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 ‘신세기 에반겔리온’으로 본 내셔널리즘과 일본SF 전쟁 키워드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류는 새로 떠오르는 판타지 장르다. 순서로 보면 만화→아니메→다음 세대의 ‘신’ 문화인 게임과 결합해 탄생하는 장르다.

특히 20년 격차를 뛰어넘어 젊은이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고 있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뿌리를 파고드는 트렌드를 제대로 짚어낼 수 있다는 책이 나왔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영어로 표기하면 'NEON GENESIS EVANGLION'로 새 창세기 복음서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담겨있다. 등장인물 Eva는 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 이브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 최석진은 그동안 자신의 다른 책들을 통하여 일본과 한국이 (각 분야마다 좀 다르겠지만) 평균 13년 정도의 ‘시간 상 격차’를 보여준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바 있다.

<내셔널리즘과 일본 SF의 전쟁, 파시즘-신흥종교-에반겔리온>은 각 시대의 사회문화상이 SF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연구한 <일본SF의 상상력─정치·사회·한국>(2010), <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史─백인 SF에서 제국일본까지> <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史─월남전에서 초고대문명까지>(2011, 전 2권)를 내면서 주목을 받은 그의 새 저서다.

■ <신세기 에반겔리온> 등 일본 SF는 어떻게 민족주의에 대응해왔을까

저자는 책을 통해 한-일 양국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 공기에 착목하여,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상상력-은유법의 금자탑 <신세기 에반겔리온>을 중심으로 일본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가 어떻게 민족주의에 대응해왔는지 분석한다.

그는 일본의 ‘천황 일신교’ 선례는 한국의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속 신봉자’(사이버공간에서는 일명 환빠로 통용)와 흡사하기에 한국의 문제로 인식할 만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일본식 SF-판타지의 뿌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탄생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 및 전후의 ‘괴수영화’에까지 닿는다는 것.

‘평화천황’이라는 개념에 대해 논해보자. 일본의 현대사에는 ‘천황을 도구로 삼은 사회혁명’을 꿈꾸는 세력이 있었다. 희한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1936년 급진적 사회개조 사상을 가진 우익 청년장교들이 휘하장병 1480여명으로 일으킨 쿠데타 시도인 2·26사건이 그 첫 번째이다. (중략) 일본의 모든 자산(資産)을 천황폐하의 소유로 돌리고 천황폐하가 자비심으로 백성들을 직접 어루만지는 정치를 꿈꿨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자유주의도 다 필요 없다는, 몽상의 세계에서 산 사람들이다. (중략) 어깨동무로 대동아연합을 만들어 서양 백인에게 맞선다. 일본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농촌이 주축이 되는, 스스로 싸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유농민 병사들로 구성된, 말하자면 초기 로마제국과 같은 ‘국방국가’로 화한다.
―제1장 6절 평화천황論  접기

그런데 국산 SF 영화가 안 되는데, 왜 또 일본 SF 영상물에 눈 돌려야 할까?

일본애니메이션(아니메·Anime)는 한국에서의 문화적 임팩트는 퇴색한 감이 없진 않으나 세계적 관점으로는 여전히 건재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여러 분야에서도 특히나 강점이 돋보이는 장르가 SF 장르다.

그 원조인 서양과 달리 일본의 사회-문화-역사적 배경과 결합하여 독특한 퓨전 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일본애니메이션의 주류는 만화→아니메→다음 세대의 ‘신’ 문화인 게임과 결합해 탄생한 판타지 장르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로봇물과 밀리터리 중심의 범(汎) SF 장르는 상상력과 은유법으로 시대정신을 대변해온 바 있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은폐와 소통 부재가 빚은 전쟁 세대와 이후 세대의 갈등도 그 중 하나다. 

저자는 그동안 구미권과 달리 영상물 중심으로 특화된 ‘일본 SF’ 세계의 상상력-은유법에 주목해왔다. 그 분석을 통해 한국의(실정상 특히나 독립-단편) 영화-만화-게임 등 비(非) SF 계열 시각문화에서도 응용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로 연구를 해왔다.

