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의 저예산 프로젝트,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지다

게임별곡 시즌2 [캡콤 10편] 

지금까지 캡콤에서 만든 수많은 게임 중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캡콤을 이끌어 가는 대표 게임들로는 고전의 ‘록맨’ 시리즈와 비교적 최신(‘록맨’에 비해서)의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있다. 

이 중에 궤를 달리 하는 특이한 게임이 ‘역전재판’ 시리즈다. 다른 게임들이 모두 액션 위주의 게임인 것에 비해 특이하게도 ‘역전재판’은 법정 배틀게임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게이머는 고객의 의뢰를 받은 변호사의 입장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한 내용을 증거로 법정에 출두하여 고객의 판결을 승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역전재판]
(이미지 – https://www.amazon.co.jp/)

게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루호도 류이치(成歩堂龍一)는 영미판에서는 피닉스 라이트(Phoenix Wright)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 대대로 변호사 집안의 자녀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한다면 왁스를 한 통 전부 다 썼을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의 헤어스타일인데, 설정에 의하면 실제로 왁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머리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사이어인인가?).

[나루호도 류이치(成歩堂龍一)]
(이미지 – https://it.ign.com/phoenix-wright-trilogy-hd-iphone/65198/news/phoenix-wright-trilogy-hd-e-quasi-gratis-su-ios)

법정을 향해 호탕하게 ‘이의 있소!’를 외치는 저 손가락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캐릭터로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주인공 나루호도의 삿대질로 시작된 ‘역전재판’은 시리즈화 되어 현재 본편만 해도 6편까지 나와있다. 그 외 스핀오프 버전이나 합작 등을 합하면 10여 개가 넘는 타이틀을 자랑하며, 게임의 인기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1년 게임보이 어드밴스(GBA)용으로 시작된 작은 게임이 ‘이의 있소!’ 한 마디로 시리즈화되고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것을 보면 GBA의 조그만 화면으로 즐기던 때가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그리고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어디서나 등장하는 저 손가락 삿대질은 ‘역전재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영화 : 역전재판]

캡콤의 게임들은 거의 대부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거나 영화화된 것들이 많다. ‘스트리트 파이터’는 본편을 영화로 제작하기보다는 각각의 캐릭터나 장면들이 각종 영화에 자주 등장했고, ‘바이오하자드’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로 영화화됐다. ‘역전재판’ 역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원작을 최대한 살리기보다는 영화에 맞는 설정으로 바뀐 내용들이 많아 본 게임을 즐기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영화 : 역전재판]

그래도 주인공 나루호도 변호사의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잘 재현했다. 게임에서 바로 튀어 나온 것 같이 거의 흡사할 정도로 복장이나 동작 들의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역대 인기 게임을 실사 영화화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에 비춰 볼 때 ‘역전재판’ 영화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영화 역시 큰 호응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캐릭터 외형을 재현하는데 너무 치중하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력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게임의 경우 정적인 컷씬 위주에서 긴장감 있는 화면 연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반해 동적인 영화 화면으로 옮기면서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을 주었다. 그래도 속편이 나와주기를 기대했는데 투자자들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아직까지 속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영화의 흥행 실적은 다소 부진했지만, 본 게임의 인기는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진행 중이다.

현재 6편까지 제작된 ‘역전재판’은 일본에 법정 드라마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본래 법정 드라마라는 것이 소재의 식상함과 배경의 딱딱함으로 큰 반향을 주기 어려운 장르였지만, ‘역전재판’이라는 게임을 통해 게임에서 느낀 재미를 게임을 끝내고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 덕에 관련 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은 물론 국내 일드(일본드라마)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리갈하이’ 라는 법정 드라마 역시 이 게임의 영향을 받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기존의 법정 드라마를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소 권위적이고 무겁고 진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이야기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사건’에 맞춰져 있었지만, ‘역전재판’은 기존의 법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법정이나 재판 소재로도 코믹하고 유쾌한 주제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제작되는 법정 드라마들을 보면 기존의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 조금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의 캐릭터들이 무거운 주제의 사건을 유쾌하게 해결하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애니메이션 : 역전재판]
(이미지: https://www.aniplex.co.jp/gyakuten/)

소재가 유사한 게임과 드라마, 영화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서로 얽혀 있는 것 같다. ‘리갈하이’ 같은 법정 드라마를 보면 ‘역전재판’을 다시 꺼내서 하고 싶고, ‘역전재판’을 하다 보면 ‘리갈하이’ 같은 법정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은 무한 반복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역전재판’은 법정과 관련 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 영향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시즌2가 2018년 10월 6일부터 방영 예정으로 되어 있다. 

