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보너스 폐지 후 전현직 직원 고발 줄이어…전세계 개발자들 충격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자들에게 턱없이 낮은 급여를 지급하며 열정페이를 요구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최근 블리자드 스타 개발자들이 연이어 은퇴하거나 퇴사한 것은 이 때문이며, 개발자들 일부는 급여만으로 집세를 충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주장이다. 내부 고발과 폭로가 연이어 터지자, 블리자드를 꿈의 직장이라고 여기던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데이비드 브레빅 “적은 임금 받으며 왜 일하냐” 비판

[데이비드 브레빅, 출처: 위키피디아]

이번 사건은 ‘디아블로의 아버지’ 데이비드 브레빅(David Brevik)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데이비드 그레빅은 블리자드노스에서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를 총괄한 전설적인 개발자다. 그는 2003년 블리자드를 퇴사하고 플래그십 스튜디오, 터바인, 가질리언 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쳐 현재 그레이비어드게임즈에 몸담고 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10월초 트위치에서 그녀의 아내가 진행하던 방송에 출연해 블리자드를 강하게 비판했다. 블리자드가 직원들에게 연말에 지급해오던 보너스 프로그램인 ‘블리자드 홀리데이 플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블리자드는 J. 알렌 브랙이 신임 대표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전한 다음날 ‘블리자드 홀리데이 플랜’을 없애고 보너스를 기본 연봉에 통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블리자드는 기본 연봉을 업계 평균보다 낮게 지급하는 대신, ‘블리자드 홀리데이 플랜’을 통해 연말 보너스를 일시불로 많이 지급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마이크 모하임 전 대표의 경우 본봉의 37%에 달하는 금액을 연말 보너스로 받았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블리자드 홀리데이 플랜’ 폐지 이후에는 각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는 게임의 수익에 따라 최대 10%의 급여를 추가로 받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블리자드는 업계 평균 이하의 연봉을 지급하지만 직원들은 보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며 “이 보너스가 없어진다는 건 직원들이 돈을 덜 번다는 뜻이며, 이로 인해 블리자드에서는 직원들의 대탈출(exodus)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어 개발자들에게 “블리자드에서 왜 일하냐”고 물으며 “평판도 얻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다. 평균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일할 이유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가 초심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의 블리자드는 예전의 블리자드가 아니다. 심지어 3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모회사 액티비전이 (경영에) 개입하고 있다. 액티비전은 크리스 멧젠, 롭 파르도, 마이크 모하임 등 모든 블리자드 경영진을 내쫓고 있다. 블리자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5명 중 3명이 사라졌고 1명도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블리자드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안다”고 주장했다.

다만 데이비드 브레빅은 2003년 블리자드를 퇴사했기에, 현재 회사 경영진의 속사정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의심해볼 필요는 있다.

“너 아니라도 올 사람 많다” 열정페이 강요?

[제레미 햄블리(TheQuartering)]

데이비드 브레빅이 강도 높은 비판을 펼친 후, 이를 본 블리자드 전현직 직원들의 고발이 잇따르며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2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게임 유튜버 제레미 햄블리(Jeremy Hambly)는 11월 19일 ‘블리자드 직원들에 따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블리자드 현직 직원들에게 제보받은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한 직원은 “블리자드에서 일한 경력은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된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황금티켓”이라며 “그러나 블리자드의 문제는 이를 이용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상에 따르면 블리자드의 일부 직군 연봉은 3만달러(약 3400만원)에 불과하다. 블리자드는 미국에서도 집값이 제일 비싼 ‘미국 8학군’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의 아파트 월 렌트비는 방 3개 기준 300~400만원에 달한다.

또다른 직원은 “가정을 이루고 싶은 사람은 블리자드 인근의 주거비와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회사를 떠난다. 어떤 사람은 주거비를 내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출근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이어 “우리들 중 상당수가 열정을 착취당하고 있다”며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를 좋아해서 입사한 사람들은 돈을 적게 받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한다. 또 이들은 너 아니라도 올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용 줄이고 투자자 만족시켜라” 액티비전 압박 의혹

21일에는 북미웹진 코타쿠가 액티비전에 간섭을 받고 있는 블리자드 내부 상황을 보도해 관심을 모았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액티비전이 블리자드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유로웠던 블리자드 내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올해 봄 블리자드에 합류한 암리타 아후자(Amrita Ahuja)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연례 사내 회의에서 “블리자드의 올해 최우선 목표는 비용을 절감하고 지출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한 곳에는 돈을 쓰지 말라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액티비전의 간섭 때문에 퇴사했다는 한 직원은 “모든 사소한 지출 내역들이 면밀하게 조사됐다”고 밝혔다. 또다른 전 직원은 “최근에는 신작 IP가 없기 때문에 모든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오버워치가 한 해에 돈을 얼마나 쓸어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후, 액티비전으로부터 투자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전 대표]

직원들은 액티비전의 영향력이 커진 시기에 마이크 모하임 전 대표가 사임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 전직 개발자는 “모하임은 사내에서 널리 사랑받았다”며 “그는 수익성을 크게 신경쓰지 않을 뿐더러, 그저 직원들이 행복함을 느끼고 좋은 게임을 만들어 팬들을 기쁘게 하길 원했다”고 전했다.

블리자드는 이달 초 열린 블리즈컨에서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모바일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발표해 전 세계 팬들의 반발을 샀다. 팬들 사이에서는 “블리자드가 초심을 잃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때마침 블리자드 내부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루머와 폭로가 이어졌다. 다만 각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상당해 유저들 간 갑론을박도 펼쳐지는 중이다. 블리자드는 이번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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