕구로부터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고 관심을 끌고 희로애락을 느끼고자 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정말 유명인에서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하늘과 땅만큼’ 크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SBS 방송프로그램 SOS에까지 소개되어 오타쿠 이미지형성에 나쁜 케이스가 되었다.]출처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12/read/11600904

필자는 당돌한 주장을 하고 싶다. “오타쿠로 진화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유전자적으로 집중력이나 몰입도가 높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환경적으로 주류에서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해방구로서 선택된 비주류 서브컬처계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집착을 가진 이들....

물론 전적으로 필자의 생각이다. 성공적 오타쿠가 되거나 실패한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수많은 갈림길과 과정 속에서 필자는 오늘도 행복한 오타쿠가 되고자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 게임 [드래곤 퀘스트] 오타쿠인 필자의 집. 사진=강기윤]
[10살 때부터 일본 패미콤 게임 드래곤 퀘스트를 플레이하며 자랐다. 사진=강기윤]

 필자는 본업이 요리사다. 하지만 역시 게임 오타쿠다. 앞으로 ‘레트로 게임키드 세대’로서 앞으로 지금까지 경험해온, 그리고 생각해왔던 ‘오타쿠’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펼쳐볼 생각이다.

 

강기윤은?    

본업은 요리사이지만 인터넷 게임커뮤니티에서 취미로 게임 관련 글,사진,영상,행사 등을 올리다가 게임업계로 강제소환 된 자칭 사회생활 잘하는 게임오타쿠.

XBOX360 Live System QA를 시작으로 게임관련 로컬라이징 검수, 영상제작, VR게임개발, 홍보, 마케팅, 비즈니스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광역계 적색마도사.
현 부산 ‘오타쿠육성대안학교’ 프로젝트 ‘사립타쿠티스학원’ 학원장.
현 PaiyangStyleStudio PD , 게임부산2호점 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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