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닉스1 –호리이 유지-토리야마 아키라-스기야마 코이치 ‘드림팀’ 시작

[ENIX 로고]

2003년 4월 1일. 갑자기 경쟁사였던 스퀘어와 전격 합병에 성공해 이름을 스퀘어에닉스로 바꿨다.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대표 시리즈 게임을 계속해서 출시하면서 게임은 물론 출판, 영상 미디어 사업쪽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퀘어에닉스는 원래 별개의 두 회사였다.

서로가 국민 RPG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자존심을 걸고 경쟁을 하던 회사였다. 스퀘어는 통칭 ‘FF’라 불리는 ‘파이널판타지(Final Fantasy)’게임과 에닉스는 통칭 ‘DQ’라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에닉스(ENIX)라는 회사 이름은 미국의 에커트와 모클리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전자 계산기라고 알려져 있던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과 ‘불사조(Phoenix)’의 합성어이다.

■ 에닉스의 주력 게임 사업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초창기 에닉스 게임들을 보면 컴퓨터라는 의미가 포함된 ‘에닉스’를 회사 이름으로 만든 것 답게 회사의 로고 타입도 ‘ENIX’라는 영문명을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폰트를 사용했다.

1980년대 유행하던 컴퓨터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에는 저 폰트가 많이 쓰였다.

다만, 현재 세계 최초의 전자식 계산기(컴퓨터)라는 에니악의 지위는 여러 업체, 단체의 소송으로 1941년도에 독일에서 탄도 계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Z-3이라는 컴퓨터라고도 하고, 1942년에 개발된 ABC(어태너소프-베리 컴퓨터) 그리고 1943년에 세계 최초의 실용화된 컴퓨터란 자리를 콜로서스가 가져가면서 에니악은 그 위치가 애매해졌다.

워낙에 에니악이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라고 예전부터 많이 알려진 탓에 아직도 정보처리 관련 문헌이나 자료에는 컴퓨터의 개발 순서가 ‘에니악(1946년) -> 에드삭(1949년) -> 에드박(1951년) -> 유니박(1951년)’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들이 많아 한 동안은 자료수거와 정리에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Dragon Quest XI]

현재 스퀘어 에닉스는 게임사업부문과 출판사업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출판사업부문은 유명 만화 원작인 ‘강철의 연금술사’ 출판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만화잡지인 ‘월간 소년 강강’이나 ‘월간 G 판타지’ 등 다양한 잡지를 출판하고 있다.

스퀘어와 경쟁하던 시절 에닉스의 주력 게임 사업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였다.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보다 먼저 1986년 5월 27일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용으로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초로 개발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북미의 경우 같은 이름의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라는 테이블 보드 게임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게임 이름을 ‘드래곤 워리어(Dragon Warrior)’로 바꿔서 출시했다.

[Dragon Warrior III]http://www.realmofdarkness.net/dq/games/nes/dw2/box

정말 ‘드래곤 퀘스트’가 맞나? 싶은 표지 디자인을 보면 같은 게임이 아닌 것 같지만 북미에서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7편까지 ‘Dragon Warrior’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시리즈 8편에서야 스퀘어에닉스의 합작법인의 이름으로 2003년 10월 원래 이름인 ‘Dragon Quest’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드래곤 퀘스트’는 크게 3부작 시리즈라고 해서 각각 ‘로토 시리즈(로토 3부작)’와 ‘천공 시리즈(천공 3부작)’가 있는데 시리즈 초기 1, 2, 3편의 스토리가 주인공 용자 ‘로토’와 관련 된 내용이기 때문에 ‘로토 3부작’으로 불린다.

시리즈 4, 5, 6편은 천공성에 관련된 스토리이기 때문에 ‘천공 3부작’으로 불린다. 시리즈 1편부터 6편까지는 로토 3부작에 이어 천공 3부작까지 동일한 세계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스토리의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보통 1~6편을 한 세트로 분류하기도 한다.

시리즈 7편에서부터 8편까지는 각각의 독립된 내용으로 기존의 ‘드래곤 퀘스트’와는 전혀 별개의 다른 작품으로 출시되었다. ‘드래곤 퀘스트’는 2019년 기준 통상 판매량 7600만장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조만간 1억 장 돌파를 앞두고 있다.

