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말하는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는 누가 만드나

정의당이 ‘대리게임’ 논란에 휩싸인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에 대해 재신임을 결정해 후폭풍을 겪고 있다. 16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류호정 후보에 대해 “대학생 시절에 게임 윤리와 관련된 잘못을 한 바가 있다”며 “게임을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여전히 문제 제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치 신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정의당은 이번 논란이 ‘게임을 하는 청년들’의 문제 제기로 파악한 듯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게이머뿐만 아니라, 게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IT, 게임 라운지만 봐도 정의당에 대한 지지철회와 분노를 담은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만나본 판교 게임사 직원들의 반응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 지도부의 결정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임업계와 IT 업계 노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일부 몰지각한 이용자들의 어뷰징, 즉 부정행위다.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허가되지 않은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태를 말한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심상정 대표는 ‘판교와 구로디지털단지의 오징어잡이 배’라는 표현을 써가며 게임사들의 과도한 야근 문제를 지적했다. 그런데 회사를 ‘오징어잡이 배’로 만드는 것이 부정행위다. 어떤 회사라도 이용자들의 불법적인 행태를 막지 못하면 매출 감소는 물론 서비스 종료와 폐업까지 각오해야 한다. 동시에 그 안에서 일하는 IT 노동자들의 삶도 피폐해진다.

e스포츠 종목에서 대리게임이 부정행위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모든 이용자들에게 공정한 룰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 게임은 게임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금전적인 거래가 없었다 해도 문제는 같다.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는 이미 ‘대리게임처벌법’이 시행되기 훨씬 전부터 대리게임 이용자들의 계정을 정지시키며 강력한 단속을 펼쳐왔다. 정의당은 과거 이러한 행위를 했던 후보를 내세우면서 IT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에 선뜻 수긍할 IT 노동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류호정 후보는 등급을 의도적으로 올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등급을 올려준 계정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게임 유저들은 대리로 인한 티어 상승 자체를 이득의 결과로 본다. “만약 본인보다 훨씬 게임을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계정을 빌려주었겠는가”라는 의심이 따라 붙는다. 류 후보 계정의 티어가 상승 했을 때, 분명 누군가는 게임에서 패하고 랭킹 등급이 떨어졌을 것이다. 대리 게임과 맞물려 과거 동아리 활동이나 매체 인터뷰 내용 등에 대해서도 의혹들이 불거진 상황이다.

재신임을 결정한 정의당은 후보 감싸기에 나섰다. 심상정 대표는 “논란의 과정에서 벌어진 인신공격과 폄하 그리고 불공정 논란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여론몰이”라고 규정했다. 또 “특히 IT 노동자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류호정 후보를 향한 게임 업체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심 대표의 말은 게임업계의 더욱 거센 반발을 불러오는 중이다. “도대체 게임업체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이란 무엇인가”라는 반응이 나온다. 설령 그게 있다 해도, 일개 게임회사가 국회의원 당선이 확실시 되는 후보를 향해 무슨 부당한 개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류 후보가 다녔던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이들도, 다른 게임업체에 다니는 이들도 모두 노동자들이고 유권자들이다. 노동자 후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노동자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쯤 되면 정의당이 생각하는 게임은 무엇이고, 그들이 말하는 IT 노동자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왜 게임과 IT 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후보에게 정작 같은 업계 종사자들이 반발하는지, 정의당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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