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째 콤비 이어온 랄프 대령과 클라크 소위

[SNK(1978) – MICON BLOCK]
이미지 – (유투브/watch?v=m5upQm1FdJA)

지난 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SNK라는 회사는 원래 ‘신일본기획(Shin Nihon Kikaku)’이라는 이름의 회사였다. 회사 이름의 로마자 표기 앞 글자를 따 SNK라고 이름 지었다. 이 때가 1986년으로 정식 법인 명칭이 ‘SNK’로 변경 되었던 시점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회사의 이름이었던 ‘신일본기획’은 비공식적으로 ‘SNK’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것이 1986년에서야 정식으로 이름을 ‘SNK’로 확정 변경한 것이다.

애초에 게임회사가 아니었던 SNK는 1970년대 후반, 일본의 TAITO(타이토)가 ‘스페이스 인베이더’게임으로 떼돈을 버는 것을 보고 덩달아 업소용 게임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아무렇게나 만들기만 하면 잘 될 것 같았지만, 처음부터 게임회사도 아니었고 게임개발 경력도 전무한 회사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은 남들 거 베껴서 흉내 내는 것 밖에 없었다.

이미 업소에 많이 퍼져 있는 블록 게임(벽돌깨기)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같은 슈팅 게임을 거의 똑같이 따라 만든 게임들을 출시했지만, ‘카피는 원작을 이길 수 없다’는 속설처럼 큰 재미는 보지 못 했다. SNK는 그런 카피작품의 한계를 본인들 스스로 체험하고 절실하게 깨닫는 바가 있어 다음 해인1979년부터는 더 이상 카피 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오리지널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오리지널 작품으로 승부한 첫 게임이 바로 ‘오즈마 워즈(Ozma Wars)’이다.

[Ozma Wars(SNK, 1979)]
이미지 – (유투브/watch?v=noQYfSN_xJo)

해당 게임이 소개 된 영상에 보면 댓글에 ‘SNK's first title!’ 라는 글이 보이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게임은 SNK의 첫 게임이 아니다. 다만, 기존의 카피작품에서 벗어나 오리지널 작품으로는 첫 게임이 맞다. 그래도 누군가 밑에 친절하게도 ‘Not SNK's first. Micon Block was their actual debut.’라는 댓글을 달아놓았다.

그렇게 야심차게 첫 오리지널 작품을 내놨지만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당연하게도 비록 오리지널 작품이라고는 하나 기존에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익숙한 형태의 슈팅 게임이었고, 그 시장은 이미 선점해 있는 업체의 게임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SNK에서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했는지 1980년대부터는 기존과는 다른 게임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드디어 1986년 SNK에서 기념비적인 게임이 하나 출시되는데, 그 게임의 이름은 런앤건 슈팅 형식의 ‘IKARI WARRIORS’였다.

[Ikari Warriors (SNK, 1986)]
이미지 – (유투브/watch?v=noQYfSN_xJo)

1986년에 ‘이카리’ 게임이 출시됐을 무렵 게임 화면을 보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바로 ‘람보’였다.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람보 영화는 게임보다 4년 앞선 1982년 첫 시리즈가 개봉되었고 당시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람보 흉내 내느라 팔 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다.

점잖은 평론가 어르신들에게는 가벼운 내용의 B급 액션 영화 취급받기도 했지만, 람보 영화의 원작은 소설 ‘혼자뿐인 군인 – 데이비드 모렐(David Morrel)’이라는 책으로 캐나다 출신 저자인 데이비드 모렐은 17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그의 나이 29세에 1972년 ‘First Blood‘라는 책을 썼다. 그의 책들 중 ‘First Blood(1972)’, ‘Rambo : First Blood II(1985)’, ‘Rambo III(1988)’ 소설이 각각 람보, 람보2, 람보3의 영화로 제작됐다. 데이비드 모렐은 람보 시리즈뿐만 아니라 수 많은 명저를 저술한 작가인데 2006년 ‘브람 스토커 상’을 수상한 ‘도시탐험가들’이라던가 요즘 세대에게 굉장히 친숙한 ‘캡틴 아메리카’의 코믹(만화책) ‘Captain America – The Chosen(2006-2007)’에도 작가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톰 클랜시’와 함께 저명한 군사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소설을 쓰기 전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직접 해당 내용과 관련 된 직업을 체험해 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경호원’이라던가 ‘협상가’등의 직업을 훈련 받기도 하고 실제 총기를 사용해 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긴장감 있고 사실적인 작품을 쓰고 있다. 2009년에는 ‘The Shimmer‘ 소설을 쓰기 위해 직접 비행기 조종사 면허(FAA 라이선스)까지 취득했을 정도다(SF배경이면 민간 우주선 타고 가려나?).

