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게임의 표준 확립을 넘어 AOS게임의 모태가 된 ‘워크래프트3’

[Warcraft III]
이미지: http://www.blizzard.co.kr/ko-kr/games/war3/

‘워크래프트’ 1, 2편의 성공으로 이제 블리자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게임 개발사로 거듭났다. 단순히 개발만 하는 개발사에서 유통까지 직접 도맡아 하며 이익률을 극대화시키고 베틀넷의 도입으로 이제는 명실상부한 멀티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성격도 갖췄다.

기존 1,2편이 본격적인 RTS 게임이었다면 ‘워크래프트’ 3편에서는 여기에 새롭게 RPG적인 요소를 더해 전혀 다른 느낌의 게임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WOW(World Of Warcraft)를 위한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일종의 퓨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RTS게임에 RPG적인 요소를 더한 게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존재 했더라도 의미적인 수치를 남기지 못 하고 사라진)에 영웅들이 레벨업을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RTS게임은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전작 ‘워크래프트 2’가 게임 맵에서 ‘전장의 안개’ 시스템을 선보인 뒤 이후 출시되는 다른 RTS 게임에게 표준을 제시했다면, ‘워크래프트 3’ 역시 또 다른 표준을 제시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들이 게임 안에서 레벨 6에 이르면 ‘궁극기’ 스킬을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것, 영웅의 인게임 인벤토리가 6개로 제한되는 점, 그리고 영웅들의 속성에 따라 힘 영웅, 민첩 영웅, 지능 영웅(일명 힘민지)으로 나뉘어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상성을 갖게 해 각 영웅의 능력치 밸런스를 조절한 점 등이다. 이러한 표준은 ‘워크래프트 3’ 이후 거의 대부분의 RTS게임에 적용 되었다.

[Warcraft III]
이미지: 유투브(/watch?v=90H-ARdf1dw)

또한 ‘워크래프트 3’는 이 세상에 ‘AOS(Aeon of strife)’라는 장르를 널리 알리고 확립한 것으로도 인정받는 게임이다. AOS라는 장르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서 유즈맵(모드 게임)이었던 ‘Aeon of strife‘에서 유래된 명칭이지만, 현재는 하나의 게임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이미 비슷한 방식의 게임들이 있었지만 이것을 하나의 게임 장르로 불릴 정도로 AOS게임의 기본적인 개념과 시스템을 확립한 것이 ‘워크래프트 3’에서였다. (정확히는 ‘워크래프트 3’의 유즈맵인 ‘DotA(Defense of the Antients)’다. / 게임톡 편집자 주)

재미있는 점은 AOS게임과 크게 차이 없는 비슷한(사실은 거의 같은) 시스템이지만 회사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게임으로 유명한 라이엇 게임즈에서는 이를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라 부르고 있다. 밸브 코퍼레이션은 액션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뜻을 담아 ‘ARTS(Action Real-Time Strategy)’라 부른다. 이 모두가 실시간 전략 게임(RTS: Real-Time Strategy)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두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각각의 다른 영웅 캐릭터를 선택해 전투를 벌이고 상대 진영의 중간 타워와 본진의 건물을 파괴하면 승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워크래프트 3’의 유즈맵 ‘DotA’에서 대부분 확립된 내용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MOBA나 ARTS라는 장르보다는 AOS라는 명칭에 더 익숙하다.

[Warcraft III - Chaos]
이미지: 유투브(/watch?v=OPof62RIfjQ)

‘워크래프트 3’의 유즈맵인 ‘DotA’, 그리고 ‘DotA’에서 갈라져 나온 한국 버전 ‘카오스’는 유즈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 게임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2003년 ‘워크래프트 3’의 확장팩 ‘프로즌쓰론’이 발매되면서 오리지널 게임에서 사용하던 ‘DotA’가 수정 가능해졌고, 이에 우후죽순처럼 다양한 ‘DotA’ 스핀오프 버전들이 탄생했다. (때마침 원조 ‘DotA’의 제작자가 맵 업데이트를 중단했고, 대안을 찾아 방황하던 전세계 유저들은 스핀오프 버전 중 가장 다양하고 체계적이었던 ‘DotA 올스타즈’에 정착하게 된다. / 게임톡 편집자 주) 

이 때 한국에서는 ‘워크래프트 3’의 유명 클랜 중 하나였던 ‘ANA클랜’의 ‘초고수’라는 유저가 ‘DotA’의 한국어 스핀오프 버전인 ‘DotA CHAOS’를 제작했다. (‘DotA CHAOS’는 한국 유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글로벌 대세였던 ‘DotA 올스타즈’를 무단으로 베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제작자는 맵의 형태를 원작과 반대 방향으로 반전시켜 차별화하고, 이름도 ‘DotA CHAOS’가 아닌 ‘CHAOS(카오스)’로 바꾸게 된다. /게임톡 편집자 주)

표절 논란에서 벗어난 ‘카오스’는 그 후 여러 번의 패치를 통해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필자 역시 한참 ‘카오스’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주로 했던 캐릭터는 마젠다, 다래, 제르딘, 그롬 헬스크림, 적혈귀 등 이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게임 개발팀 직장 동료들이 퇴근하면 10명씩 팀을 맞춰서 근처 PC방에서 5:5로 ‘카오스’를 거의 몇 년 동안 했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OO게임회사 개발자시절]
이미지: 필자 자리에는 마젠다 깃발이 보인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나오기 전까지 ‘카오스’는 한국에서 AOS 장르의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당연히 ‘리그 오브 레전드’가 출시됐을때 여러 모로 비교가 되었다. (‘DotA 올스타즈’ 맵 제작자 중 한명이었던 Guinsoo는 라이엇 게임즈의 개발자로 입사해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들어냈다. ‘카오스’와 ‘리그 오브 레전드’는 ‘DotA 올스타즈’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에 유사해질 수 밖에 없었다. / 게임톡 편집자 주)

필자는 ‘카오스’를 하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해 봤을 때 ‘카오스’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다가 너무나 느린 속도감(‘카오스’에 비해) 때문에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필자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 대해 잘 모르고 섣불리 판단한 것이고, 결국은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를 열심히 하고 있다(판테온, 미스포츈, 징크스, 갱플랭크 등이 주로 하는 캐릭터). 

