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블리즈컨 ‘디아블로’ 모바일 버전 발표에 팬들 불만 드러내

[블리즈컨 스토어에 등장한 피켓맨]

매년 블리즈컨이 열리는 시기에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의 굿즈 스토어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무릇 게임쇼의 또 다른 재미는 게임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다양한 상품들을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내는 업체로 유명하다.

블리즈컨 2018 이틀째 되던 날, 블리즈컨 스토어에는 피켓을 든 한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컨벤션센터 E홀 입구에 서서, 굿즈를 구매하러 오는 관람객들을 향해 피켓을 들어보였다. ‘디아블로4’, 또는 ‘디아블로2 리마스터’ 발표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팬을 쥐어주며 ‘디아블로 모바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투표를 받았다. 나에게도 투표를 권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Excited’가 아닌 ‘Not Excited’에 표를 던졌다. 그는 관람객들을 향해 투표 현황을 보여주며 모바일 버전 발표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블리즈컨을 여러 번 다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블리즈컨 스토어에 등장한 피켓맨은 '디아블로 모바일'에 대해 투표를 부탁했다]

올해 블리즈컨 개막식에서 블리자드는 ‘디아블로’의 첫 모바일 타이틀 ‘디아블로 이모탈(Diablo Immortal)’을 공개했다. 그러나 공개와 동시에 블리즈컨 현장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 수많은 이들이 “설마”라고 생각하다, 화면에 넷이즈 게임즈의 로고가 뜨는 순간 속으로 “헉!”하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디아블로 이모탈’ 공식 Q&A에서는 한 남성이 “혹시 이거 철지난 만우절 농담인가?”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입은 붉은색 디아블로 티셔츠는 지난해 블리즈컨 스토어에서 판매하던 옷이다. 나도 같은 셔츠를 샀으니까.

유튜브나 트위터, 게임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험악한 수준이다. 블리자드가 공개한 트레일러 영상에는 ‘좋아요’보다 ‘싫어요’가 압도적으로 많이 찍히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반응이 이렇다. 올해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팬들에게 역대급 ‘대실망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해외 게임 웹진에서는 이번 사태를 열성 팬들의 백래쉬로 다룬다. 모바일은 유저들이 기대하던 결과물이 아니기에 반발을 샀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순히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거나 “모바일에 대한 반감”으로만 지금의 반응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블리자드 팬들은 전통적으로 PC 하드코어 유저들이 대부분이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히어로즈’ ‘오버워치’ 등. 블리즈컨이라는 행사는 그 PC 게임의 골수 유저들이 모여 1년에 한 번씩 전당대회를 여는 자리다. 전 세계에서 비싼 항공권과 숙박료를 지불하고 온다. 입장권도 유료다. 전날 밤부터 행사장 앞에서 밤을 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서 발표한 가장 중요한 핵심 타이틀이 모바일게임이다. 만약 ‘디아블로 이모탈’이 다른 행사에서 발표됐거나 다른 방식으로 발표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반발은 있겠지만, 이 정도까지의 후폭풍은 없지 않았을까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블리자드는 올해 블리즈컨에서 ‘디아블로2 리마스터’, 또는 ‘디아블로4’를 발표할 것이라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각종 해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소문과 열성 팬들의 뇌피셜 신호들로 가동된 행복회로는 블리즈컨 직전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회로를 작동시킨 전원부는 블리자드가 지난 8월 공개한 ‘디아블로의 미래’ 영상에서 나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연말에는 뭔가 보여드릴 게 있을수도 있겠네요”라는 그 말에서 모바일을 예상한 디아블로 유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얼렁뚱땅 넘어가다시피 한 ‘디아블로’ 20주년에 대한 불만, 신규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이 덧붙었다. 이게 얼마나 강력한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원래 다른 디아블로 타이틀을 함께 발표하려다, 어떤 사정이 생겨 모바일만 발표된 것은 아닐까”라는 회로가 돌아갈 지경이다.

넷이즈와 공동 개발한 이유로 블리자드는 “지난 10년간 파트너로 쌓아온 신뢰 관계”를 들었다. 문제는 블리자드 게임 유저들과 넷이즈는 그러한 신뢰 관계나 파트너십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한국만 해도, 펍지주식회사가 넷이즈의 ‘황야행동’에 대해 ‘배틀그라운드’를 표절했다며 법적소송을 걸었던 사례가 있다. ‘디아블로’ 스타일의 모바일게임 ‘디아:M(라스트 블레스)’의 개발사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실 ‘디아:M’은 한국 퍼블리싱 업체가 붙인 이름인데, 이 과정에서 넷이즈가 ‘짝퉁 개발사’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블리자드는 첫날부터 ‘디아블로 이모탈’ 시연 버전을 설치하고, 블리즈컨 관람객들이 직접 플레이를 해볼 수 있게 했다. 플레이를 시작하니 야만용사, 마법사, 수도사 등 ‘디아블로’ 캐릭터들이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움직였다.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 “중국 양산형 게임에 스킨만 바꿨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모바일 액션 RPG라는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에 가깝다. 그래픽이나 사운드도 직접 플레이 해보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지금 ‘디아블로’ 팬들에게는 “모바일은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게임 내가 할 게임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지금 이걸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반발을 사는 중이다. 폰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예고부터 발표까지,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한 행보를 보였어야 후폭풍을 막을 수 있었다.

블리즈컨에서 진행된 ‘디아블로 이모탈’ 관련 인터뷰는 청문회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기자들은 앨런 애드햄 블리자드 공동설립자 겸 선임 부사장에게 “왜 이렇게 팬들의 반응이 부정적인가” “개발이 완전히 취소될 가능성은 없는가” “모바일도 그냥 블리자드가 만들면 안되나” 등의 질문을 던졌다.

불편한 질문에도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고 답변을 이어갔다. 그리고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그는 “확실한 것은 블리자드 내부에 디아블로와 관련된 여러 팀들이 있고, 여러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디아블로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모바일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이 전 IP(지적재산권)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 블리자드 내부에서는 블리자드 역사상 가장 많은 신규 프로젝트들이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디아블로 이모탈’ 뿐만 아니라 블리자드의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확신을 내비쳤다.

결론적으로 블리자드가 모바일 시장에 대응해 나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내년 블리즈컨에서 ‘와우 모바일’이 발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에서 판호가 나올지, 캐주얼 중심인 북미 시장에서 자동사냥 없는 RPG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블리자드의 모바일 대응이 무조건 잘못된 길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저들은 그 과정에서 일어날 부작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PC 타이틀 개발을 등한시하거나, 그저 IP 장사에만 열을 올리거나, 원작이 망하도록 내팽겨 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다. 핵심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블리자드가 되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팬들의 부정적 시선들을 없앨 방법은 단 하나. 블리자드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뿐이다. 팬들이 원하는 신작 게임을 부지런히 내놓고, ‘디아블로 이모탈’이 돈 벌려고 만든 그저 그런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겨울, 그리고 내년은 블리자드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블리자드의 게임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비록 짜증이 솟구치고 불안하더라도, 인내심을 발휘해 블리자드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지금 블리자드는 딱 거기까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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