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형만한 동생 있다 입증... '워크래프트2'로 통쾌한 연타석 홈런

게임별곡 시즌2 [블리자드-‘워크래프트2’]

‘워크래프트’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온갖 혹평과 호평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새로 나온 수 많은 게임 중에 하나였고 그나마 장르도 한정적인 판타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게임업계에도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달랑 한 곡만 흥행에 성공하고 그 뒤로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 못하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같은 게임이 한 둘이 아니고 시리즈화 되면서 속편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 1년 만에 출시한 ‘워크래프트 2’는 형만한 아우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속편의 징크스 따위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전작에 다 담지 못했던 것들을 추가하고 확장해 명실상부 ‘워크래프트’의 시대가 열리게 만든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PC라는 물건은 본격적인 게임용도의 기기라기보다는 교육용과 사무용 그 밖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업무 보조기기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TV광고만 봐도 아빠는 PC로 회사 일을 하고(근데 왜 집에서까지 일을..) 엄마도 가계부 작성이나 요리 등의 도움을 받고 자녀들이 학습용으로 온 가족이 모여 PC 한 대를 서로 사용하려고 화목하게 다투는 내용의 광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PC는 콘솔 게임에 비해 게임 전용 기기로서의 입지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락실과 콘솔 게임이 정통 게임이라면 PC게임은 그저 간신히 컨버전(이식)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판이었다. 물론 PC 전용의 게임도 출시되기는 했지만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한 해에 출시되는 게임 개수만 해도 PC게임 보다는 콘솔 게임기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시절이고, 지금도 남아있는 이름있는 비디오 게임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콘솔용 게임을 만드는 업체들이었다.

[Warcraft II]이미지: 유튜브(/watch?v=6eUZnJr88qwvebWjSXr1Hs)

간혹 PC게임으로 출시하더라도 유명한 게임 대부분은 기본 바탕이 아케이드/콘솔 게임이었다. 그러한 시대에 걸맞게 블리자드 역시 아케이드/콘솔 게임기의 이식작업을 주로 하던 회사로 출발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실리콘 & 시냅스 시절)

하지만,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하나로 지난 날 남의 일이나 해주던 외주 하청 업체에서 자체 개발과 유통을 할 수 있는 개발사로 거듭났다. 더 이상 비디오 게임 이식 작업을 하면서 외부 투자자나 저작권자들의 간섭에 시달리지 않고 자체 게임 개발에 몰두해서 온전히 자신들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워크래프트 2’에서 정점을 찍었다.

[Warcraft II] 이미지: 유튜브(/watch?v=PqczlhTpT2I)

‘워크래프트 2’ 출시 이후 이제 더 이상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은 ‘듄2’의 짝퉁과 같은 비난과 세계관만 바뀐 아류 게임 등의 비아냥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워크래프트’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으로 하나의 시리즈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거의 모든 매체로부터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젠 ‘워크래프트’를 까면 깐 대상이 욕을 먹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은 불과 1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때 내부적으로는 힘겹고 어려운 시절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회사의 인수과정이나 지분 등의 문제로 인한 경제적/정치적인 어려움일 뿐이었다. 이미 수 없이 많은 외주 작업을 통해 자신들만의 개발 능력에는 자신이 있던 터였고, 후에 마이크 모하임과 공동 창업자 앨런 애드햄 등은 이 당시를 남겨진 것(돈)은 없어도 남겨진 것(기술력)이 많다고 회고하였다. 자금 사정으로 외주작업을 했던 것이 당시에는 수익이 별로 나지 않아 힘들긴 했어도 또 다른 의미로는 자체 개발한 게임의 출시 이후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고 회사 문을 닫아야 했던 다른 업체들에 최소한 안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지속적인 개발팀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플랫폼의 개발을 경험했기에 이제 자체 개발에도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Warcraft II] 이미지: 유튜브(/watch?v=6eUZnJr88qwvebWjSXr1Hs)

축적된 기술력을 총동원해 자신들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자 개발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졌다.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것에서 당장 자신들의 일이 되어버리니 이제는 실패의 리스크도 감당해야 했고 성공 이후의 보상도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부분부터 엄청나게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VGA(640 X 480)해상도의 고화질을 지원했고(지금은 핸드폰 해상도보다도 못하지만) 부대 지정 역시 9개까지 가능했다. 그 당시에만 해도 PC 게임들 중에는 320 X 200의 해상도의 게임들도 많았었다는 점은 감안하면 당시 수준으로 꽤 퀄리티 높은 그래픽을 보여 준 게임이었다.

