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4> 디아블로Ⅲ

‘피, 땀, 픽셀 : 트리플 A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4> 디아블로Ⅲ

2012년 5월 15일, 전 세계 수십만 명의 게임플레이어가 배틀넷에 접속해 ‘디아블로 Ⅲ(Diablo III)’ 시작 버튼을 눌렀다.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10년 가까이 공들여 만든 게임이다. 팬들은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가상의 지옥에서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악마를 물리칠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태평양 시간으로 5월 15일 자정에 공개된 ‘디아블로 Ⅲ’는 정상적인 실행 화면 대신 애매하고 실망스러운 메시지만 보여주었다.

현재 서버가 혼잡합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주십시오. (Error 37)

‘디아블로 Ⅲ’는 블리자드가 십 년간의 고생 끝에 세상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쯤에서 단념하고 눈을 붙인 사람도 있고, 끈질기게 매달려 버튼을 누른 사람도 있었다. 한 시간 뒤에도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 서버가 혼잡합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주십시오. (Error 37)

팬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Error 37’ 화면 ‘짤’을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퍼뜨렸다. ‘디아블로’ 플레이어들은 이미 ‘디아블로 Ⅲ’를 온라인으로만 출시한다는 블리자드의 결정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블리자드가 해적판이 유통될 것을 두려워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 마당에 서버 문제까지 터지자, 온라인 단독 출시는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믿음이 더 굳어졌다. 팬들은 ‘디아블로 Ⅲ’가 오프라인에서도 실행된다면 Error 37의 뜻을 찾느라 씨름하는 대신 당장이라도 신 트리스트럼을 향해 전진할 거라고 생각했다. 

[신 트리스트럼 콘셉트 아트. 디아블로3 홈페이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있는 블리자드 캠퍼스에서는 이 사태에 경악한 엔지니어와 라이브 오퍼레이션 프로듀서들이 자체 ‘긴급 상황’을 선포했다. ‘디아블로 Ⅲ’의 인기는 그들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폭발적이었지만, 서버는 게임에 접속하려는 플레이어들의 기세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태평양 시간으로 새벽 1시 30분경, 블리자드는 짧은 공지를 올렸다.

“접속량이 매우 많아 로그인과 캐릭터 생성이 평소보다 느리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며,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편, 게임이 먹통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디아블로 Ⅲ’의 나머지 제작진은 회사 근처에 있는 어바인 스펙트럼 쇼핑몰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뾰족한 갑옷을 입고 거대한 스티로폼 전투 도끼를 든 열성 팬 수백 명이 ‘디아블로 Ⅲ’ 출시 공식 행사에 자리했다. 블리자드 개발자들은 군중에게 사인을 하고 꽃을 나눠주던 중 서버 과부하 소식을 들었다. 이는 분명 게임을 낼 때 한 번씩 터지는 정도의 사고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블리자드의 조시 모스케이라(Josh Mosqueira)는 그때를 떠올렸다. “말하기도 웃기죠. 어마어마한 기대작이었는데 어떻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그래도 그 문제를 논의했던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은 납니다. 정말 준비가 다 되었냐, 예상치를 두 배, 세 배로 높이자는 등의 말이 오갔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높인 예상치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죠.”

그날 이후 ‘디아블로 Ⅲ’에서는 ‘서비스에 접속할 수 없거나 접속이 중단되었습니다(Error 3003)’라는 또 하나의 애매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Error 37만큼 귀에 쏙 들어오거나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팬들은 나머지 2966개의 오류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Error 37 화면이 다시 떴고, 게임 출시 이후 며칠 동안 플레이어들을 괴롭힌 다른 서버 문제들도 제자리걸음이었다. 휴일 없이 24시간 가동되는 블리자드 작전실에서는 피곤에 찌든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앞에 모여 커피를 홀짝이며 네트워크 개선 방안을 찾고 있었다.

