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라리오의 씨킴과 유니크한 익선동 그리고 세운상가 ‘타임머신’

[시간의 경계, 세운상가와 종묘 사이]

동네 ‘종로’를 생각하면 좁다란 골목과 낮은 지붕을 지고 엎드린 한옥들을 휘감고 흐르는 시간들이 떠오른다. 필자의 청춘 시절 종로는 수많은 비밀 코드를 품고 있었다. 또한 ‘문화의 성지’였다.

가령 금지곡의 대표곡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일본판 혹은 구하기 쉽지 않았던 팝송 엘피(LP) 등은 물론 ‘플레이보이’를 위시한 ‘빨간책’을 구하기 위해 낙원상가를 어슬렁거린 기억도 아뜩하다.

전자오락실에서 갤러그가 날아다니던 종로 3가통은 수많은 청춘들의 문화적 소비를 장려하던 잉여의 공간이었다. 비라도 내리면 운서동의 운치는 절정을 이뤘다. 첫눈이 오면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기로 한 청춘남녀 아베크족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의 경계, 청계천 배후 풍경]

■ 공간 아라리오뮤지엄, 씨킴의 담쟁이는 항생 단색화

눈을 감고 걸어도 찾아갈 수 있는 종로 산책의 첫머리는 원서동이다. 원서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이다. 북쪽으로는 청운동(淸雲洞), 동쪽으로는 와룡동(臥龍洞), 남쪽으로는 운니동(雲泥洞), 서쪽으로는 계동(桂洞)과 접해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백남준 작품)]
[종로의 미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입구]

원서동의 중심에는 한국에 가장 아름다운 궁궐 창덕궁이 있다. 곁에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듯 계동의 현대사옥과 공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나란히 인접해 있다.  

후원으로 스크릿 가든(비원, 秘苑)을 품고 있는 창덕궁,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단청의 문양 하나하나가 왕의 시선이라면 대전 뜰 석벽은 백성의 시선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공간 하나하나도 결국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창덕궁을 목표로 걷다 보면 만나는 공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공간의 입구에서 대면하는 2016년 아트넷 선정 세계 톱 100 컬렉터 씨킴(CI Kim)의 환영 인사, 고백 글은 환영을 빌린 단색화이자 거대한 예술을 마주보는 느낌이다.

사실 예술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자신이 만드는 세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직면하는 경우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고, 또 있는 척 멋있는 척 허세도 부리고 싶겠지만 불편한 진실마저 드러낼 수 있는 용기다. 

[인사동 풍경]

그래서 예술 행위는 늘 숭고한 일이다. 씨킴은 그것을 담대하게 이뤄낸다. 건축물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공간 벽면 담쟁이도 시간의 단색화이다. 직선이 강조된 현대식 건물에서 곡선으로 이뤄진 계단은 시간여행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다.

아래로 움푹 들어간 입구는 예술의 블랙홀이고 확장된 터널처럼 깊고 좁은 계단이다. 시간을 먹고 사는 사진을 닮았다. 천장에서 스며드는 빛의 은밀함이 조형물에 투사되면서 예술의 완성을 이룬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원서동 석탑이나 한옥 카페 프릿츠 역시 은밀하고 담대하다.

‘부조화 속의 조화’, 어쩌면 종로의 미래를 만나는 순간이다. 부조리하면서 숭고한 예술처럼 말이다.

■ 아날로그 필름을 되감듯...익선동은 불덩이를 찍어댄다

익선동은 요즘 사진 좀(?) 찍는 사람들로 연일 붐빈다. 사진과 거리가 돋보이려면 아무래도 ‘유니크함’의 유무가 아닐까. 익선동에서 만난 유니크함이 이곳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이미지가 부유하는 섬 익선동 골목길]

익선동은 북쪽으로는 운니동(雲泥洞), 동쪽으로는 와룡동(臥龍洞), 남쪽으로는 돈의동(敦義洞), 서쪽으로는 경운동(慶雲洞)·낙원동(樂園洞)과 접해 있다.    