[The Computer Chronicles - Windows 95 (1994)] 이미지: 유튜브(/watch?v=Vai9bdnw_uo)

이 때는 검은 화면에 글자만 보이던 DOS에서 본격적으로 마우스 사용이 필수였던 Windows 95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이라 여러 가지가 혼재한 시절이었다. Windows 95 이전에 Windows 3.1이 등장할 때만 해도 기존 DOS 환경과는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Windows 3.1은 정작 자체 시동이 가능하지 않고 DOS 위에서 다시 한 번 실행해야 하는 형식이었기에 Windows 전용으로 출시 된 프로그램을 사용할 일이 없으면 굳이 실행시키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곧 이어 PC업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Windows 95가 발표되면서 PC 시장은 급격하게 변해갔고 대표적으로 대용량의 메모리가 필수가 되었다(그래 봤자 4MB, 8MB, 16MB, 32MB). 참고로 그 당시 필자는 Pentium(펜티엄) 60 CPU에 램 8메가였다. 그 뒤를 이은 것이 VGA 카드였다. 비디오 램이라 불리는 것이 286 시절에는 불과 1메가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면 본격적인 MB(메가 바이트) 단위의 비디오 램이 장착 된 VGA카드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그래 봤자 MB 메가 바이트).

현재 비디오 카드에 쓰이는 GB(기가바이트)단위의 용량은 그 당시 하드디스크로도 접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고작 1GB(1,024MB) 하드 디스크는 한참 뒤에야 나왔고 당시만 해도 100MB, 120MB, 300MB 등의 하드 디스크가 대세였다. CPU, RAM, Video Card(VRAM)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바뀐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보조 저장장치의 변화이다. 기존에 FDD라 불리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CD-ROM 드라이브가 보편화된 것이다.

[Warcraft II Package Box] 이미지: http://www.sorethumbretrogames.com/

더 이상 디스켓을 갈아 끼우고 들고 다니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CD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어차피 둘 다 하드에 저장하겠지만). 동영상을 포함하여 게임 자체의 용량도 고 용량화 되다 보니 디스켓 수 십장으로도 저장이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사운드 카드의 보편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워크래프트2’ 즈음부터 진정한 멀티미디어 PC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워크래프트 2’ 역시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 패키지 박스도 CD-ROM버전으로 출시되었다. 그 당시에 실제로는 디스켓 단위의 용량밖에 안 되는 게임인데도 억지로 CD-ROM으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플로피 디스켓 여러 장으로 출시하는 제조비용 보다 CD-ROM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CD-ROM 한 장을 다 채울만한 용량도 안 되고 용량이 남아 돌아 본 게임과 별 상관없는 자료들이라든가 데모 버전 프로그램 수록이라던가 이것 저것 억지로 채워 넣는 패키지도 많았다. ‘워크래프트’는 시리즈 1편이 3.5인치 플로피 디스켓(4장)으로 출시 됐었지만(나중에 CD-ROM 버전도 출시) ‘워크래프트 2’는 진정한 CD-ROM 타이틀답게 풍부한 음성지원과 게임 내부에 CG 동영상 등 진정한 멀티미디어 타이틀답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Warcraft II]이미지: 유튜브(/watch?v=2y6uxykoiqw)

‘워크래프트’ 1편의 경우 요구사항도 MS-DOS 5.0이상의 운영체제(그래 봤자 DOS 하나 밖에 없음)와 VGA 비디오 카드, 4MB 이상의 램(메인 메모리)을 요구했던 반면 ‘워크래프트 2’는 Windows 95이상과 60Mhz 펜티엄 프로세서, 16MB 이상의 램과 2배속 이상의 CD-ROM드라이브, 80MB 이상의 하드 디스크 여유공간 등을 요구했다. 불과 1년 만에 급격하게 상향이 된 것이다.

