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정하섭 칼럼 [책나무숲1] 독서, ‘그것 너머’를 꿈꾸다

동화작가 정하섭 칼럼 [책나무숲1] 독서, ‘그것 너머’를 꿈꾸다

더 빨리, 더 많이! 근대의 구호다. 그 세계를 뒷받침하는 학교의 구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그래 왔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빨리 문제를 풀고 더 많이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이 우등생이다. 독서도 그렇다. 도서관에서 책을 더 많이 빌리고 더 많은 독서록을 쓰면 상을 주는 초등학교가 적잖다. 무슨 책을 골랐고, 어떻게 읽었고, 어떤 글을 썼는지는 따지지 않은 채. 이게 독서 증진에 도움이 될까?

근대를 넘어섰다는 21세기라고 양과 속도를 측정하고 가늠하는 일이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독서의 가치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듯 단순화, 획일화할 수 없다. 속도와 양이 독서의 재미, 유익을 보증해 주지도 않는다.

독서 행위는 눈이 아니라 뇌에서, 내면에서 이루어진다. 개성적이고 내밀하다.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걸을 때 보이는 것과 뛸 때 보이는 것과 날아갈 때 보이는 것이 각기 다른데,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순위를 매겨 단정할 수 없잖나.

순위 매기기는 굳은살이며 더께다. 독서를 왜 하는지, 해야 하는지 물어 보면, 그 이유는 더욱 자명하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독서는 자신과 세계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며 그 너머를 꿈꾸는 행위다. 이런 행위를 하는 까닭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양과 속도에 관해서라면 다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바삐 살아왔는가. “더 빨리, 더 많이!”의 구령소리에 쫓기듯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설사 수확한 과실이 곳간에 넘쳐나고 쌓아올린 성채가 화려하다 해도, 눈에 보이는 그것 너머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독서의 끝에 ‘그것 너머’가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여름에 필자는 ‘나 책이야’라는 그림책을 펴냈다. 이 책은 책 캐릭터가 사람에게 자신의 매력과 가치를 어필하는 책의 자기소개서다.

독자들은 이 책을 보고 책에 대해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족할 수 있겠지만, 책을 펴낸 속뜻은 그것 너머에 있다. 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네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 그 책의 한 대목이다.

독서라고 하면 흔히들 책 내용을 습득하거나 즐기는 행위라고 여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과 대화, 소통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대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을 때, 그러니까 선택한 책과 그 책을 읽는 태도, 과정에서 자신이 드러난다. 그 드러난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 그것 너머의 세계가 눈앞에 열리지 않을까? 읽는 것은 묻는 일이다.

글쓴이=정하섭 동화작가 woojunamup@naver.com 

정하섭 프로필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어린이책 작가
도서출판 우주나무 대표
세 아이의 아빠.

40여 종의 어린이책 출간
세 편의 작품이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고,
다수의 책이 해외에서 번역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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