‘역전재판’ 애니메이션 역시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 같은 시즌에 방영하던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메이저 인기작들이었음에도 5%이상의 시청률을 이어가며 선방했지만, 애니메이션의 작화나 캐릭터 재현 및 성우 기용 등에 있어 많은 욕을 먹기도 했다. 시즌 2는 전작에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인지 작화가 많이 좋아졌다(정확한 것은 시즌2가 시작돼봐야 알겠지만..).

[대역전재판 2]
(이미지 – http://www.capcom.co.jp/game/content/gyakutensaiban/info/topics/2519)

하나의 게임이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될 만큼 지금은 이렇게 성공한 타이틀이지만, 역시나 캡콤답게 그 시작은 참으로 초라하고 미비했다(왜 캡콤의 인기 게임들은 죄다 그런지 캡콤은 정말 진짜로 신기한 회사다). 

‘역전재판’은 그 동안 캡콤의 주력이었던 2D 액션 게임에서 3D 액션 게임으로 플랫폼이 옮겨가는 도중에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과 탐정 드라마의 골수 팬이었던 타큐미 슈라는 인물이 만든 프로젝트 팀에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캡콤은 당연히 속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스트리트 파이터’의 3D 버전이나 ‘바이오하자드 후속편’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어차피 큰 돈 달라고 할 거 아니니까 그냥 한 번 만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만든 게임이다. 

그래서 게임 곳곳에서 저예산의 한계를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2D 배경에 같은 배경을 여러 번 사용하고 캐릭터의 모습도 애니메이션화되지 않고 정지 화면이 반복된다. 초기 판매량도 6만장 정도에 그쳤다. 게다가 게임의 시스템적인 특징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플레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구매금액 대비 효용성에 대한 고민도 나왔다.

[역전재판 2]
(이미지 – https://www.amazon.co.jp/)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즐겨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애초에 돈을 거의 쓰지 않은 저예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미 개발비를 뽑고도 남았다. 수익이 발생하다 보니 캡콤은 ‘어차피 큰 돈 안 들어가니 2편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에 기존에 이미지, 사운드를 재활용하여 2002년 10월 ‘역전재판’ 2편을 발매했다. 2편을 제작할 때는 ‘이거 어쩌면 더 많이 팔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본편 하나로 끝내지 않고 후속편을 염두에 두고 게임의 스토리나 캐릭터 컨셉과 같은 시스템을 설정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져서 2편 역시 흥행에 성공하고 시리즈 3편 이후로는 정규 프로젝트가 되어 계속 시리즈로 발매되고 있는 중이다.

■ 필자의 잡소리

2018년 9월 20일부터 4일간 일본 치바현에서 도쿄게임쇼(TGS) 2018이 열린다. 캡콤 역시 TGS에 참가하며, 앞서 얘기했던 캡콤의 대표 게임들이 모두 출전한다. 고전의 역장 ‘록맨’이 ‘록맨 11 : 운명의 톱니바퀴’로 선보이고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와 ‘데빌 메이 크라이 5’가 함께 선보인다. ‘몬스터헌터 월드’ 역시 e스포츠 대회로 출품하며 ‘역전재판’은 특별 이벤트가 개최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캡콤이 이렇게 세계적인 게임 대회에 출품하는 게임들 전부가 그 시작은 하나같이 회사에서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지원도 마땅치 않았던 게임들이었다는 점이다. 기대도 별로 안했던 첫 작품이 인기를 얻는 바람에 후속작을 급하게 만들고, 그 뒤로 시리즈로 이어져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보다는 인기를 얻었다 싶은 게임을 계속 시리즈화하고 스핀오프 하거나 특별판 등으로 만드는 판매정책이 우려먹기 아니냐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바램은 우려먹기라도 좋으니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오래도록 명작 게임들을 곁에서 함께 하고 싶다(가끔은 새로운 게임 개발에도 신경도 좀 써주고).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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