[Ikari Warriors (SNK, 1986)]
이미지 – (유투브/watch?v=noQYfSN_xJo)

훌륭한 원판 소설을 바탕으로 한 람보 영화가 이미 전 세계를 강타하고 어린 아이들(특히 남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람보에 빙의 되어 학교 청소시간에 빗자루만 손에 들었다 하면 갑자기 세상을 향해 ‘두두두두두~’ 하면서 총을 쏘는 시늉을 하거나 우유팩을 접어 수류탄처럼 집어 던지는 등 람보 놀이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리면 귀를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여자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유치하고 애들 같아 보였을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들에게 람보는 마음속에 용솟음 치는 무언가를 끌어 올리며 빗자루만 보면 부둥켜 안고 ‘두두두두두~’를 하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혹적인 저주와도 같았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비슷했었는지 어느 학교나 람보에 빙의 된 꼬마 람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에 착안해 SNK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다. 이름도 람보2의 일본 제목이었던 "Rambo: Ikari no Dasshutsu"에서 Ikari(怒)를 따왔다.

당시에는 특이한 8방향의 레버를 활용해 전후 좌우 4방향 뿐만 아니라 대각선으로도 이동과 사격이 가능했다. 그래서 조이스틱 고장 등과 같이 이상 현상으로 기본 4방향 외에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무척 난감했다. 대각선 우측으로 수류탄을 투척해야 하는데 앞에 놓인 수풀 장애물 때문에 직선으로 사격도 안 되고, 조이스틱은 고장 난 상태라 대각선 입력이 안 되고, 점점 적군들은 밀려 내려오고, 그 땜의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긴박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게다가 머뭇거리면서 시간이 초과 되면 어디선가 미사일이 날아온다).

원작이 출중한 소설이고 각색한 영화 역시 흥행에 대박 성공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게임의 인기 또한(대충 만들어도) 그에 못지 않았다. 특이한 8방향 레버 시스템과 탱크와 헬리콥터(특정 플랫폼에 따라 가능)등의 이동수단에 탑승할 수 있는 등 다양한 무기 체계도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뿐만 아니라 연료 시스템도 있어서 제 때에 GAS를 채우지 않으면 탱크가 멈춰 서 버린다. ‘아 제발 한 칸만 더’를 간절히 외치기도 전에 연료는 금새 바닥나고 연료가 바닥났는데도 무리하게 이동하려고 할 경우 탱크에서 연기가 폴폴 나면서 폭발하기까지 한다.

나름대로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설정의 이 게임은 내용 또한 비범하다.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자칭 비밀결사 단체가 비밀기지를 건설하고 세계 정복을 노리고 있다는 유엔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창하게 유엔까지 등장하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두 주인공인 랄프 대령과 신입 장교인 클라크 소위가 펼치는 악의무리 소탕전쯤 되겠다. 더불어 두 주인공의 특수 임무 중에는 기왕 악의 무리를 소탕 하는 김에 납치 감금되어 있는 가와사키 장군을 구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이 때 구출하는 가와사키 장군은 SNK의 설립자인 에이키치 가와사키(Eikichi Kawasaki) 사장이다.

이카리는 보통 이 게임만 기억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카리는 그 뒤로 시리즈화 되어 1986년말 번외편과 1989년 이카리3가 발매되었다. 정식 이름은 ‘이카리’ 이지만 국내 오락실에서는 보통 ‘람보’라고 써 있는 기계가 많았다. 실제 게임이 람보 영화에서 착안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름을 지었다기 보다는 이카리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고 당시에는 람보 영화가 워낙 유명했으니까 그냥 그렇게 지은 듯하다. 람보라는 이름이 아니면 원작의 이름을 살려 ‘이까리’라고 써 있거나 정말 뜬금없이 ‘용쟁호투’와 같은 전혀 상관없는 이름으로 써 있는 오락실도 있었다(참고로 이 오락실 주인은 아무 게임이나 무조건 용쟁호투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더블드래곤이 나왔을 때도 ‘쌍용권’이 아니라 ‘용쟁호투’라고 이름 붙였다).