■ 에닉스의 이름, ‘컴퓨터+불사조’ 합성...가정용 콘솔 게임기 개막 ‘찰떡궁합’

일본에서는 게임 이름으로 줄여서 약칭으로 ‘도라쿠에(ドラクエ)’라고 하던가 ‘DQ’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주로 ‘드퀘’라고 한다. ‘드래곤 퀘스트’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게임을 만든 에닉스는 컴퓨터와 불사조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1975년 컴퓨터와 불사조와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에이단샤(영단사) 모집 서비스라는 부동산 안내 서비스 회사로 시작했다. 부동산 서비스 회사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자본이 쌓이자 2020년인 현재에도 신기할 것 같은 초밥 만드는 로봇 사업을 1970년대에 시행하면서 엄청난 적자를 안고 망해버렸다.

[후쿠시마 야스히로(福嶋 康博)]https://businesstech.co.za/news/trending/22066/10-richest-people-in-the-gaming-industry/

한 번의 사업이 망한 이후 다시 한 번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던 창업주 ‘후쿠시마 야스히로(福嶋 康博)’는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가진 사업가였다.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거리를 찾던 그에게 눈에 띄인 것은 바로 컴퓨터 관련 분야였다.

컴퓨터는 국방부와 같은 국가기구나 NASA와 같은 거대한 조직이나 대기업에서 쓸 수 있는 기기에서 시대가 변화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가정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더욱 진보하여 1977년 발표된 TRS-80’s를 기점으로 1980년대에는 본격적인 개인용 컴퓨터(PC)와 함께 1983년 닌텐도의 패미컴이 출시되는 등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이 열린 해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전에 아타리가 한 번 쓸고 간 뒤였지만 아타리 사건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에닉스의 창업주 후쿠시마 야스히로는 새로운 시대의 기술을 보는 능력이 매우 탁월한 사람이다. 진작부터 S/W(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PC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활성화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 결국 1982년 회사 이름을 컴퓨터와 불사조라는 의미를 담아 ‘ENIX(에닉스)’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뒤 주력 사업도 게임 소프트웨어쪽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스퀘어에닉스의 전신이자 모태인 에닉스가 탄생하였다.

■  게임 개발 경진대회 우승자 ‘드래곤 퀘스트’ 개발자 호리이 유지 채용

그렇게 회사를 창업하긴 했지만 이 조차도 별도의 게임개발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기 때문에 게임 개발 경진대회 같은 것을 열어 대회 우승자를 회사에 채용시키는 방안을 고안했다.

[(좌)사카구치 히로노부, (우)호리이 유지]

https://twitter.com/auuo/status/1203979161251065857/photo/1

지금은 당연히 그럴수 있을 것 같은 일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신기하고 대담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게임 개발 경진대회 입상으로 에닉스라는 회사에 입사한 사람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를 개발한 ‘호리이 유지(堀井 雄二)’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리이 유지는 에닉스의 주축이자 큰 기둥 같은 인물이므로 경진대회를 통한 인재 영입 전략은 굉장히 유효했다.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가 사카구치 히로노부(坂口 博信)와 이시이 코이치(石井 浩一), 타나카 히로미치(田中 弘道), 아마노 요시타카(天野 喜孝)의 드림팀이었다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는 호리이 유지(堀井 雄二)를 필두로 토리야마 아키라(鳥山 明), 스기야마 코이치의 3인방이 드림팀으로 드래곤 퀘스트 게임을 대표하는 핵심 개발자였다.

이중 중심 인물인 호리이 유지는 1954년 1월 6일생으로 이미 환갑을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선에서 ‘드래곤 퀘스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Love Match Tennis]

호리이 유지는 일본의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수재다. 일본의 와세다 대학은 일본에서도 명문 사립대학 중에 하나로 꼽히며 일본 최초로 사립대학 인가를 받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이다.

호리이 유지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던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마징가Z’와 ‘겟타로보 ’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유명 만화가인 나가이 고(永井豪)의 제자가 되려고 했지만 거절당한 뒤로 만화 스토리 작가인 ‘코이케 카즈오(小池一夫)’의 제자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호리이 유지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드래곤 퀘스트’ 개발을 할 때에도 그래픽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기획한 게임 내용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그린 기획 내용을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전달하여 완성이 되는 구조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호리이 유지는 1982년 에닉스 창업 초기부터 회사와 함께한 ‘역사의 산증인’인데 1982년 당시 에닉스라는 이제 막 만들어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아마추어 게임 공모전을 통해 ‘러브매치 테니스’라는 게임을 개발해 대회에 입상하며 에닉스에 입사하게 되었다.