[극장판 '신세기 에반겔리온'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 <신세기 에반겔리온> SF-판타지적 상상력은 독일 ‘표현주의’가 뿌리

이 책은 <신세기 에반겔리온>을 중심으로 그간 여러 루트로 한국에 소개된 주요 작품들이 당대의 내셔널리즘(또는 그 축소판인 부족주의) 공기에 어떻게 맞서왔는가를 세세하게 분석한다.

이번 책에서는 1995~2020년까지의 <신세기 에반겔리온>까지 도달하는 SF-판타지적 상상력과 은유법의 뿌리를, 세계대전 와중인 1910~1920년대 제국주의 물량공세 덕에 탄생한(국립 UFA 스튜디오) 그로테스크의 대명사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구한다.

진짜 전쟁은 훗날 ‘전쟁영화’ 또는 ‘밀리터리’라는 자식을 낳는다. 오락과 진실의 중간영역을 오가는 장르다. 독일처럼 일본도 전시(戰時) ‘국책영화’ 전투 씬 미니어처 촬영 노하우에서 태어난,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담은 일본 ‘괴수영화’와 그 뒤를 이은 SF 특촬물 및 로봇물을 거쳐서 <신세기 에반겔리온>에 가닿는다.

<신세기 에반겔리온:Q> 2012년―이런 일본 전통의 미확인생명체(일명 UMA) 및 요괴의 비유법은 1994년 다카하타 이사오의 <평성 너구리전쟁 폼포코>에서 다 사용된 방식이다. 한국에서 무슨 말인지 몰랐을 뿐이고. 그때 일본의 작중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이니…모든 에바가(※Female·해원상생) ‘상반신은 멀쩡하고 하반신은 뿌리 단계부터 자라는’ 나무(※Green Ideology=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I'm Brute?)라는 힌트는 2009년의 5호기…(중략) 파일럿인 육감녀 마리 양은, 거대로봇 에반겔리온에 타서 전쟁놀이를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리는 안경잡이 밀리터리 오타쿠 ‘아이다 겐스케’의 암컷 대체물이다(※Female·남녀동권). 마리도 전투의 스릴감을 느껴보기 위해(뇌내 흥분호르몬 분비) 온몸이 근질거리는 캐릭터이지 않은가. 캠코더찍새 아이다 겐스케…성(姓)인 ‘아이다(相田·온갖 상판)’는…관객들이나 이 세상의 평범한 ‘눈’의 욕망에 목말라 하는…The Anonymous…스즈하라의 대사를 빌리면 “자신의 욕망에 참으로 충실한 놈”이라는 것이다.

―443쪽, 제3장 33절 영원의 설국열차.

저자는 상상력-은유법의 엄폐물이 없으면 다루기 어려운 주제인 구시대의 ‘파시즘’(소비에트에 맞선 파시스트인터내셔널 및 대동아공영권→현대의 극우공산 포퓰리즘 및 동아시아공동체·원아시아論) 그리고 그 정신적 찌꺼기를 잇는 국수주의(ultra-nationalism) ‘신흥종교’ 현상에 대한 날선 비판과 풍자가 일본SF에 스며듦을 꼼꼼히 해부한다.

구래 종교(신앙) 세계의 인간관계-세계관이 정치세계 및 국가 전체로 확대 적용되면 그것이 20세기의 ‘역사적 필연’으로도 볼 전체주의와 ‘준’이건 반(半)이건 파시즘에 가닿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일본의 한국 무역보복-역사왜곡 등 아베정부 등장 이후 두 나라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시절, ‘내셔널리즘’이 <신세기 에반겔리온>라는 은유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자는 경고 메시지다.

최석진은?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애니메이션을 사회문화적 흐름의 측면에서 분석한 <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2002), 각 시대의 사회문화상이 SF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연구한 <일본SF의 상상력─정치·사회·한국>(2010), <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史─백인 SF에서 제국일본까지> <괴수영화 속의 두뇌전쟁史─월남전에서 초고대문명까지>(2011, 전 2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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