[Ikari Warriors (SNK, 1986)]
이미지 – (유투브/watch?v=noQYfSN_xJo)

게임의 주인공 계급은 각각 대령과 소위인데 계급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쓰는 총도 쓰는 수류탄도 입은 옷도 완전 똑같다(색만 다르다). 진정한 계급타파 평등주의를 실현한 이상적인 국가의 군대와도 같은 모습으로 둘 다 5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똑같이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분은 이미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바로 ‘랄프’ 대령과 ‘클라크’ 소위 말이다. SNK의 게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바로 눈치 챘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1986년 최초로 목숨을 건 전장에서 콤비를 결성한 이후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콤비를 이어오고 있다.

물론 ‘이카리’ 시리즈에서만이 아니다. SNK에서 출시한 인기 게임 대부분에는 두 콤비 역시 출연하고 있는데 지난 편까지 소개했던 ‘KOF(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도 팀을 이뤄 출연하고 있다.

[KOF 95 – IKARI 팀]
이미지 – (유투브/watch?v=UypHBFtvagA)

왼쪽이 바로 ‘이카리 팀’이다. 제일 왼쪽이 교관 하이데른이고 가운데 빨간 두건이 랄프 대령이다. 그리고 오른쪽 끝 파란 모자를 쓴 남자가 클라크 소위이다(둘 다 너무 복장이 똑같아서 이렇게 모자 색으로라도 구분). 랄프 대령은 결국 장군 진급에 실패했는지 언제나 대령 계급으로 등장하지만 클라크는 게임에 따라 진급을 거듭해서 중위, 대위, 소령 등으로 설정되어 있다. SNK의 입장에서는 ‘이카리’ 게임이 SNK의 기업가치 향상이나 매출 증대 등에 많은 기여를 해서인지 자사의 인기 게임에는 줄곧 이카리 팀을 출전시켜 왔다(아니면 사장을 구해낸 공로를 높이 샀을지도 모르겠다).

이카리 게임은 DATA EAST의 미드 나잇 레지스탕스 게임 보다 먼저 8방향 루프 레버를 도입한 게임으로 향후 등장 할 8방향 입력 게임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단순히 입력 시스템의 특이점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표준 무기 외에도 수류탄과 강화 아이템이 적용 된 건앤런 슈팅 게임으로 두 사람이 협력하여 탈것(탱크)을 사용하기도 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게임 시스템을 보여 주었다. 특히 게임 중간에 새로운 탈 것을 이용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은 당시에도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이었고, 연료의 보급이나 특수무기 업그레이드 등 많은 부분에서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TANK (SNK, 1985)]
이미지 – (유투브//watch?v=vQWhNbz26uc)

하지만 이러한 참신함도 이전 게임 ‘TANK’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5년 이카리 게임보다 먼저 출시한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탱크가 주인공이다(이름 짓기 어지간히 귀찮았던 모양이다). 게임의 내용은 중상을 입고 지중해를 표류하던 적국의 과학자를 통해 적국이 개발 중이던 특수 무기의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파괴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주인공 랄프 존스 대령의 탱크 모험담이다(랄프는 이 때도 대령이었다).

[TANK (SNK, 1985)]
이미지 – (유투브//watch?v=vQWhNbz26uc)

이카리 게임에서 선보였던 8방향 루프 레버 시스템 역시 이미 이전 작품인 ‘TANK’에서 도입된 것이었다. 이것이 의외로 쓸만했는지 이카리 게임에서도 같은 레버를 탑재하고 나왔는데 이카리 게임의 원작이라 할 정도로 이카리 게임을 개발하는데 많은 부분을 ‘TANK’ 게임에서 차용했다. 그리고 이카리의 개발 자체가 ‘TANK’게임에 사람을 좀 보태서 타고 내리고 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에서 출발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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