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가수, 프로게이머, 천재 해커 등 각양각색 한국인 캐릭터들

지구 반대편 벽안의 외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한국을 제대로 아는 외국인들은 많지 않았다. 동양인을 보면 으레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이라고 생각했고, 한국인임을 밝혀도 북한 국적으로 오해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서양 미디어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종종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주변인으로만 등장하곤 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일본의 대전격투게임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했다. ‘아랑전설2’의 김갑환이나 ‘철권2’의 백두산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이 태권도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서양 개발사들이 만든 게임에 한국인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나오더라도 기대에 못미쳤다.

1996년 영국 개발사 레어가 출시한 대전격투게임 ‘킬러 인스팅트2’에는 ‘김 우(Kim Wu)’라는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모습에 한국다운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짧은 한국어 대사로 한국인임을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한국과 중국의 피가 절반씩 섞였다는 설정의 그녀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쌍절곤과 절권도를 사용한다. 김 우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 그렇게 인기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특한 무술 캐릭터로 인정받았다. 결국 2017년에 리부트된 ‘킬러 인스팅트’에도 재등장한다.

2008년 출시된 락스타의 ‘GTA4’도 한국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단편적인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게임에는 한인 타운과 한국인 ‘김영국’이 등장하는데, 김영국은 사실 한국인이 아니라 탈북민이다. 북한 사투리를 쓰는 그의 정체는 위조화폐를 밀수하려는 조직폭력배로, 결국 주인공에게 죽는다. 재미있는 점은 김영국의 아버지가 박영국이라는 점이다. 성과 이름을 한국과 반대로 쓰는 문화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이다. ‘GTA4’ 외에도 한인 타운이 등장하는 게임에는 종종 한국인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범죄자나 적군이다.

군인으로 등장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미국과 북한이 갈등을 빚었던 시기에는 꽤 많은 FPS게임들이 한국을 다뤘다. 다만 한국계 미국인 동료 또는 북한군으로 묘사되는 이들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다. 2000년 출시된 웨스트우드의 ‘커맨드앤컨커 레드얼럿2’에는 연합군 한국군의 공중 유닛으로 ‘보라매’가 나온다. 또 2009년 출시된 인피니티 워드의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2’에는 미군 병사 이름 중 하나로 ‘태훈 병장’이 생성된다. 이는 제작진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큰 의미는 없다. 크라이텍의 ‘크라이시스’에도 한국식 이름을 가진 북한군들이 적으로 나온다.

이 게임들이 나왔던 때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한국인들 또한 스스로를 설명할 때 ‘두 유 노우 김치?’나 ‘두 유 노우 샘성?’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게임, 드라마, 영화, K팝 등 한류가 서양까지 퍼지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세계 최초로 e스포츠를 탄생시키며 ‘한국은 게임 잘 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얻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 ‘방탄소년단’, ‘기생충’의 연이은 성공으로 콘텐츠 강국 이미지까지 얻게 됐다.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에는 한국인 캐릭터가 꽤 비중 있게 등장한다. 바로 구미호 챔피언 ‘아리’다. 지금으로부터 대력 8년 전인 2011년 12월,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서비스를 기념해 선보인 아리는 한국 정서에 맞는 설정과 매력적인 비주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2013년 공개된 아리의 대표 스킨인 ‘팝스타 아리’는 K팝 걸그룹을 모티브로 삼았다. 인기 팝스타가 세계 투어 공연을 진행한다는 콘셉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큰 인기를 끌었고, 소녀시대가 미국 공중파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K팝이 서양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아이돌 걸그룹 콘셉트로 한국을 표현한 서양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 뿐만이 아니다. 에픽게임즈의 2018년 미출시 프로젝트 ‘파라곤’에도 K팝 가수 캐릭터 ‘신비’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에픽게임즈는 이 캐릭터를 위해 한국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큰 공을 들였으나, ‘파라곤’이 개발 중단되면서 ‘신비’ 또한 빛을 보지 못했다.

2016년 블리자드가 출시한 ‘오버워치’의 경우, 한국에서 최초로 탄생한 신종 직업인 프로게이머에 초점을 맞췄다. 19세의 여성 프로게이머 출신 로봇 조종사 송하나(디바)가 그것이다. 송하나는 16세에 ‘스타크래프트6’ 세계 챔피언이 됐으며,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로봇 조종사가 됐다. 최근에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전투를 스트리밍으로 방송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까지 겸하고 있다. 그녀의 생방송을 지켜보는 전세계 시청자 수는 5200만명이 넘는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개인방송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한국 e스포츠 스타들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다.

한국인의 똑똑함을 해커 콘셉트로 표현한 게임들도 있다. 유비소프트의 ‘레인보우식스 시즈’에는 대한민국 육군 소속 특수임무대대의 ‘도깨비’와 ‘비질’이 비중 있게 나온다. 도깨비의 본명은 남은혜로, KAIST 출신의 젊은 여성 해커다. 또 비질의 본명은 화철경으로, 탈북자 출신의 정찰병이다. 둘 다 매력적인 설정과 캐릭터 디자인으로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과거 서양 FPS게임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한국인 캐릭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에이펙스 레전드’에도 한국인 캐릭터 ‘크립토’가 등장한다. 2019년 추가된 신규 레전드 ‘크립토’는 차분하고 침착한 천재 해커다.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한국어 대사도 나온다. ‘크립토’ 또한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공개 직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아리를 선보인 바 있는 라이엇게임즈는 신작 ‘발로란트’에서도 한국인 캐릭터를 선보인다. 공개된 정보에서는 바람과 칼을 사용하는 한국인 캐릭터 ‘제트’가 등장하는데, 화려하면서도 날렵한 여성의 이미지가 큰 반응을 얻었다. 다만 수리검을 사용한다는 점이 한국과 맞지 않다는 피드백이 나오고 있어 최종 버전에서는 어떻게 수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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