‘워크래프트2’는 단순히 그래픽적인 부분에서만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부분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전편의 부대지정 개수가 4개에서 9개까지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해전과 공중전 등 각종 유닛들이 더 추가되었다. 그리고 ‘워크래프트 2’에서 최초로 창안했다고 볼 수 있는 안개 시스템 역시 특징 중에 하나다. 기존의 다른 RTS에서도 맵 전체가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을 제공하긴 했지만 ‘워크래프트 2’는 기존의 룰에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추가했는데 맵 상에 환하게 밝혀진 부분도 금새 다시 어두워지고 반투명한 회색 안개로 덮이도록 만들었다.

계속 맵을 밝히려면 유닛을 이동시켜야 했는데, 한 번 이동하기만 하면 계속해서 맵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치트에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똑같은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전편과 같이 아류작이라는 비난을 받을게 뻔하므로 무언가 변경되거나 추가되기를 바랬을 것이고 이런 저런 사정이 맞물려 결국 기존의 안개 시스템에 기능을 추가하여 자신들만의 안개 시스템인 ‘전장의 안개(Fog of war)’시스템이 완성되었다.

[Warcraft II] 이미지: 유튜브(/watch?v=2y6uxykoiqw&t=918s)

‘듄2’에서도 이미 안개 시스템이 있었지만, RTS의 바이블이자 시초로 평가받는 ‘듄2’에서는 한 번 이동한 자리는 계속해서 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단순히 안개 시스템(Fog System) 정도로 불렸고 전장의 안개(Fog of war)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워크래프트 2’에서 채택한 이 전장의 안개 시스템은 이후 출시되는 모든 RTS 게임에서 한 번도 탐색하지 않은 지역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색으로 표시하고 한 번이라도 유닛이 지나간 자리는 그 보다 옅은 반투명한 회색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고 이후 다른 게임에서 차용하면서 이 시스템을 전장의 안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자 비로소 의미가 된다는 것처럼, 이 시스템 역시 이름을 붙이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최초의 전장의 안개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 ‘워크래프트 2’였고 그것을 그 이후 출시하는 거의 모든 RTS게임에서 차용함에 따라 원조를 제공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워크래프트 2’는 시리즈 1편에서 아류작이라는 모멸감을 딛고 일어서 이제는 원조로 거듭나고 있었다. 모두가 RTS하면 ‘듄’보다는 ‘워크래프트’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판타지 RTS 게임 중에 ‘워크래프트’만큼 게이머들에게 깊이 있게 각인 된 게임도 없을 정도로 이제 ‘워크래프트’는 RTS의 특정 장르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된 것이다.

(다음 편에 워크래프트 2, 3편이 이어집니다.)

■ 필자의 잡소리

[Warcraft II]이미지: 유튜브(/watch?v=6eUZnJr88qwvebWjSXr1Hs)

‘워크래프트 2’는 블리자드의 또 다른 크래프트 시리즈인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게임이기도 하다. ‘워크래프트 2’의 성공 덕분에 다음으로 출시할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 2’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임으로(같은 회사의 RTS 게임이라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전체적인 기본 시스템이나 메뉴 UI 역시 상당히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시스템 상속적인 부분 외에도 정말 중요한 점은 ‘워크래프트 2’의 초대박 흥행으로 블리자드는 이제 자금 걱정 없이 게임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디아블로’나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들이고 ‘워크래프트’가 흥행에 실패했었다면 그 뒤의 게임들도 없었을 것이다.

온라인 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이어지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야말로 블리자드의 위기의 순간 회사를 살리고 지금까지 올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일등공신과 다름 없는 게임인 것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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