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7 타뷸라 라사: 1년 만에 서비스 종료...엔씨소프트에 264억 소송

[리처드 개리엇]

[오리진 7 – 타뷸라 라사] 1년 만에 서비스 종료...엔씨소프트에 264억 소송

리처드 개리엇은 EA를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한 이후 2001년 E3 2001에서 당시 엔씨소프트(NCSOFT) 부사장으로 있던 송재경 부사장과의 만남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신작 ‘타뷸라 라사’ 게임 개발에 합류하는 계약을 맺게 된다.

게임의 개발은 리처드 개리엇이 새로 창업한 ‘데스티네이션 게임즈(Destination Games)’에서 진행하고 엔씨소프트는 유통 및 서비스를 진행하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리처드 개리엇은 새로운 게임 개발을 위해 이전 ‘울티마 온라인’의 개발팀 일부를 투입하여 ‘타뷸라 라사’ 게임 개발팀을 구성했다. 처음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한국과 미국의 합작이라는 것 자체도 흔하지 않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게다가 한국은 엔씨소프트라는 게임계 최상위 업체였고 미국은 전설의 게임 ‘울티마’의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이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게임 업계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타뷸라 라사(TABULA RASA)]

‘타뷸라 라사(tabula rāsa)’는 원래 ‘백지(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흰 종이)’라는 뜻이다. 글씨를 써넣는 명판이나 각판을 뜻하는 말이지만 스토아 학파의 존 로크(J. Loke)가 일체의 경험 이전의 인간의 정신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J.로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오류를 범하기 쉬운 존재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선악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온 환경 속에서 선과 악으로 나뉜다는 백지설(성무선악설)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이러한 형태를 ‘타뷸라 라사’라고 했다.

흔히 비교되는 사상가 루소와 존 로크 그리고 홉스는 비슷한 형태를 두고도 이를 다르게 해석했는데 그 중에서도 존 로크의 사회계약설은 현대적 의의에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타뷸라 라사(TABULA RASA)]

게임 이름인 ‘타뷸라 라사’의 본래 의미를 알아보면 엔씨소프트가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엔씨소프트는 기존에 ‘리니지’ 프랜차이즈를 통해 잘 알려진 회사로 ‘블레이드앤소울’이나 ‘아이온’, ‘길드워’ 같은 다른 라인의 게임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엔씨소프트 하면 ‘리니지’를 떠올릴 만큼 대표적인 게임이자 핵심 콘텐츠이었다.

엔씨소프트에서는 이를 두고 너무 하나에만 치중하는 듯한 모양새를 조금은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계속해서 새로운 프랜차이즈 IP(지적재산권)를 기획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게임인 ‘타뷸라 라사’였다.

‘리니지’에 버금가는 초대작 게임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리처드 개리엇을 영입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제작비용 또한 기존의 트리플A급 이상 가는 제작비용을 들였다는 것 또한 이를 증명한다.

게임의 주제 또한 SF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 있어 철저히 북미를 겨냥한 초대작 게임임을 밝혔다. SF와 메카를 다루는 게임들은 국내(한국)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는 시장인데 SF를 메인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게임 서비스를 국내에 한정 짓지 않고 북미를 주 시장으로 하여 세계적인 글로벌 게임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엔씨소프트는 잊고 새로운 게임 ‘타뷸라 라사’로 새롭게 거듭나고자 하는 백지부터 출발하는 각오가 게임 이름에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각오와 기대에 부응하듯이 게임 개발 초기에는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는 게임 진행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Tabula Rasa - Starr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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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뷸라 라사’는 2007년 11월 2일에 정식 출시되었다. 게임의 주요 내용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인류의 마지막 저항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정식 출시는 10월 19일이었지만 ‘타뷸라라사’의 ‘스타 롱(Starr Long)’ 프로듀서는 게임의 안정성과 원활한 진행을 위해 2주간 게임 내 안정성, 균형 등을 포함한 몇 가지 요소를 개선하고 테스터들이 게임 내 리고(Ligo)지역 테스트를 완료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발전적 변화를 이유로 출시일을 2주 연장했다.

스타 롱(Starr Long)은 ‘울티마 온라인’ 시절부터 게임 QA로 시작하여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리처드 개리엇과 함께 오리진 시스템즈의 주요 게임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인물이다. ‘타뷸라 라사’ 게임 개발을 진행할 때도 리처드 개리엇은 자신의 오래된 동료이자 믿을 수 있는 팀원으로 스타 롱과 함께했다.

