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 경기 악화로 치명타…‘바이오하자드’로 기사회생

게임별곡 시즌2 [캡콤 5편]

지난 편까지 ‘스트리트파이터2’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개발사 캡콤이 ‘스트리트파이터2’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였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이 맞긴 하지만, 반만 맞다.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2’로 번 돈을 새로운 게임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위기를 맞게 된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전 세계에서 동전 공급량이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동전을 먹어댔다. 오락실 기계에서 동전을 회수하는 주기도 엄청나게 빨라져 오락실 주인들이 자루로 동전을 쓸어 담는 진풍경을 낳기도 할만큼 전설적인 게임이다.

(이미지 – http://vgsales.wikia.com/wiki/Best_selling_Capcom_games#cite_note-1)

‘스트리트파이터2’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물론 오락실 주인들에게도 엄청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등장할 때 즈음은 오락실의 게임 가격이 50원에서 100원으로 무려 100% 인상이 시행됐던 시기다. 이 때의 충격은 당시 오락실을 다니던 어린 친구들에게는 거의 재앙과 같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예전에는 50원 동전 하나로 2인용 게임도 할 수 있었는데, 100원으로 인상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1P, 2P 각각 100원씩 필요해졌다. 이로 인해 ‘이카리나 쟈칼’, ‘더블드래곤’, ‘보글보글’ 같은 인기 게임의 경우 50원으로 둘이 할 수 있었던 게임에서 200원이 필요한 게임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인상률은 50원에서 100원으로 100% 인상이 아니라, 50원에서 200원으로 300% 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임비 인상으로 오락실 경기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받는 용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게임비가 갑자기 급상승 하니 이용률도 그에 비례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운석에 충돌해 공룡이 멸망하듯이 오락실에 암울한 침체기가 찾아오는 듯했다. 실제로도 그 당시 오락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주인들도 있었다.

이 분위기를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스트리트파이터2’다. 새롭게 등장한 ‘스트리트파이터2’로 인해 오락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수북하게 쌓인 동전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게임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섰고, 언제 내 차례가 돌아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대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락실의 업주들은 앞다투어 기존 게임들을 빼고 그 자리에 ‘스트리트파이터2’를 갖다 놓기 시작했다. 한 오락실에만 ‘스트리트파이터2’ 수십대가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동전 회수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오락실 주인이 3개월 만에 기계 값을 다 뽑고도 남았다거나 1년도 안 되어 벤츠를 뽑았다는 등 하는 소문들이 돌기도 했다. 당시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2’에 빨려 들어가는 동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믿지 못할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지금도 기록이 갱신되고 있지만 당시에 ‘스트리트파이터2’는 전세계에 약 80만 장 이상의 보드(기계)를 팔았고 슈퍼 패미컴 버전은 650만개 이상이 판매됐다.

[스트리트 파이터2]

이렇게 캡콤은 게임 하나로 엄청난 수익을 얻었고, 당시 그저 그런 약소 업체에서 게임 업계 최강 업체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캡콤의 경영진들은 엉뚱하게도 이 수익으로 미국 부동산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일본의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었다. 일본의 부동산을 다 팔면 미국을 3번 사고도 남는다거나 미국의 주요 도시의 건물들은 전부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실제로 1980~1990년대 세계 부동산 시장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미국의 록펠러센터나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이 일본의 투자자들에게 매입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물론 그 뒤에는 모두 알다시피 일본의 부동산 장기 침체와 경기 악화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미국에 투자한 일본 회사들이나 투자자들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엉뚱하게도 캡콤이다. 이 때 일본과 미국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캡콤은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 때 캡콤은 절체절명(絶體絶命)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경영진과 개발진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했지만, 그 순간 경영진의 생각은 개발자들과 달랐다. 초기 게임들의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성공으로 우쭐해진 경영진들의 귀에 한낱 개발자들의 의견 따위 먹히지 않았고, 이 때부터 캡콤에는 경영진과 개발진들의 마찰이 심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캡콤의 주요 개발자들이 회사를 등지고 새로운 회사를 찾아 떠나기도 했다. 그때 떠난 사람들이 SNK나 코나미 등 다른 게임업체로 이직해 유명한 게임들을 많이 만들었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본 셈이다.

