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땅: 듀랑고’ 그래픽 총괄하는 최은영 AD 인터뷰

일찍이 과학의 매력에 눈뜬 초등학생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와 윙크에 열광할 때, 소녀는 중고생 과학잡지 뉴턴에 푹 빠져 있었다. 정기구독을 신청할 정도로 열혈 애독자였던 소녀는 잡지가 전해주는 전문지식을 자양분 삼아 과학도의 꿈을 키웠다.

잡지에서 소녀가 가장 좋아했던 코너는 공룡 챕터였다. 평소 ‘쥬라기공원’부터 ‘아기공룡 둘리’까지 공룡이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챙겨볼 정도로 공룡 마니아였던 그녀였다. 소녀는 공룡의 모습과 습성이 자세히 소개된 뉴턴의 기사를 한자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읽었다.

소녀는 특히 육식공룡 트루돈을 좋아했다. 트루돈은 몸 크기에 비해 큰 뇌를 사용해 지능적으로 사냥하는 똑똑한 공룡이었다. 잡지에는 ‘만일 멸종하지 않고 진화를 거듭했다면 트루돈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지적인 존재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소녀는 이 글귀가 꽤나 마음에 들어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고 소녀는 어른이 됐다. 여전히 공룡을 좋아하는 그녀는 게임회사에 입사해 그토록 애착해 마지 않는 공룡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모바일게임을 만들어냈다. 무려 5년 반에 달하는 개발기간, 매일 보는 공룡이 지겨울 법도 하건만 그녀는 아직도 공룡이 좋다고 웃음을 짓는다. 넥슨의 개발 자회사 왓스튜디오에서 ‘야생의땅: 듀랑고(이하 듀랑고)’의 그래픽을 총괄하는 최은영 아트 디렉터(AD) 이야기다.

■ 공룡소녀, 공룡게임 ‘듀랑고’ AD 되다

[랩터]

‘듀랑고’ 이전, 최 AD는 왓스튜디오의 전작인 ‘마비노기영웅전’의 애니메이터로 활약했다. ‘마비노기영웅전’의 대표 미녀 캐릭터인 ‘이비’의 고혹적인 액션과 표정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지렁이 몬스터 ‘크랙디거’의 현란한 움직임 또한 그녀가 만들어냈다.

‘마비노기영웅전’을 총괄한 이은석 프로듀서와의 인연은 ‘듀랑고’까지 이어졌다. 이은석 프로듀서가 차기작으로 공룡이 나오는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녀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공룡이라니, 내심 바라던 바였다. 그렇게 그녀는 ‘듀랑고’ 개발 초기 애니메이터로 합류하게 됐고, 2017년부터는 아트팀을 총괄하는 AD가 됐다. 현재 ‘듀랑고’에 등장하는 모든 공룡에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다.

최 AD가 속한 ‘듀랑고’ 아트팀은 총 13명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듀랑고’의 주인공인 공룡들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공룡들은 성체와 새끼로 나뉘고, 서식하는 기후에 따라 다양한 배리에이션으로 분화한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듀랑고’의 공룡은 80여종에 달한다.

공룡 만드는 게 생각만큼 뚝딱 완성되는 일은 아니다. 공룡 하나가 완성되려면 짧게는 두달, 길게는 석달 가량 걸린다. 게임에 어떤 공룡을 넣을지 결정이 되면, 먼저 아트팀은 자료를 수집해 고증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 외형 콘셉트를 잡고, 모델링을 하고, 행동을 디자인한다. 마지막으로 이펙트와 목소리를 연구해서 넣는다. 워낙 많은 공룡을 디자인하다보니 팀에 사운드 디자이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트리케라톱스]

공룡의 움직임을 디자인할 때는 상상력이 총동원된다. 현재 공룡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뼈 화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동물들을 주로 참고한다. 예를 들어 트리케라톱스의 동작과 갑주는 비슷한 생김새의 코뿔소에서 가져왔다. 최 AD는 “동물 다큐멘터리와 동물 영화를 많이 찾아봤다”며 “유튜브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80여종의 공룡 중 20여종은 아트팀의 상상력이 많이 첨가된 가상 공룡이다. 원래 타르보사우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뻘에 해당하는 공룡으로, 따뜻한 지역에 서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듀랑고’의 타르보사우루스는 설원에 사는 공룡으로 재창조됐다. 최 AD는 “추운 기후에 어울리게 하얀 털과 갈기도 달았다”며 “사자와 북극곰의 특징을 가져와 새로운 공룡으로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 ‘듀랑고’ 총괄 이은석 프로듀서, 녹음실서 울부짖다