블리자드는 1991년 창사 이래 게임의 새로운 기준이 된 ‘워크래프트(Warcraft)’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비롯한 판타지 게임을 만들며 명성을 쌓았다. 게임 상자에 울퉁불퉁한 푸른색 블리자드 로고가 붙어 있다는 건 다른 게임들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블리자드가 2000년에 출시한 ‘디아블로 Ⅱ’는 완벽에 가까운 액션 RPG로, 수없이 많은 청소년이 컴퓨터 앞에 앉아 흉측한 악마들을 무찌르고 종잡을 수 없는 요르단의 반지를 찾아 밤을 지새우게 했다. ‘디아블로 Ⅱ’는 게임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널리 손꼽힌다. 그리고 2012년 5월, 평탄치 않게 출시된 ‘디아블로 Ⅲ’는 블리자드 로고에 처음으로 ‘공개적인 실패’라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Error 37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개발자들이 발견한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의 난도였다. ‘디아블로 Ⅲ’의 난도 체계는 원래 ‘디아블로 Ⅱ’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반 모드로 한 판 하고 어려운 악몽 모드로 다시 한 판을 한 뒤, 세 번째로 지옥 모드를 돌린다. ‘디아블로 Ⅲ’는 이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고 네 번째 난도인 불지옥 모드를 도입했다. 최고 레벨을 깬 플레이어들을 위해 설계한 불지옥 모드는 게임 내 최고의 장비가 없으면 이길 수 없을 만큼 지독히 어려웠다. 그러나 ‘디아블로 Ⅲ’의 최고 장비가 불지옥 모드에만 떨어져 있다는 점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심술궂고 악랄한 단면이었다.

이후 몇 달에 걸쳐 블리자드는, 사람들이 ‘디아블로 Ⅲ’를 플레이하는 것보다 날로 먹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패치들은 플레이어가 항아리 깨기에서 벗어나게 할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디아블로 Ⅲ’는 아직 밑 빠진 항아리 신세였다. 이 항아리를 고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디아블로 Ⅲ’의 ‘결말’ 또는 중요한 다음 단계는 확장팩이었다. 블리자드는 원래 출시하는 게임마다 확장팩을 푸짐하게 제공하는데, ‘디아블로 Ⅲ’ 제작진에게 이는 게임을 정비할 최고의 기회였다. 2012년이 끝나갈 때쯤 그들은 고쳐야 할 문제와 아이템 개량 등 추가할 요소, 종반전에 새로 넣을 목표 들을 전부 모아 거대한 구글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디아블로 Ⅲ: 영혼을 거두는 자 소개 페이지]

그리고 모스케이라는 팀원들에게, 그들이 ‘디아블로 Ⅲ’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한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게이머들이 ‘디아블로 Ⅱ’를 아쉬워할 때 이 게임의 처음 모습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디아블로 Ⅱ’를 이야기할 때 블리자드가 팬들의 의견에 부응해 2001년에 출시한 확장팩 ‘파괴의 군주(Lord of Destruction)’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게임은 그 확장팩이었다. 수백만 플레이어가 블리자드에 의견을 보내고, 블리자드가 여기에 직접 부응한 결과였다.

“이 게임을 개발하고 시험한 장본인들이라서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게임을 출시할 때까지는 그렇죠.” 모스케이라의 말이다. “출시하고 하루만 지나도, 일반 사람들의 플레이 시간 총합이 지금까지 제작진의 플레이 시간 총합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절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되죠. 플레이어들은 반응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참여하고, 교류하죠. 이런 현실에 엄중하고 절제력 있게 반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무척 힘듭니다.”