[미카미 신지 (이미지 – https://www.youtube.com/watch?v=aN8k-jFnjFs)]

주요 개발진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가고 경영진들은 자기 밥그릇에만 신경 쓰느라 회사가 침몰하는 순간, 다 죽어가는 회사를 극적으로 구한 영웅이 바로 미카미 신지라는 인물이다. 당시 2D 게임 일색이던 캡콤은 새롭게 3D 게임들이 등장하는 시대적 흐름을 맞았고, 정상적인 운영이었다면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연구개발에 몰두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들어오는 돈을 족족 부동산 투자에 쏟아붓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경영진이 부동산 투자에 눈이 팔려 있는 동안, 미카미 신지는 회사에 자신이 계획한 새로운 게임에 대한 계획안을 제출한다. 3D를 활용한 밀실형 공포 게임이라는 콘셉트였다.

미카미 신지는 캡콤의 4개발부에 소속 되어 있는 슈퍼패미컴 게임 개발 부서 디자이너였다. 그는 평소에도 공포 게임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어둠 속에 나 홀로’라는 공포 어드벤처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들은 간판 게임인 ‘스트리트파이터2’가 있는데 무슨 새로운 게임이냐는 분위기였다. ‘스트리트파이터’만 계속해서 시리즈화해서 출시하면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고, 그 안정된 수익을 다시 부동산에 재투자하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부동산 불패론에 빠져 있었다.

[어둠 속에 나 홀로 (Alone in the Dark, 1992)]

실제로 회사에서는 이 게임에 예산 배정을 엄청 야박하게 집행하기도 했다. 캡콤이라고 하면 타격감있는 액션 게임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무슨 공포 게임이냐며 회사 내부에서도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도 하기 전부터 회사 내부에서조차 기대받지 못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어렵게 게임이 개발되어 출시 할 때에도 전국의 게임샵 업주들은 하나같이 ‘아니 왜 캡콤에서 이런 게임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초도 물량 역시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게임이지만 캡콤과의 거래를 생각해서 예의상 소량의 물건만 받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게임이 결국에는 부동산 투자의 실패로 처참하게 망가진 캡콤을 기사회생하게 만든다. 바로 전 세계에 시리즈 누적 합계 약 4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이블)’다.

[캡콤의 간판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이후 캡콤의 효자 상품이자 대표 게임이 됐다. 또한 새로운 간판 시리즈인 ‘데빌메이크라이’를 탄생하게 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친 게임이기도 하다. 발매 초기에는 시큰둥한 반응에 초도 물량은 고작 14만개 정도에 그쳤으나, 플레이해 본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판매량을 늘려가더니 결국에는 120만개 가까이 판매되며 밀리언 셀러가 됐다. 발매 초기부터 별로 주목 받지 못한 게임일 뿐더러 장르 또한 다소 마이너한 공포 게임이라 게임샵에서도 예의상 한두 개 정도 물량을 받아줬는데, 나중에 가서는 물량 대량 품절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세간에는 ‘망해가던 회사의 빚을 바이오하자드가 전부 갚았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이 게임의 인기는 대단했다. ‘바이오하자드’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캡콤의 새로운 간판 게임으로 부상하게 된다.

(다음편에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 필자의 잡소리

[켄조 에스테이트(Kenzo Estate)]

캡콤은 지금도 부동산과 관련된 회사다. 정확히는 회사가 아닌 캡콤의 츠지모토 켄조 사장 개인사에 관련된 일이다. 츠지모토 켄조는 자신의 개인재산 1000억 원을 미국에 포도농장을 사는데 쓰기도 했다. 그렇게 산 포도농장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켄조 에스테이트(Kenzo Estate)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 돈으로 산 것이 아니고 사장 개인 돈으로 샀다고 하니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돈은 결국 회사가 잘 됐기 때문에 벌었을 것인데(전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게임 개발에 투자 좀 해줬으면 하는 유저들의 비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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