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 성공, 이시이 코이치에게 기회 ‘파판 외전’ 첫 출시

['성검전설'은 스퀘어의 3대 RPG로 꼽힌다. 사진=닌텐도 성검전설2]

‘성검전설’은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의 게임 중 3대 RPG로 꼽히던 게임이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사가’ 시리즈와 더불어 스퀘어의 3대 게임으로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사가’ 시리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은 게임이다.

스퀘어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회사지만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외에도 ‘사가’ 시리즈나 ‘크로노’ 시리즈나 ‘성검전설’ 시리즈와 같은 다른 유명 게임 시리즈도 만들었다.

그 중에 하나인 ‘성검전설’은 2017년 6월 1일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이식되어 현재까지도 전설의 명맥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제 19년 기념일이 지나 곧 2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는 ‘성검전설’은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파이널판타지’의 외전격으로 발매된 게임이었다. 시리즈 1편의 이름부터가 ‘성검전설’'–파이널판타지 외전(聖剣伝説 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外伝)’이었다.

[‘성검전설(聖剣伝説)2’]http://gamebook7.blog.fc2.com/blog-entry-76.html

‘성검전설’ 1편은 1991년 6월 28일 게임보이용으로 발매된 액션 RPG였다. 처음에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로 분류되어 ‘파이널판타지’의 외전격인 스토리로 발매되었으나 1편의 성공 이후 게임의 시리즈화가 결정되면서 ‘파이널판타지’의 계보에서 벗어나 ‘성검전설’시리즈로 분화되었다.

‘성검전설1’은 ‘파이널판타지’의 외전격답게 게임 내 등장하는 캐릭터나 스킬 이름들에서 ‘파이널판타지’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들이 등장하는데 초코보라던가 케알 등과 같이 기존 ‘파이널판타지’를 했던 유저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성검전설1’은 비록 ‘파이널판타지’의 세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파이널판타지’와 차별화된 요소를 많이 도입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액션성을 가미한 전투였다. 초기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같이 커맨드 방식의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적인 전투와 달리 ‘성검전설’은 시리즈 1편부터 이동과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실시간 액션 전투를 선보였다.

[‘성검전설(聖剣伝説)’ 컬렉션]https://www.amazon.co.jp/スクウェア・エニックス

‘성검전설’은 원래 1987년 별도의 독립 게임으로 발매할 예정이었지만 1987년은 ‘파이널판타지’ 1편이 출시된 때이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마지막 사할을 걸고 출시한다는 ‘파이널판타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성검전설’ 개발 프로젝트는 잠시 보류되면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성검전설’의 메인디렉터였던 ‘이시이 코이치(石井 浩一)’가 ‘성검전설’을 기획할 때는 스퀘어라는 회사가 거의 파산 직전에 위기상황이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이번 게임을 마지막으로 게임개발을 더 이상 하지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추가로 다른 게임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이시이 코이치는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성검전설’ 대신 회사의 사정상 ‘파이널판타지’ 1편 개발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시이 코이치는 ‘파이널판타지’에서 옆면 전투방식과 초코보를 디자인하는 공로를 인정받게 되어 후에 ‘성검전설’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이널판타지1’ (1987)]유튜브(/watch?v=5IQ0HpIBx1A)

이시이 코이치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성검전설’ 시리즈 중 1, 2, 3편의 디렉터, 게임 디자인 디렉터로 참여했다. 시리즈 4편은 프로듀서, 디렉터로 참여했다. 스퀘어에 입사하여 퇴사할 때까지 ‘성검전설’ 시리즈만 담당하여 ‘성검전설’ 시리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성검전설’ 개발 계획이 보류되면서 참여하게 된 ‘파이널판타지’는 이미 ‘드래곤퀘스트’가 성공한 시점에서 개발이 시작되어 많은 부분을 ‘드래곤퀘스트’에서 차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드래곤퀘스트’의 아류작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드래곤퀘스트’와는 차별화된 요소로 시리즈 1편이 성공함에 따라 계속해서 시리즈 2편, 3편까지 패미컴(NES,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으로 발매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지면서 시리즈 4편부터는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SNES)으로 출시하여 당당히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에 맞서는 라이벌로 성장하였다.

그렇게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2020년 4월 기준으로 1억 54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전 세계 RPG판매량 중 2위의 역대급 대작의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이미 ‘파이널판타지’ 1편의 성공으로 회사는 숨통이 트일 정도로 사정이 나아지면서 차기작의 개발과 함께 다른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성검전설1’ (1991)]유튜브(/watch?v=5IQ0HpIBx1A)

‘성검전설’ 1편이 발매된 1991년 6월에는 이미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시리즈 4편이 출시되고 시리즈 5편이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파이널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1991년 당시 부사장으로 진급할 정도로 ‘파이널판타지’는 회사를 대표하는 게임임과 동시에 개발자들의 지위도 높아지고 매출도 상당했다.