‘디아블로 Ⅲ’ 팀은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Reaper of Souls)’를 통해 게임을 수정할 기회를 엿보았다. Error 37만이 아니라 ‘디아블로 Ⅲ’의 초기 결함을 전부 고치고자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게임에서 문제점을 찾아낼 땐 새로운 관점을 지니는 게 좋다. ‘디아블로 Ⅲ’의 핵심 요소인 전리품 제도를 개편할 때도 그랬다. ‘디아블로 Ⅲ’ PC 버전에서는 적이 죽을 때 전리품을 떨어뜨려 플레이어들이 멋진 새 무기와 방어구를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콘솔 버전에서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쓸 수 없어 반짝이는 반지와 부적을 살펴보는 게 단순노동이 될 수 있다. ‘디아블로 Ⅲ’의 콘솔 버전을 플레이 테스트해본 결과, 사람들은 전리품을 너무 많이 모은 탓에 몇 초에 한 번씩 보관함을 정리하느라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콘솔 팀은 게임 공식을 수정했다. “회색이나 흰색 아이템이 떨어져야 하는 상황 중 70퍼센트는 그냥 금을 떨어뜨리기로 했습니다.” 모스케이라는 말했다. ‘디아블로 Ⅱ’ 애호가들에게는 극단적인 변화처럼 느껴졌지만, 이는 ‘디아블로 Ⅲ’의 PC와 콘솔 버전을 모두 개선할 전리품 2.0 제도의 밑바탕이 될 수도 있었다. “떨어진 전리품의 양을 줄여도 되겠다 싶었어요.” 모스케이라는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전리품을 더 효과적으로 떨어뜨려야 하죠.”

모스케이라 팀은 전리품 2.0으로 ‘디아블로 Ⅲ’의 장비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불만이 전부 해결되기를 바랐다. 팬들은 최고 수준의 ‘전설’ 아이템을 얻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했다. 고대하던 전설 아이템을 손에 넣었어도 속성이 무작위로 생성되다 보니, 설레는 마음으로 집어든 반짝이는 주황색 무기의 속성이 캐릭터의 직업과 맞지 않아 그대로 썩혀야 할 때도 있었다.

디자이너들은 한참 후에야 무작위성에 대한 집착이 ‘디아블로 Ⅲ’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무작위성의 왕좌를 숭배하기 시작했어요.” 리드 디자이너 케빈 마틴스(Kevin Martens)는 말했다. “무작위성을 최대한 높였죠. 무작위성은 게임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요… ‘영혼을 거두는 자’와 ‘디아블로 Ⅲ’의 가장 큰 차이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무작위성에서 거슬리는 부분을 걸러냈습니다. 애초에 무작위성을 도입했던 건 플레이어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디아블로 Ⅲ: 영혼을 거두는 자’ 강령술사]

2013년 8월, 블리자드는 독일 게임스컴 박람회에서 기자와 팬들을 가득 모아놓고 ‘영혼을 거두는 자’를 발표했다. 죽음의 대천사 말티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확장팩에는 새 직업 성전사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Ⅲ’ 개발자들이 팬들의 불만에 귀 기울인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든 무료 패치에는 전리품 2.0을 필두로 한 온갖 요소가 들어 있었다.

“발표 직전, 기자회견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조시 모스케이라는 말했다. “다들 이번엔 괜찮아야 한다고 걱정하는 게 느껴졌어요. 실망할 각오를 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블리자드는 발표 영상을 띄웠다. 말티엘을 세상에 소개하는 ‘영혼을 거두는 자’의 4분짜리 오프닝 시네마틱이었다. 말티엘은 양손에 섬뜩한 낫을 쥐고 휘두르며 호라드림 마법학자 무리에게 다가가 자신의 형제였던 티리엘을 공격했다. “네팔렘이 널 막을 것이다.” 티리엘은 말한다. 말티엘은 이렇게 대답한다.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순 없다.”

* 이 글은 『피, 땀, 픽셀』(한빛미디어, 2018)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글쓴이 제이슨 슈라이어

필자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웹진 '코타쿠'의 뉴스 에디터다. 베일에 가려진 게임 업계의 냉혹하고 다양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하며 명성을 쌓았다.

'코타쿠' 전에는 '와이어드'에서 게임 칼럼을 썼으며, 그 밖에도 뉴욕 타임스, 에지, 페이스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왔다.

역자 권혜정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테트리스 이펙트'(한빛미디어, 2018), '이기적 진실', '뮤지엄, 뮤지엄'(이상 비즈앤비즈), '예술 속 문양의 세계'(시그마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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