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1 – 리처드 게리엇:울티마->드래곤퀘스트->드래곤퀘스트

[Owen K. Garriott]https://www.nytimes.com/2019/04/16/obituaries/owen-garriott-dead.html]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는 에닉스의 ‘드래곤퀘스트’에 감명받은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만들었고 그에게 감명을 준 ‘드래곤퀘스트’는 오리진 시스템즈의 리처드 게리엇이 만든 ‘울티마’라는 게임을 해보고 감명을 받은 호리이 유지가 만들었다.

이 모든 시작점에 ‘울티마’라는 게임이 있는 것이다. ‘울티마’는 리처드 게리엇이 만든 RPG로 이 게임을 만든 리처드 게리엇은 본명 ‘Richard Allen Garriott de Cayeux.’이 너무 길기 때문에 보통 ‘리처드 게리엇’으로 불린다.

리처드 게리엇은 ‘미국인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민간인’이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아버지 오웬 게리엇(Owen K. Garriott)이 스카이랩 3호 미션으로 59일간 우주에 체류했던 우주인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었다.

오웬 게리엇은 영국 출신의 과학자로 스카이랩 3호 미션에서 과학 조종사 역할로 우주선에 탑승했었다. 영국 출생이긴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해군 출신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공학 교수를 역임했다.

NASA의 우주인 프로그램에 합류하여 스카이랩 3호 미션을 수행한 후에 NASA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우주와 공학 관련 다양한 저서도 출간했다.

미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공헌한 공로로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412 국도 중에 ‘Muskogee’ 카운티를 통해 ‘Enid’시로 가는 US60, US64 및 US412 국도 구간에는 ‘Owen K. Garriott Road’라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지정되어 있다.

[D&D(Dungeons & Dragons)]https://www.drivethrurpg.com/product/116578/DD—asic-Set--Players-Manual-BECMI-ed-Basic

어린 시절의 리처드 게리엇은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랐고 그의 영향으로 리처드 게리엇은 우주와 물리학, 천체,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눈을 떴다. 리처드 게리엇도 아버지와 같이 영국 출신으로 1961년 7월 4일(우연의 일치로 미국의 독립 선언 기념일)에 태어난 리처드 게리엇은 부모와 형제 모두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테이블 보드 게임에 매료되어 매일 같이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지냈다.

리처드 게리엇이 푹 빠져 있던 ‘D&D(Dungeons & Dragons)’는 TSR(Tactical Studies Rules)에서 1970년대 출시한 RPG 시스템이다. TSR에서 출시한 D&D는 기존에 난립해 있던 판타지 세계관에 새로운 기준과 규칙을 도입하여 게임화한 것이다. 이것은 최초의 RPG로 인정받고 있으며 RPG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어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RPG에 영향을 준 게임 시스템이다.

리처드 게리엇 또한 학창시절 D&D에 빠져 지내면서 지냈다. 어린 시절의 리처드 게리엇은 그의 아버지 오웬 게리엇처럼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13세때 시력의 문제가 발견되어 비행 조종사로서의 자격 미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방황을 하게 되었다.

[D&D(Dungeons & Dragons)]

한참 예민한 사춘기의 나이에 평소에 존경하고 동경하던 아버지와 같은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은 어린 리처드 게리엇에게 크나큰 좌절과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을 보드 게임에 빠져 사는 것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에만 빠져 산 것은 아니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자신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창조자의 습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과 ‘D&D(Dungeons & Dragons)’의 열렬한 팬이었던 리처드 게리엇은 텍사스 휴스턴 교외에 있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교내 컴퓨터실에 있는 컴퓨터를 활용하여 BASIC 언어로 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게임의 모태는 D&D였다. 이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던 게임들은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무려 28개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다. 애플(Apple) II용 Applesoft BASIC으로 개발한 ‘아카라베스(Akalabeth)’라는 게임은 패키지 판매당 5달러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캘리포니아 태평양 컴퓨터(California Pacific Computer Co.)’에서 출시했다.

이런 게임은 자신들의 친구들이나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살 것이라는 리처드 게리엇의 예상과는 달리 리처드 게리엇 최초의 상용게임 아카라베스는 3만 장이 넘게 판매되었고 리처드 게리엇은 개당 판매 로열티 5달러 지급의 조건으로 15만 달러(약 1억 7077만 5000 원)를 받게 되었다.

[젋은 시절의 리처드 게리엇]https://eteknix-eteknixltd.netdna-ssl.com

리처드 게리엇은 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100시간 정도를 썼다고 했는데 당시 인터뷰에서 ‘고등학생이 100시간을 써서 번 돈(15만 달러)치고는 나쁘지 않다.’라고 했다.

게임의 출시 년도인 1980년 당시 15만 달러의 가치는 현재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금액인데 1980년 당시 시애틀과 그 주변을 포함하여 킹 카운티의 평균 집값은 미 연방 센서스 자료 기준 7만 1400달러(약 8128만 8900 원)였다. 현재 킹 카운티의 평균 집 값은 68만 달러(약 7억 7418만 원) 수준이다. 물론 단순히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재화가치를 산정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1980년 기준으로도 15만 달러는 이미 주요 도심지의 주택을 2채나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아직 10대 말기의 소년이었던 리처드 게리엇에게 15만 달러라는 거액보다도 그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게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자신감이었다.

후에 명작 시리즈로 거듭나는 ‘울티마’ 시리즈 역시 리처드 게리엇의 최초의 상용 게임이었던 ‘아카라베스’의 성공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카라베스’의 상업적 성공으로 리처드 게리엇은 게임 개발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시켜 주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첫 게임을 출시해준 캘리포니아 태평양 컴퓨터(California Pacific Computer Co.)에서 ‘울티마 I’을 출시하게 되었다.