회사 전반적으로 경영실적이 나아지고 수익이 증대되자 경영진 입장에서는 자연히 신규 게임 런칭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지금이야 잘 나가고 있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이지만 이 영광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파이널판타지’ 초기 개발부터 참여했고 별도의 게임이었던 ‘성검전설’을 기획하고 있던 이시이 코이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성검전설’은 그렇게 ‘파이널판타지’에 묻어가면서 외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했을 만큼 회사에서 거는 기대는 높지 않았고 출시 플랫폼도 주력이었던 닌텐도의 패미컴이 아니라 GB(게임보이)였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파이널판타지’ 외전’이라는 이름까지 부제로 붙여주고 해외판에서는 북미 버전의 이름이 ‘Final Fantasy Adventure’라고 아예 ‘파이널판타지’ 계열의 게임임을 알리고 있다.

[‘성검전설 1' (1991)]유튜브(/watch?v=5IQ0HpIBx1A)

첫 시작은 다소 초라했지만 1993년 8월 6일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으로 발매한 ‘성검전설’ 2가 당시 일본 내수 150만개, 해외 포함 180만개의 판매를 올리면서 일약 스타게임으로 떠오르게 되자 회사에서도 ‘성검전설’'을 별도의 시리즈물로 기획하는 구성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성검전설2’는 PC 외에도 플레이스테션4와 닌텐도 스위치 등으로도 이식되어 현재까지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명작 게임 중에 하나다.

이렇게 처음에는 괄시받던 ‘미운오리새끼’ 취급받았지만 ‘성검전설1’편은 흥행에 성공하여 현재의 시리즈를 있게한 주인공이다.

2003년 ‘신약 성검전설’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다시 부활하여 GBA(게임보이 어드밴스)로 발매되었고 2006년에는 모바일 게임으로 발매되고 2016년에는 3D로 풀 리메이크 된 버전이 플레이스테이션 Vita, iOS,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되면서 해외판 게임 이름은 ‘Adventures of Mana’로 ‘Final Fantasy Adventure’였던 이전 이름에서 드디어 ‘‘파이널판타지’’라는 이름을 떼고 정식으로 ‘성검전설’의 독립을 인정받았다.

‘성검전설2’는 ‘성검전설1’편이 ‘파이널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외전 격의 게임으로 개발된 것에 비해 전작과는 달리 완전한 독립 게임으로 성검과 마나의 나무를 중심으로 제국과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를 주된 스토리로 하고 있다.

‘성검전설2’편은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아 스퀘어 북미 지사에서 영문판을 발매하기도 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었다.

[‘성검전설2’]유튜브(/watch?v=87ADP2GGxsY&list=PLaTIfiIeJjjStX8by-YH-9vSiiw6K0WJC)

‘성검전설2’에서 드디어 이시이 코이치는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 화면에 올리게 되었고 ‘성검전설2’의 성공 이후 스퀘어는 ‘성검전설’을 자체 시리즈로 분류하면서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함께 스퀘어의 대표게임으로 내세웠다. 1995년 ‘성검전설3’를 발매하는데 닌텐도의 슈퍼패미컴 최전성기였던 만큼 게임도 자연히 100만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성공적인 판매를 이어갔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는 ‘성검전설’ 1~3편이 합본 형태로 ‘‘성검전설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기도 했을 만큼 아직까지도 ‘성검전설’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시리즈 3편은 영문판을 정식발매하지 않아 해외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성검전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부터 회사 내적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 원인이었다.

[‘성검전설2’]유튜브(/watch?v=87ADP2GGxsY&list=PLaTIfiIeJjjStX8by-YH-9vSiiw6K0WJC)

‘성검전설’의 번외편인 ‘성검전설 Legend of Mana’는 1999년 7월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발매한 게임이다. ‘성검전설’의 후속작이자 번외편으로 기대를 한껏 모았던 게임이었지만 출시 결과 ‘성검전설’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게임 시스템으로 게임에 대한 평가가 극악을 달리면서 70만 개라는 준수한 판매량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평가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검전설 LoM(Legend of Mana)’는 중간에 핵심 개발진이 대규모로 교체되면서 게임의 본래 방향과는 다르게 개발된 측면도 있었다. 당시 스퀘어의 새로운 프렌차이즈 시리즈였던 ‘제노기어스(1998년 3월 출시)’개발을 위해 인원이 교체되고 빈 자리에 ‘사가’ 시리즈의 개발진이 참여하는 등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발되다 보니 게임의 완성도와 게임성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 중에 ‘제노기어스’를 새로운 프렌차이즈 시리즈로 밀기 위해 인원을 교체한 만큼 ‘제노기어스’라도 제대로 성공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노기어스’는 후속작 개발 조건으로 100만 판매량 달성을 목표로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89만 개에 머물렀고 당시 스퀘어는 ‘파이널판타지’ 영화 ‘FINAL FANTASY – THE SPRITS WITHIN’을 제작하느라 모든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제노기어스’의 후속작에 대한 계획이 전면 취소되었다.

