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제 1년 특집]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 김성완 특별기고

지난해 18대 국회에서 통과된 게임 셧다운제는 기존의 게임 사전 심의 제도에 더해서 게임 산업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이 법의 통과를 저지하려는 노력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법은 통과돼 지난해 11월부터 발효되어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다.

법 실시가 1년이 된 시점에서 그 실효성이 0.3%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의 주도로 그 적용 범위를 모바일 게임에까지 확대하려 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기껏 얻어낸 오픈 마켓 자율 심의라는 공간도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패러디에 휩싸인 문화부 게임시간 선택제 홍보 캐릭터.
게임 셧다운제는 18대 국회 당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전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법이다. 최영희 의원은 평소에도 “게임은 마약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의원이 게임 셧다운제 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해 저지가 쉽지 않았다.

■ 구체적인 언급없는 유력 후보들의 게임공약
게임계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된 게임관련 정책이나 공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재 뚜껑이 열려진 상태에서의 상황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총론에서는 세 후보가 모두 게임 산업을 포함한 콘텐츠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규제에 대해서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게임 산업에 실질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임 셧다운제 같은 구체적인 규제 정책의 개폐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후보들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총론에서는 여러 희망적인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공약이 게임 셧다운제 폐지 같은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라면 그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문재인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는 그나마 지난달 방문했던 판교 테크노벨리 글로벌 R&D센터에서 “한국 경제의 더 높은 도약을 위해서는 ICT 위상의 회복이 필수”라며 ICT산업에 대해 "실효성 없이 산업만 위축시키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폐지하겠다"는 식의 총론적인 지원 의지는 피력하고 있지만 게임 셧다운제에 대한 구체적은 언급은 아직 없다.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의 경우도 대선 후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부산에서 열린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 전격 방문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한 학생이 게임 셧다운제 대해서 던진 돌발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였다. 게임 셧다운제 등 게임규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 “마약중독=게임중독” 믿는 도끼에 발등
물론 정치권에는 게임 산업에 적극적으로 우호적인 인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이 있다. 그는 현재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 게임 카테고리가 열릴 수 있도록 오픈 마켓 자율 심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게임 셧다운제에 반대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던 한나라당의 김성식 전 의원도 있다. 김성식 전 의원은 최근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 캠프에 합류해서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게임계에서는 안철수 캠프에 거는 기대가 컸다.

특히 안철수 후보 본인이 국민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니셜D를 언급하기도 하고 과거 하이텔 개오동에서도 활동했던 게임 마니아 출신이라는 것도 알려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기대가 컸다.

모바일 셧다운제 논란이 된 애니팡.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안철수 캠프에서 발표한 대선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에 게임 중독을 마약 중독과 동일한 것으로 진단하는 내용이 실리면서 게임계로부터 커다란 반발을 샀다. 안철수 캠프에 이에 대한 항의가 쇄도했다. 이후에 사과와 함께 그 내용이 공약집에서 삭제되기는 했지만 게임계에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임계는 대선이라는 중대한 시기를 맞아 게임 산업에 대한 정치권의 전향적인 정책 제시를 기대한다. 이와는 달리 정치권의 기대 수준은 여기에 못미치는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대선 이후에도 현재의 상태보다 더 개선되기보다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질 상황까지도 예상된다.

■ 한국 사회는 이토록 게임에 적대적인가?
정치권이 이렇게 게임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유권자들인 학부모들의 생각을 넘어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생각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반영하고 있다. 게임계에 가장 우호적일 것으로 기대했던 안철수 캠프의 정책 공약집에서마저 모독이나 다름없는 “게임은 마약”이란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은 게임 셧다운제 통과를 주도했던 최영희 의원의 생각이 결코 일부의 강경한 의견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산업이 아무리 다른 한류 산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수출 효자 이라고 호소를 해봐야 별로 효과를 얻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도 문화 예술의 하나”이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사치스런 주장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나 셧다운제 등 게임 산업 규제책에 대해 정치권이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도록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그들의 권력 기반인 일반 국민들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세계 그 어디보다도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이 치열함이 한국을 가난한 후진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까지 빠르게 끌어올렸지만 이 과정에서 일과 공부에 전적으로 매진해야 했다. 이에 비해 인생을 즐기거나 여유도 없이 노는 것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형성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놀이를 멀리하고 공부에 전념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이 치열한 경쟁의 또 다른 결과가 어떠한 지는 여러 통계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최장 근무시간, 세계 최장 공부시간,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꼴찌, 행복지수 꼴찌의 나라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10년째 국민 소득 2만달러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왜 우리가 그토록 빠르게 성장하던 동력을 잃고 사회는 심하게 양극화되고 자살과 끔찍한 범죄는 더욱 증가하기만 하고 출산율은 바닥인지 그 이유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 게임은 마약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다. 부모의 빈 자리는 공부 위주 사교육에 의존해 메우고 있다. 아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교와 학원을 전전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정신을 망가뜨리고 공부 효율을 현격히 떨어뜨릴 만큼 비이성적으로 과도한 공부 시간에 억눌려 있다.