‘듀랑고’ 개발 초기에는 모션캡처 기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공룡이 움직이는 자료가 워낙 드물다보니 센서를 장착한 사람이 공룡을 흉내내보기로 한 것이다. 당시 애니메이터였던 최 AD가 적극적으로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직접 슈트를 입고 공룡이 아파서 뒹구는 동작 연기를 펼쳤는데, 누가 봐도 공룡이 아닌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녀의 어설픈 발연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쓰라린 실패(?)를 맛본 최 AD는 “그 때 이후로 모션캡처는 구석에 밀어뒀다”며 “지금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애니메이션을 입히는 방식을 쓴다”고 웃었다.

최 AD는 “공룡의 목소리는 모두 사람이 낸 것”이라는 개발 비화를 전하기도 했다. 사람 목소리를 그대로 쓰는 것은 아니고, 변조한 후에 동물 소리와 섞어서 만든다. 순수한 동물 소리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한 공룡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팀이 주로 목소리 연기를 맡았는데, 그 중에는 이은석 프로듀서도 있다. ‘듀랑고’ 최강의 공룡 아파토사우루스가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바로 이은석 프로듀서의 목소리다. 최 AD는 “녹음 구경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며 “우리만 보기 아까울 정도”라고 눈을 반짝였다.

아트팀이 ‘듀랑고’ 공룡 디자인을 할 때의 원칙 중 하나는 특징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것이다. 화면이 작은 모바일게임 특성상 디테일이 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장된 표현이 들어가야 공룡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스밀로돈(검치호)의 송곳니는 더욱 크게 만들고, 스테고사우루스의 골판도 더 튀어나오게 하는 식이다.

최 AD는 “공룡의 색깔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듀랑고’에서는 사냥한 공룡의 가죽을 벗겨서 지붕재료로 쓸 수 있다. 그래서 화려한 색깔의 공룡이 유저들에게 인기가 높다. 최 AD는 “최근 추가된 아파토사우루스의 경우 밤에 야광으로 빛난다”고 귀띔했다.

[다이어울프]

‘듀랑고’에는 수억년의 세월이 축약되어 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생물이 모두 등장한다. 기후도 뒤섞였다. 원래 고증대로라면 말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게임이니까 가능한 상황이다. 최 AD는 “고증을 너무 엄격하게 하면 게임이 경직된다”며 “(시대와 기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존했던 공룡의 생김새는 가능하면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타랩터(유타랍토르)다. 이 공룡은 날카로운 발톱과 약간 휜 아래턱을 갖고 있다. ‘듀랑고’ 아트팀은 유타랩터의 특징을 게임에 그대로 구현했고, 고생물 마니아들은 이들의 노력을 알아봐줬다. 최 AD는 “유타랩터의 턱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유저들의 칭찬을 들었을 때 뿌듯했다”며 “그 이후로 실존했던 생물의 고증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최 AD의 최애? ‘듀랑고’ 마스코트 페나코두스

[페나코두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래도 아픔의 강도는 다른 법이다. ‘듀랑고’ 공룡의 어머니 최 AD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생물은 페나코두스다. 너구리를 닮은 이 신생대 포유류 고생물은 ‘듀랑고’의 마스코트같은 존재로, 유저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최 AD가 페나코두스를 부르는 애칭은 ‘오줌싸개 동상’이다. 네덜란드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에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의상을 입히는 것처럼, 페나코두스도 각종 이벤트마다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나코두스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옷을, 올해 설날에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듀랑고’의 아이돌, 페나코두스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라이벌이 될만한 귀여운 동물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룡을 귀엽게 만들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최 AD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마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녀는 “듀랑고의 기조는 야생에 사는 거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페나코두스처럼 원래 귀여운 동물이 아닌 이상 일부러 귀엽게 표현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아트팀은 ‘듀랑고’의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책을 맡고 있다. 비단 공룡뿐만 아니라 ‘듀랑고’ 세상의 모든 부속품 하나하나에 그들의 정성이 담겼다. 최 AD는 “듀랑고는 놀이터와 같은 세계를 지향한다”며 “아트팀은 앞으로도 부품을 열심히 만들어낼 테니, 유저들은 이를 조립해서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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