‘워크래프트 3’는 이렇게 다양한 모드와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는 배틀넷의 지원으로 ‘워크래프트’의 성공적인 신화를 이어갔다. 이제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시리즈까지 판타지는 물론 SF게임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팬들을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해 나갔다. 바야흐로 블리자드의 시대였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블리자드가 아니었다. 블리자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할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온라인으로 옮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이다 게임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워크래프트’라는 하나의 또 다른 세상(World)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World of Warcraft]
이미지: 유투브(/watch?v=j8tAa-MsNjY)

‘워크래프트 3’는 ‘WoW’의 앞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크래프트 3’에서 몇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WoW’의 세계는 그 인기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확장되어 지금까지 총 7개의 확장팩으로 발매되었다. ‘불타는 성전(2007년 1월)’을 시작으로 ‘리치 왕의 분노(2008년 11월)’와 ‘대격변(2010년 12월)’, ‘판다리아의 안개(2012년 9월)’, ‘드레노어의 전쟁군주(2014년 11월)’, ‘군단(2016년 9월)’, ‘격전의 아제로스(2018년 8월)’ 등이다. 특히 ‘대격변’ 패치 때는 ‘WoW’를 즐기는 직장인들 사이에 직장 상사가 ‘왜 이리 일찍 퇴근하나?’라는 질문에 ‘대격변이 일어났습니다.’라는 농담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다(실제로 그랬다가는…).

‘WOW’는 최전성기에 비해 지금은 주춤한 모양새이지만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프트웨어에 유일하게 게임 분야로 선정되고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World Video Game Hall of Fame)' 에 헌액(獻額) 되기도 했다. 전성기 때 ‘WoW’의 회원은 1억 명이 넘었고 244개의 국가의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인 아제로스와 아웃랜드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세계가 확장되면서 점차 세분화되고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여 동부왕국과 칼림도어, 노스렌드, 드레노어, 아르거스, 판다리아 대륙 등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에 열광했다.

너무 빠져 살았다 싶으면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하곤 했다. ‘WoW는 끊는 게 아니라 잠시 쉬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을 만큼 잠시 떠났던 유저들도 새로운 패치가 발표되면 다시 돌아오는 일도 많았고 ‘WOW’는 그저 수 없이 많은 온라인 RPG 중에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온라인 RPG가 ‘WOW’를 참고하고 벤치마킹하며 ‘WOW’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물러나고를 반복했다.

[필자의 캐릭터]
‘앗 결제기간이 끝났다..’

비록 예전만큼의 명성은 아닐지라도 아직도 ‘WOW’는 현역에서 뛰고 있고 무시하지 못할 기록적인 수치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도 잠시 ‘WOW’를 쉬고 있는 중이지만, 가끔 접속 한다고 해도 한적한 시골 마을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발길 닿는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을 즐기는 플레이를 하는 중이다.

이렇게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WOW’의 세계도 그 시작은 매우 단촐했는데, ‘WOW’의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가능성을 열어 준 게임이 ‘워크래프트 3’이기 때문에 블리자드에서도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듯하다.

[Warcraft III Reforged]
이미지: https://playwarcraft3.com/ko-kr/

‘워크래프트 3’가 이제 곧 리포지드(Reforged)라는 부제를 달고 새롭게 출시된다. 오그리마의 탄생부터 불타는 군단의 통치와 리치왕의 등장과 같은 아제로스의 주요 이벤트들을 담아냈고 최신 흐름에 맞게 4K 해상도를 지원한다.

단순히 기존 게임의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한 리마스터 수준이 아니라 게임의 밸런스와 캠페인의 개편 등 거의 모든 부분의 변경이 이루어지는 전혀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리마스터’ 이후 블리자드의 다음 행보는 ‘디아블로 1, 2’ 리마스터가 아닐까 하고 추측한 분들이 많았었는데,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가 먼저 나오면서 오히려 더 환영하는 사람이 많았다. ‘워크래프트’는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고 PC방에 가면 (드물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파오캐’와 같은 ‘워크래프트 3’ 모드 게임을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워크래프트 3는 카오스, 파오캐 전용 에뮬레이터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사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발표에 환호성을 지른 유저들 중에는 수준 높은 그래픽의 ‘카오스’나 ‘파오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카오스’의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파오캐’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본 게임의 캠페인만 해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많은 팬들이 정식 발매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Warcraft III Reforged]
이미지: https://playwarcraft3.com/ko-kr/

필자 역시 그 중에 하나로 일반판(36,000원)과 전쟁의 전리품(47,000원) 중에 고민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예약 구매: 워크래프트 lll: 리포지드는 2019년 12월 31일 또는 그 이전에 출시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가 다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올 해 안에는 출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디아블로 리마스터’ 역시 관련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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