[‘성검전설3’]유튜브(/watch?v=R5o9QxOptd4)

결론적으로 ‘성검전설’의 번외편인 ‘성검전설 Legend of Mana’의 개발에 소홀한 결과 ‘‘성검전설 Legend of Mana’의 흥행에 실패하고 ‘제노기어스’ 역시 스퀘어의 이름을 달고 출시하기는 했지만 실제 게임개발은 ‘모노리스’라는 개발사에서 하다보니 손발이 안‘맞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제노기어스‘의 흥행 실패를 이유로 후속작 발매 취소 결정에 따라 개발사였던 모노리스는 이후 닌텐도 산하로 거취를 옮기면서 스퀘어와의 사이는 다소 서먹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제노기어스‘는 오프닝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당시 유명 성우를 대거 채용하면서 음성지원과 보컬곡까지 수록하는 등 호화판 게임으로 제작되었고 나름대로 반응도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 집중 계획에 따라 ‘미운오리새끼’ 취급받은 게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 있기도 했다.

게임업계 뒷골목에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제노기어스’는 ‘파이널판타지7’과 함께 ‘파이널판타지7’이라는 게임 타이틀을 두고 내부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던 게임이었지만 결국 현재의 파이널판타지7이 그 타이틀을 거머쥐고 ‘제노기어스’는 ‘파이널판타지7’이 될 뻔 했다가 현재의 ‘제노기어스’가 되었다는 설이 있었다.

‘파이널판타지7’ 게임에서도 중간에 크라우드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고 사경을 헤맬 때 ‘제노기어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이것은 개발사에서 그냥 홍보차원에서 자막을 넣은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성검전설3’]유튜브(/watch?v=m9cc8-qTP0Q)

사실 ‘제노기어스’는 ‘파이널판타지7’ 프로젝트의 원안 중 하나였던 타카하시와 타나카 카오리의 기획 ‘프로젝트 노아’에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노아’에 대한 기획안은 내부 협의 결과 최종 탈락 처리되었지만 게임 기획안이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에 사카구치 히로노부에 의해 별도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게임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직 이름을 확정받지 못했던 ‘파이널판타지7’의 개발 도중까지 참여하고 있던 타카하시 테츠야와 ‘크로노 트리거’ 팀의 다수가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다.

‘파이널판타지7’은 ‘파이널판타지6’ 편이 발매된 1994년에 바로 개발에 착수했는데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초기에 제작하던 때는 게임의 내용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파이널판타지7’의 초기 기획안은 ‘조(Joe)’라는 이름의 탐정이 공업 도시 미드가르에서 활약하는 내용이었지만 개발진들이 ‘크로노 트리거’ 팀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프로젝트의 진행이 어려워졌다.

프로젝트의 멸실 위기에서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지금까지 완성된 내용과 미완성된 기획 내용을 전달하여 ‘크로노 트리거’에 게임 기획과 설정에 반영되고 ‘파이널판타지7’의 초기 컨셉 개발 프로젝트는 사라졌다.

[제노기어스 디스크 2번 미완의 비밀]https://kotaku.com/the-real-story-behind-xenogears-unfinished-disc-2-1796151112

그렇게 1990년대 중후반의 스퀘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며 대규모의 프로젝트인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크로노트리거’ 시리즈, ‘성검전설’ 시리즈, ‘제노기어스’ 시리즈의 개발팀들이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지면서 게임성에 편입되고 방향이 변경되는 등 혼란의 시기였다.

‘파이널판타지7’ 프로젝트는 이듬해 1995년 다시 시작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파이널판타지7’이 될 뻔한 현재의 ‘제노기어스’가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7’ 밀어주기에 따라 인력과 개발 기간의 지원이 미비한 상태에서 미완성 작품이지만 발매를 강요하려던 것에 반발하는 등의 갈등과 혼란을 겪으며 CD 1장 시점까지만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발매된 ‘제노기어스’는 CD 1과 CD 2의 진행방식이 전혀 다르게 진행되면서 갑자기 달라진 게임 진행 방식에 날림개발이 아니냐는 비난도 들어야 했지만 2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밝혀진 과거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당시의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개발팀 내부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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