‘울티마’ 시리즈 중에 첫 편으로 알려져 있는 ‘울티마 I’은 최초의 ‘울티마’이기는 하지만, 혹자들은 ‘아카라베스’를 ‘울티마 0’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아카라베스 게임은 리처드 게리엇 개인뿐만 아니라 ‘울티마’ 시리즈 전체에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게임이다.

‘아카라베스’에서 시작해서 줄곧 ‘울티마’ 세계에 등장하는 로드 브리티시(Lord British)는 그의 학창시절 별명이기도 하다. 영국 태생의 리처드 게리엇에게 친구들은 ‘브리티시’라는 출생지를 별명으로 불렀다.

 보드 게임을 즐겨하며 친구들에게 보드 게임의 해설자 역할을 자처하며 판타지 소설의 열렬한 팬이자 보드 게임의 마니아였던 그에게 ‘로드’라는 별명이 추가로 더 붙어서 로드 브리티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리처드 게리엇은 그 별명을 아주 맘에 들어 했다. ‘Lord’는 보드 게임에서 던전 마스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게임을 만들 때 제작-유통사였던 캘리포니아 컴퓨터에서 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개발자를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패키지에는 ‘designed by LORD BRITISH’라는 문구가 새겨졌고 리처드 게리엇은 울티마를 출시할 때도 본인의 본명보다는 로드 브리티시(LORD BRITISH)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풀네임은 ‘Lord Cantabrigian British’인 Lord British는 ‘울티마’ 게임의 세상에 존재하는 ‘소서리아(Sosaria)’의 왕국 브리타니아(Britannia)의 통치자 이름이기도 하다.

[Ultima 1 (designed by LORD BRITISH)]https://giantbomb1.cbsistatic.com

로드 브리티시는 게임 내 등장하는 왕의 이름이기도 하며, 그만큼 시리즈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이자 리처드 게리엇 본인의 별명이었고 본인의 또 다른 분신이었던 셈이다.

울티마의 세계에서는 ‘아바타(Avatar)’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울티마’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게임을 하는 게이머의 분신과도 같은 개념이다. 시리즈 1~3편까지는 어둠(암흑)의 시대라 하여 이때에는 ‘이방인(Stranger)’이라 불렀지만 계몽의 시대라 불리는 시리즈 4~6편에서 8대 미덕을 지키며 명성을 쌓은 이방인이 드디어 미덕의 화신 아바타로 거듭나게 된다.

아바타라는 용어는 게임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로 알게 된 분들도 있겠지만, 아바타는 본디 화신(化身)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종교적인 용어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의미로 게임업계에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85년 루카스아츠의 온라인 RPG인 ‘하비타트(Habitat)’라는 게임이었다.

1985년에 MMORPG를 개발한 것도 놀랍지만 ‘울티마’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 루카스아츠에서 먼저 사용했다는 점도 놀랍다. 물론 같은 년도에 출시한 ‘울티마 4’에서도 아바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현재 통용되고 있는 범용적인 의미에서의 아바타라는 의미는 루카스 아츠의 게임 ‘하비타트’에서 먼저 사용했다.

‘하비타트’에서 말하는 아바타는 가상 세계의 사용자로 화면상에 표현된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의미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아바타라는 의미가 자아를 디지털로 표현한 캐릭터(아바타)라는 의미에 가장 근접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하비타트 (Based on Lucasfilm Technology)]https://www.mobygames.com

‘하비타트’는 일본에서도 서비스했었는데 라카스아츠(LucasArts Entertainment Company)의 루카스필름 게임즈(Lucasfilm Games)가 ‘Quantum Computer Services, Inc.’와 공동개발한 게임을 일본의 후지츠에서 FM-TOWNS컴퓨터 용으로 출시했다.

 당시 기준으로 수 천명에 달하는 동접자를 처리할 수 있었던 게임으로 초기에는 Commodore 64 사용자를 위한 온라인 서비스인 QuantumLink 게임으로 개발되었지만 점차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되었다.

이 게임이 출시 된 1985년에는 PC가 IBM-PC로 통일되기 이전이었고 Commodore와 같은 여러가지 다양한 기종들이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비타트’ 게임에서 등장하는 아바타는 게임을 실행하는 플레이어를 가상의 세계에서 대변하고 있으며 화면상에 애니메이션 피규어로 표현된다.

[하비타트]

‘하비타트’는 게임 내에서 아바타는 물건을 집을 수도 있고 내려놓을 수도 있으며 조작할 수도 있는 등 실제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온라인 통신 기능을 활용하여 아바타끼리 대화도 할 수 있었고 플레이어가 키보드로 입력한 내용은 화면상에 말풍선으로 표시되었다. 지금의 기준에서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내용이지만 1985년에 이런 기술은 굉장히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울티마’도 온라인화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미 1985년에 온라인으로 접속 가능한 다중접속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간 기술이었다.

아바타라는 용어의 최초 사용이라는 타이틀은 뺏겼지만 리처드 게리엇의 ‘울티마’는 아바타라는 단어를 세상에 보다 더 널리 알린 것에서만큼은 확실히 앞섰다.

아바타라는 용어를 게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하비타트’였지만 세상에 더 많이 알린 것은 ‘울티마’였다. ‘울티마’는 아바타라는 개념 외에도 8대 미덕이라는 ‘울티마’ 시리즈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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