[Love Match Tennis]

평소에도 만화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호리이 유지는 27살에 처음 접한 컴퓨터를 통해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작성한 글들을 정리하려는 자료 정리의 목적으로 구입한 컴퓨터였지만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과 게임들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결국 스스로 베이직 언어를 배워 프로그래밍을 독학하면서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공개했다.

본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호리이 유지는 유명 만화 잡지에 게임을 주제로 한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취미 삼아 게임을 만들던 때에 마침 게임 공모전이 열렸으니 당연히 참가하기로 마음먹고 당당히 입상했다.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이 된 스퀘어에닉스의 전신인 에닉스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 일본 RPG 열망 ‘드래곤 퀘스트’ 개발 결심...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합류 ‘명작 탄생’

그렇게 에닉스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어드벤처 게임들을 만들었지만 호리이 유지는 자신이 즐겨했던 ‘울티마’와 ‘위저드리’ 같은 RPG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는 RPG라는 말조차 생소했고 ‘울티마’와 ‘위저드리’ 같은 게임은 대중적인 게임이라기 보다는 다소 마니악한 면이 있는 게임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같은 아시아 시장보다는 북미 스타일에 최적화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출시할 게임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리이 유지는 자신이 재미있게 즐기는 게임을 좀 더 쉽게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를 원했고 지금까지의 재능을 모두 모아 새로운 국산(일본)RPG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토리야마 아키라(鳥山 明)]https://twitter.com/auuo/status/1203979161251065857/photo/1

호리이 유지는 글 쓰는 재능과 더불어 만화 그리기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캐릭터와 몬스터의 초기 설정은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직접 그린 그림은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전달되어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문제는 호리이 유지가 북미 스타일의 RPG 팬이었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몬스터 역시 굉장히 북미스러운 디자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는 적절히 그의 디자인을 완화시켜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체로 변경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조화로운 작업 덕분에 드래곤 퀘스트는 북미스타일의 괴랄한 게임이 아니라 ‘드래곤 퀘스트’ 만의 정통성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호리이 유지와 함께 ‘드래곤 퀘스트’의 개발 핵심 멤버이며 단짝이기도 한 토리야마 아키라는 두 말이 필요없는 유명 만화가다. 이미 한국에서도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만화가인데 일본에서도 그의 명성은 전설 등급에 해당할 만큼 유명해 ‘납세자 상위 순위’라던가 정부가 집 앞까지 도로를 포장해 주었다던가 하는 등의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소문들이 많이 돌아다닐 만큼 유명하다.

[Dragon Quest Illustrations]

토리야마 아키라는 그 특유의 그림체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으로 인해 세계적인 만화가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꼼꼼하고 짜임새 있는 설정 같은 것에는 재능이 없어 대충 날림식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스스로 밝힌 적도 있다.

이런 부족한 부분에 세밀하고 치밀한 설정에 특유의 재능이 있는 호리이 유지가 만나 ‘드래곤 퀘스트’와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치밀하고 세세한 설정은 호리이 유지의 담당이었고 호리이 유지는 ‘드래곤 퀘스트’ 게임의 캐릭터 디자인 원화는 물론 맵이나 던전의 구성과 밸런스 작업까지도 직접 만들 정도로 완벽주의자라는 주변에 평가에 걸맞게 게임 개발에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문학부 출신인답게 게임 스토리의 개연성 있는 연출기법과 캐릭터간의 대화 내용도 직접 대사를 작성하고 있다. ‘드래곤 퀘스트’의 특장점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풍부한 대사량인데 주인공 캐릭터들의 비중 있는 대사는 물론 비중 없는 마을 사람들의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위트가 살아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을을 돌며 NPC들에게 말을 걸어보는 재미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항상 같은 대사만 하고 끝내는 게임들에 비해 ‘드래곤퀘스트’에서는 대사량의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밤과 낮에 따라 대사가 달라지거나 특정 이벤트 진행 동안 대사가 달라지기도 하는 등의 변화를 주어 새로운 재미요소로 작용했다.

보통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는 핵심 인물들과의 대화만 이어가면 되는 게임들에 비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만의 매력이었다. 그에 반해 주인공의 대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호리이 유지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가능한 주인공의 대사는 줄이고 주변 인물과 마을 사람들의 대화 내용에 많은 공을 들여 마치 게임을 하는 사람 스스로가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대사는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게임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시리즈마다 확장 보완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시리즈마다 다른 시스템으로 변경되는 파이날 판타지에 비해 드래곤 퀘스트는 시리즈 1편부터 현재까지 기본적인 시스템을 계승하는 전통이 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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