세계 최초로 MMORPG라는 말을 알리며 ‘울티마 온라인’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 기본 시스템을 정립한 것으로 인정받는 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개발팀에 합류하여 새로운 게임 ‘타뷸라 라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연일 뉴스 기사에도 소개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타뷸라 라사(TABULA RASA)]

여기서 게임 족보를 다시 정리해보자. 세계 최초의 CRPG(Computer-RPG) ‘아칼라베스’를 만들며 후속작으로 ‘울티마’라는 시리즈를 개발했고, 그 ‘울티마’ 시리즈를 해보고 감명받아 ‘드래곤퀘스트’가 만들어졌고 ‘드래곤퀘스트’를 해보고 감명받아 비슷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파이널 판타지’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울티마’ 시리즈와 ‘드래곤퀘스트’ 시리즈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즐기고 자란 세대들이 국산 RPG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꾼 사람들이 많았으니 리처드 개리엇이 새로운 게임 개발에 합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게임 산업계에서는 엄청난 화두가 되었다.

‘타뷸라 라사’가 출시 즈음에는 개발 기간만 해도 벌써 6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니 사람들의 기대는 날로 더해갔고 출시를 2주 더 연장한다고 해서 크게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넘나들며 ‘리니지’라는 대작 RPG로 규모 면에서도 인정받은 한국의 엔씨소프트와 ‘울티마’와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 RPG의 기준을 만든 리처드 개리엇과 스타 롱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게임이라는 기대감은 날로 더해갔다.

이미 두 번이나 내용을 갈아엎으면서 출시 기일이 늘어나도 신 개념의 RPG를 표방하는 ‘타뷸라 라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출시 연장 2주 뒤 2007년 11월 2일 ‘타뷸라 라사’는 정식 오픈 서비스를 시작했다.

[리처드 개리엇(사진 왼쪽)]

하지만, 하지만, 새로 만들다시피 한 게임이었으니 내부적으로 불안정함이 남아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타뷸라 라사’는 2009년 2월 28일에 서비스가 종료되어 개발비 1000억원이 넘게 들어간 비용 중에 상당수를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대표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와 유명 게임 개발자인 리처드 개리엇이 힘을 합쳐 만든 게임이 출시 이후 분기당 18억 정도의 매출밖에 나지 않는 등 흥행 부진으로 기대를 밑도는 평가를 받으며 쓸쓸히 퇴장했다.

문제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실패로 엔씨소프트와 리처드 개리엇의 감정적인 문제도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타뷸라 라사’의 흥행 실적 참패와 함께 엔씨소프트와 리처드 개리엇의 관계는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액의 개발비를 투입하고도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난감한 건 양쪽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마지막 정리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깔끔하고 원만하게 정리되지 못했었는지 리처드 개리엇은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2400만 달러(약 264억 7440만 원)의 소송을 제기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리처드 개리엇 소송 기사(해외)]https://kotaku.com/richard-garriott-suing-ncsoft-for-24-000-000-5241911

리처드 개리엇은 ‘타뷸라 라사’ 흥행 실패 이후 엔씨소프트를 퇴사하면서 자신이 받은 스톡옵션(주식) 47만 주에 대한 권리 행사에 제한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리처드 개리엇은 엔씨소프트 북미 법인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을 해고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퇴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분명히 강제해고였다는 것을 밝혔다. 자진퇴사인지 강제해고였는지가 중요했던 이유는 리처드 개리엇의 엔씨소프트 자진 퇴사의 경우 스톡옵션의 권리 행사 기한이 90일에 제한을 받게 되고 정리해고일 경우에는 기한이 연장되기 때문이었다.

엔씨소프트에서 리처드 개리엇이 받은 47만 1335주의 배정 가격은 3만2130원이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의 흥행으로 15만 원대에 주식 시세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리처드 개리엇이 강제로 매각해야 했던 당시에는 5만~6만원대였기 때문에 리처드 개리엇은 47만 1335주를 6만 원 대에 장내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 시세가 15만 원대에 매각했더라면 무려 2배 이상의 시세 차익이 있었기 때문에 리처드 개리엇 입장에서는 수 백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 행사에 대해 소송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이를 두고 온전한 업무진행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와 소송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타뷸라 라사’의 흥행 참패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개리엇은 이미 4200만달러(약 520억)의 돈을 들여 우주 여행을 다녀오면서 국내에서는 ‘우주먹튀’라는 논란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돈은 오리진 시스템즈가 EA에 인수합병 될 때 매각 금액인 35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돈이다.

