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진 변호사 “30% 분양-20% 안락사...보호 시설엔 고작 4.5%”

[베를린 티어하임의 고양이 방. 사진=오수진]

10만 2593마리. 재작년 한 해 동안 공식적으로 집계된 유기동물의 수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캠페인을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전개해오고 있다. 유명인들이 유기동물을 입양해서 키우는 모습이 꽤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SNS(소셜네트워크)에 급박하게 올라오는 유기동물 구조 소식이나 보호소의 물품후원 요청에 쉽사리 눈길을 거두지 못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2014년부터 의무화된 동물등록제의 영향으로 반려동물 신규 등록률은 느리지만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다. 반려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며 입양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제는 제법 보편화된 것 같다. 그런데도 여전히 버려지는 동물들은 저렇게나 많다.

버려진 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다시 2017년 통계를 보면 전체 유기동물의 약 30%가 분양되고, 약 27%가 자연사했으며, 약 20%는 안락사되었다. 그리고 15% 정도만이 주인에게 인도되었고, 겨우 4.5%가 보호소에 ’보호 중’이었다.

[사진=오수진]

■ 15% 주인 인도, 겨우 4.5% 보호소...보호시설-자원 턱없이 부족

그러니까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새집을 찾는 45%를 제외한 나머지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운 좋게 새집을 찾은 30%도 누군가 입양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보호소에 더는 자리가 없어서 죽어야 하거나, 병을 얻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차라리 죽는 편이 인도적이라고 판단될 상태로 내몰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기동물을 구조해서 돌보며 입양 보내고 죽는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죽이기도 하는 일에 투입된 사람들은, 그러니까 계속 쏟아져나오는 문제를 최전방에서 겨우 막고 있는 셈이다.

지금 한창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구조적 문제의 희생양이라는 말로 그를 위한 변론을 할 생각은 없다. 안락사하지 않는 단체라고 홍보하여 이를 믿은 사람들로부터 후원금을 모집해놓고 수년간 수백 마리에 이르는 유기동물을 안락사시킨 행위는 형법상 사기죄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상 ‘용도 외 사용’ 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해당 단체는 사설보호단체로서 동물보호법 및 관련 법규의 안락사에 관한 각종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이 대표와 간부들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무분별하게 안락사가 진행되었다는 폭로가 사실이라면, 동물보호법이 금지하는 학대행위로서 소정의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유달리 영웅적인 모습으로 미디어에 노출되곤 했던 그의 구조활동들이 실은 책임지지 못할 구조였다는 점에서 도의적인 양해도 어려워 보인다.

[사진=오수진]

■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켰다...대표의 말은 거짓이기도 하지만 사실

사건이 커지자 다른 동물보호단체들도 동물 구조 및 보호 관리시스템 정보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거나 후원금 사용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등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사설보호소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사설보호소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를 인지하여 연구용역을 모집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유기동물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사람들은 이 사건이 예견된 비극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버려지는 동물들이 너무 많아 구조는 도저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보호시설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구조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우리나라의 동물 관련 법제가 사설보호소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맹점이 이번 사건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다. 또한 이를 계기로 사설보호소들과 관련 단체들이 정부의 지원과 관리하에 보다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분노와 반성의 물결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현장의 활동가와 봉사자들은 또다시 ‘살리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순간들을 무수히 마주하며 고통받을 것이다. 매년 10만 마리씩 버려지는 유기동물들을 현재 수준의 전국 시-도 운영 보호소와 사설보호소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켰던 것이었다는 그 대표의 말은 거짓이기도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유기동물의 천국 '티어하임' 사진=오수진]

■ 독일 유기동물의 천국 ‘티어하임’... 텍사스주 오스틴 ‘노킬’ 도시 목표

지난해 여름 베를린 여행 중 티어하임(Tierheim)을 방문하였다. ’유기동물의 천국’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한 동물보호단체가 이곳을 본뜬 대규모 유기동물 보호시설을 짓고 있어 한 차례 널리 알려지기도 했던 유기동물보호소다.

듣던 대로 드넓은 대지에 아주 멋지게 지어진 시설이었으며, 개-고양이-돼지-토끼-새-파충류에 이르는 온갖 동물들이 각자에게 최적화된 충분한 공간을 보장받고 세심하게 케어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의 동물들과 자원봉사자들, 방문객들은 모두 느긋하고 행복해 보였는데, 그 이유는 단지 티어하임이 좋은 시설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유와 행복은 언제 죽을지, 언제 죽여야 할지, 언제 죽음을 목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떻게 안락사를 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 세계의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시설에서 공통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동물 유기에 대하여 벌금 3만 유로(한화 약 3800만 원) 내지 징역 2년 형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10만 마리의 동물들이 버려져 왔는데, 동물보호단체인 SPA(Société protectrice des animaux)가 운영하는 보호소는 입양률이 90%에 이른다.

미국 텍사스주의 오스틴은 2008년부터 노 킬(No Kill)의 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수립하여 민간단체와 관공서가 협력해온 끝에 보호소에 들어오는 95%의 동물들이 입양되며, 안락사 없는 도시가 되었다.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모두 펫샵에서 동물을 사고파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여 보호소의 입양률을 높였다는 데 있다.

결국은 유입을 통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프랑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엄벌로는 유기를 막을 수 없다. 인식의 개선은 중요하지만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캠페인만으로는 공허하다. 때로는 제도가 선행적으로 인식의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은 ‘개 공장’ 등에서 일어나는 동물 학대가 문제되자 동물생산업을 종전의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동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합법이다.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 3년간 동물판매업은 약 80% 증가하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 중 하나로 꼽혔다.

더 이상의 죄 없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동물의 생산 및 판매를 전향적으로 제한하여야 한다. 동시에 유기동물 보호에 필요한 시설과 자원의 확보,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계획, 동물보호단체 및 보호소와 관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이 모두를 뒷받침할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오수진 변호사 동물법학회(SALS) 학술이사 ekfsk39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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