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탄탄한 기본기로 인기 얻은 비행시뮬레이션게임

게임별곡 시즌2 [EA 3편 ‘척 예거 장군의 공중전’]

어지간한 장르의 게임은 거의 다 출시하는 듯 보이는 EA도 유독 취약한 분야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비행시뮬레이션게임 분야다. 이미 일찌감치 다른 업체들이 그 시장을 선점한 이유도 있겠지만, EA의 경우 보다 대중적이고 시장이 확실한 쪽이 아니면 게임을 만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척 예거 장군]
(이미지 - 미공군 사이트 http://www.af.mil/News/Article-Display/Article/110298/sound-barrier-pioneer-celebrates-65-years/)

하지만 EA 초기의 게임 중 거의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게임이 ‘척 예거 장군의 공중전’이라고 알려져 있는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이다. ‘척 예거(Charles Elwood Chuck Yeager) 장군’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할아버지는 2차 대전에 참전해서 공중전 전과로 ‘ACE’ 칭호를 얻었을 뿐 아니라 전쟁 이후 미 공군에서 테스트 파일럿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테스트 파일럿은 그냥 실험(테스트)정도라서 간단한 업무라 생각 할 수 있지만, 초기의 불안정한 기체 결함 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적인 운영 상태에 대해 경험에 기반한 조언을 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다.

그는 NASA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음속(마하)을 돌파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1947년 10월 14일 오전 10시 29분에 미 서부 모하비 사막의 에드워드 공군기에서 Bell X-1 실험기체를 조종하여 세계 최초로 고도 1만3700m에서 마하 1을 돌파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64회 출격하여 독일 전투기를 13대(11.5대라는 기록도 있다) 격추해 에이스 칭호를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 1947년 20대 중반 젊은 나이에 대위로 진급, 전쟁 영웅 대접을 받았다.


[척 예거 공중전(Chuck Yeager's Air Combat)]
(이미지 – http://www.YouTube.com)

미국의 전쟁영웅이기도 한 척 예거 장군을 두고 ‘전설’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이유는 고졸 출신의 병사(이등병)로 시작해 준장으로 예편한 전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이등병 병사로 시작해서 별을 달고 장군으로 전역한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리고 준장으로 예편하기는 했지만 이런 전설적인 인물을 준장으로만 두기에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2005년에는 미국 의회 청원에 의해 예비역 소장이 됐다. 

미군에서도 육군과 공군을 두루 섭렵한 이는 흔하지 않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은 물론 베트남전에도 참전했고, 1970년대에는 파키스탄에도 있었다. 1997년에는 자신이 세운 최초 초음속 비행 50주년을 맞아 ‘초음속 비행 50주년 기념일’에 74세의 나이로 F-15를 몰고 초음속 시범 비행을 보이기도 했다.

[척 예거 공중전(Chuck Yeager's Air Combat)]
(이미지 – http://www.YouTube.com)

물론 그 뒤로도 종종 일선 부대를 방문해 전 부대원들을 긴장시키는 등, 아직까지도 95세라는 나이에도 계속 초음속 비행을 하며 많은 젊은 파일럿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런 척 예거 장군하고 EA하고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EA, 그 당시 일렉트로닉 아츠는 이 장군을 소재로 삼은 ‘척 예거 장군의 공중전’을 만들었다. 1991년 출시한 이 게임은 솔직히 동시대의 다른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에 비해서 그래픽적으로 아주 뛰어나다거나 딱히 최고의 수준은 아니었는데,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척 예거 장군이 누구인지 뭐 하는 양반인지 잘 모를 때(지금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만) 출시한 게임이라 장군이 등장하는 부분에 대한 이점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척 예거 이름 하나만으로 이 게임을 구매한 사람들도 많았다.

[척 예거 공중전(Chuck Yeager's Air Combat)]
(이미지 – http://www.YouTube.com)

필자가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색상이 너무 진한 유화 물감 같았다. 뭔가 B급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기본기가 탄탄한 말 없이 조용한 우등생을 보는 듯했다. 요란하게 치장하거나 화려하게 장식하지는 않았지만, 척 예거 장군의 품위와 위상에 걸맞게 차분하게 정돈되고 잘 다져진 느낌의 게임이다.

EA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 비행 시뮬레이션게임은 거의 만들지 않은 걸 보면 이 게임으로 얻은 수익이 생각보다 낮았거나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게임이 됐다.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기존 비행시뮬레이션게임들이 하나의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 비해, 시대를 초월한 전투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기존 게임들은 거의 대부분 1,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프로펠러 전투기 또는 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제트기들이 등장하는 등 시대적인 배경은 어느 한 지점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시대를 초월해 전장을 누빌 수 있다. 게다가 게임 안에서는 시대를 넘어 2차 세계대전에서 쓰였던 프로펠러 전투기와 베트남전 시절에 쓰였던 현대적인 제트 전투기와의 공중전을 해 볼 수도 있다. 미국의 ‘P-51 무스탕’과 소련의 ‘MIG-21’이 공중전을 할 수도 있다(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척 예거 공중전(Chuck Yeager's Air Combat)]
(이미지 – http://www.YouTube.com)

이 게임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의외로 조종석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보통 여러 기체가 등장하는 게임들을 보면 각 기체마다 조종석 묘사는 대충 비슷하게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독일, 소련, 미국의 각 기체마다 기체의 특성에 맞게 재현된 계기판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대적으로 기술적인 제한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당시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도 단순화된 3D 그래픽은 그 당시 기준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게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비행모델의 경우 그 당시 기준으로도 꽤나 사실적이어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실적인 부분에 입각한 개발 능력을 갖춘 ‘척예거의 공중전’ 개발팀은 그 이후에 ‘Janes US NAVY Fighter’를 개발하게 된다.

[Chuck Yeager's Advanced Flight Trainer (1990)]
(이미지 – http://www.YouTube.com)

물론 ‘척 예거 장군의 공중전’ 이전에도 이미 척 예거 장군이 등장하는 다른 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다시 척 예거 장군의 공중전 게임을 만들었는데 전편 ‘Chuck Yeager's Advanced Flight Trainer (1990)’이 비행 훈련을 목적으로 했다면 후속작 ‘Chuck Yeager's Air Combat’은 실제 전투 자체에 초점을 맞춰 개발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게임의 이름처럼 척 예거 장군이 직접 등장해 전투비행에 관련된 조언을 해준다는 점이다.

척 예거 장군은 살아있는 전설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에 반론할 여지 없이 전해 내려 오는 귀한 말씀들을 게임 안에서 해주고 있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 시대별 공중전의 양상이나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히스토리 모드도 제공하고 있어 간접체험이라는 부분에 있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는 꽤 방대한 분량의 매뉴얼도 지금은 수집가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

무엇보다 척 예거 장군의 어록들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봤을 때도 그냥 이름 모를 비행기 모는 할배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내에서도 꽤 많은 분들이 이 게임을 즐겨 했었다. EA에서 이런 명작 게임들을 잊지 말고 다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리뉴얼해주면 안 될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왜냐하면 아직 척 예거 장군은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 필자의 잡소리

[척 예거 장군]
(이미지 https://www.facebook.com/Chuck-Yeager-465193060493/)

이등병에서 시작해서 장군으로 퇴역할 때까지 육군에서 공군으로 그리고 NASA에서 또 더 많은 다른 곳으로 활약하고 활동하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올해 95세의 척 예거 장군은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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