[오웬 개리엇-리처드 개리엇(오른쪽)]

https://www.pbs.org/newshour/nation/former-nasa-astronaut-owen-garriott-dies-at-88

리처드 개리엇은 어릴 적부터 동경해오던 그의 아버지 ‘오웬 개리엇’처럼 우주인이 되어 민간인으로서는 3번째로 우주에 다녀온 사람이 되었다. 리처드 개리엇의 아버지 오웬 개리엇은 스카이랩 3호의 승무원이었다. 1983년 우주왕복선 미션 STS-9에서도 활동했을 만큼 공로를 인정받은 우주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랐던 리처드 개리엇은 결국 그의 꿈을 이룬 것이다.

 다만, 모두가 해피엔딩이었어야 할 결과는 서로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렸는데 결과적으로 엔씨소프트는 ‘타뷸라 라사’ 흥행 실패로 15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손해봤다. 하지만 초기 리처드 개리엇의 영입으로 미국내 게임 산업계의 인맥을 활용하여 ‘리니지2’ 서비스를 북미 지역에 안착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의 대한 대가로 치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을 손해봤고 이 일로 인해 한때 엔씨소프트 위기설이 돌기도 했었다. 보통의 게임회사였다면 1500억원이 공중에 사라진 순간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이하고 경영진들이 대거 정리되면서 회사도 인수합병이나 폐업의 수순을 밟겠지만 엔씨소프트는 큰 상처를 입고도 당당히 버티고 이겨냈다.

[NCSOFT]검색엔진 주식정보

2020년 11월 22일 현재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주당 82만 8000원에 형성되어 있다. 시가 총액은 18조 1779억원이다. 당시 리차드 개리엇이 받은 47만 1335주를 현재 시세로 계산하면 3902억 6538만원이다. 당시 매각했던 금액보다 무려 10배가 넘는 금액으로 ‘타뷸라 라사’가 성공하고 그 후에도 계속 엔씨소프트와 리처드 개리엇이 지금까지 함께 했었다면 지금쯤 리차드 개리엇은 수 천억원의 자산가가 되지 않았을까?

엔씨소프트 퇴사 이후 리처드 개리엇은 ‘포탈아리움(Portalarium)’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울티마’의 영적 계승자라 칭한 ‘시라우드 오브 아바타: 포세컨 버츄스(Shroud of the Avatar: Forsaken Virtues)’를 출시했다. 하지만 별다른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포탈아리움’ 회사도 2019년 10월 ‘캣닙 게임스(Catnip Games)’에 매각되었고 2020년 9월 다시 ‘텍사스 콤프롤러(Texas Comproller)’에 매각되었다.

[SOTA(Shroud of the Avatar]

줄여서 SOTA라 불리는 ‘Shroud of the Avatar’는 2013년 3월 8일 공식적인 발표를 통해 킥 스타터에서 190만 달러(약 20억 9323만 원)의 모금을 통해 개발비를 모금해서 만든 게임이다. 그 이후 추가로 110만 달러(약 12억 1209만 원)의 개발비를 추가로 모금했고 최종 금액은 1230만 달러(약 135억 5337만 원)에 달했다.

‘울티마’의 재림이라던가 ‘울티마’의 영적 계승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받았다. 약 5년간의 개발로 2018년 3월 27일 출시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무료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SOTA 게임 개발의 총괄 프로듀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리처드 개리엇의 영원한 동반자 스타 롱(Starr Long)이 맡았다. 하지만, 출시 이후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새롭게 도입된 싱글, 멀티 플레이 기능들에 평가가 엇갈리면서 영화, TV프로그램, 음악 앨범, 비디오 게임 등 리뷰와 평가를 하는 ‘메타크릭틱(Metacritic)’에서 100점 만점 기준 58점을 받아 낮은 평가를 받았고 실제 게이머들의 평가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리처드 개리엇은 SOTA 이후 별다른 게임 개발에 대한 소식은 없지만 게임 쪽 일보다는 우주항공 및 역사 쪽에 활동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리처드 개리엇의 새로운 출시작 소식을 기다리며 아직 끝나지 않은 ‘울티마’의 전설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기를 기대한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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