조선 전기에는 한성부 중부 정선방(貞善坊) 관할지역이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 개편 때는 돈령동(敦寧洞), 한동(漢洞), 익동(益洞), 누동(樓洞), 궁동(宮洞), 이동 등이 익선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지금 익선동은 호텔과 맛집과 옷가게들로 붐빈다. ‘간판 없는 가게’,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가게들이 올망졸망 익선동 골목을 핫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연인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또 타임머신의 여흥을 즐긴다.

딴 동네에서 흘러들어온 익숙한 브랜드들을 이식하는 익선동은 병원 응급실을 떠올리게 한다. ‘아프다’ 익선동. 이제 ‘간판 없는 가게’ 골목으로 유명해진 그곳에서 만난 건 ‘핫함’이 아니라 어쩌면 원래부터 불덩이였던 이들의 아우성이었는지 모른다. 마음이 울적할 땐 익선동으로 가봐도 좋을 듯하다.

■ ‘빽판’의 시절, 다시 세운 세운상가 ‘종로’의 심장이 될까

[타임머신, 세운상가 내부]

광장시장과 종묘를 잇는 세운상가, 그곳은 오래 전 기술이 팔레트로 변모하면서 활발하게 예술을 이식 중인 동네다. 원래 마에스트로는 장인이면서 거장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 세운은 이미 거장의 손길을 거친 ‘복합예술공간’인지 모른다.

세운상가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으로 완성되었다.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건물 8개로 이루어진 복합 공간이었다. 소위 ‘빽판’(레코드)의 시절, 스타를 꿈꾸던 뮤지션은 낙원상가를 뒤지다가 세운상가까지 찾아갔다. 이곳은 한국 아케이드 게임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레어아이템’, 빨간책(?)과 수상한 비디오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용산전자상가의 개발로 컴퓨터, 전자 업종이 대거 용산으로 옮겼다. 더욱이 도심 부적격 업종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전면 철거 의견이 제기되었다.     

경복궁 정문을 헐고 세운, 조선의 심장을 짓누른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 김영삼 정부시절 철거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비해 세운상가는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기사회생했다.

2014년 서울시가 세운상가 존치 결정을 공식화하면서 현재는 재정비촉진지구의 분리 개발방식을 골자로 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때로 건물은 도시의 운명을 담는다. 

청계천 복원 이후 세운상가는 거침없이 ‘청계천 예술’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꽤 알려진 ‘어반 오디세우스 세운’도 ‘그저 그런 사진전’, ‘다시세운 커뮤니티’도 ‘청계천 메이커’가 되었다. 기술이 진화하면 예술로 승화되고 예술이 삼대까지 전승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른 잎처럼 이미지화된 상가의 내부 구조물을 찍다가 또 얽히고설킨 상가의 오랜 전선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원도심 공간들에서 우리가 채굴한 건 아마도 기억일까? 해방 후 월남민, 고향을 떠나 온 서울 이주민들에게 ‘빈민굴’이었다던 청계 3, 4가, 저작권이 없던 우리 청춘들에게는 ‘행복굴’로 남았다.     

[타임머신, 세운상가 뒷골목]

현대인의 가장 큰 아픔은 ‘기억공간을 상실한다는 것’이라던가. 주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종로를 방문해 기억과 추억과 피, 땀, 눈물을 공간으로 되살려보았으면 좋겠다. 디지털 휴대폰 사진기라도 빌려 30~40년 전 ‘다시 만나자’던 그곳에서 추억 사냥꾼 ‘올드보이’로 변신술을 부려보자.

글쓴이=이재정 add61@naver.com

이재정은?

1964년생. 중앙대 졸. 미술세계, SK상사, 경향게임스, 마크앤리스팩트 등 20년차 직장인 졸업. 2012년 제주 이주 후 제주기획자로 '괜찮은삼춘네트워크'를 만들어 제주소비에 관한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