요즘 청소년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예전과는 달리 같은 반 급우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그들의 처지는 인간이 아니라 성적 제조 공장에서 집단으로 사육되는 가축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게임 중독은 이런 환경이 원인이 되어서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다. 설사 게임이 없다고 해도 아이들은 열악한 처지에서 잠시라도 도피하기 위해 다른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청소년들이 본드나 부탄 가스를 환각제로 이용했다.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아이들은 진짜 마약이 아니라 해도 어떤 것이든 마약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본드나 부탄 가스가 원래 마약이 아니듯이 게임도 마약이 아니다. 아이들은 다른 게 없다면 제자리에서 빨리 돌면 어지러워지는 것까지도 마약처럼 이용할 것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서 게임은 청소년들에게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 마약이나 환각제 같은 걸 제공하는 게 아니다.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 의지로 뭔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게임을 선호하는 이유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매체와는 달리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능동적인 플레이어로 참여하여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방적인 시간표에 따라 수동적으로 끌려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웹툰 '천리마마트'의 셧다운제 풍자
그들은 게임 속에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애쓴 만큼 정당한 보상을 얻는다.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자유와 정당한 보상을 게임이 대신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뭔가를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중요한 요건이다.

사실 자살이란 아무 것도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다. 극단의 벼랑에 몰린 아이들에게는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다 밤늦게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시나마 하는 게임도 그들이 살아 있을 이유를 제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뭔가를 진정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해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재할 이유를 제공한다. 지난해 11월 20일 게임 셧다운제가 실시된 바로 다음날 청소년의 자살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는 것이 과연 이런 이유와 전혀 무관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 게임의 긍정적인 힘 발견하고 ‘공부 셧다운제’를!
이들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부시간 속에서 그나마 일말의 능동적 자유를 제공하는 게임마저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도한 공부 시간과 사교육을 줄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자신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들만의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충분한 여가시간에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다면 굳이 밤늦은 시간에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게임 산업의 발목을 잡으면서까지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할 필요도 없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게임 셧다운제가 아니라 공부 셧다운제다.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살리는 것이고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살려 우리 사회 전체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게임은 마약도 아니고 일이나 공부를 방해하기만 하는 그런 존재도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규제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 구미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게이미피케이션’이라 하여 게임의 긍정적인 힘을 이용해서 현실 세계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게임, 즉 놀이의 긍정적인 힘을 발견하고 이용할 때이다. 누구도 놀이에서 이겼다고 혹은 졌다고 자신의 인생을 그 승부에 따라 결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겼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졌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번 놀이를 즐겁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놀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에서도 놀이에서처럼 실패를 다시 도전하라는 메시지로 여긴다면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성인으로서 온전하게 사회의 책임 있는 존재가 되려면 청소년기에 충분한 놀이를 즐겨야 한다. 놀이는 그 결과가 책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완전한 자유의사로 전력으로 몰두할 수 있는 활동이고, 이를 통해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관대함과 실패에 대한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을 공부라는 지옥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놀이밖에 없다. 그들에게 놀이를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온다.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워서 저 세상으로 보내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김성완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

필자 프로필
한국 게임개발자 1세대로서 미리내소프트웨어에서 PC 패키지 게임을 개발했다. 대표작으로는 ‘풀메탈자켓’이 있다. PC 패키지 게임이 저물고 국내 게임 시장이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고도성장하던 초기에는 오즈인터미디어에서 3D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카페나인의 차기 버전 개발에 잠시 참여했다. 그 후 게임 개발 교육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을 가르치면서 소프트웨어 3D 렌더러 g-matrix3D를 개발하여 오픈 소스로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게임아카데미에서 게임 개발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