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인 2K에 농구 게임 1인자 자리 내준 EA의 굴욕 이야기

게임별곡 시즌2 [EA 2편 ‘NBA 라이브’]

오늘날의 EA는 웬만한 장르의 게임은 거의 다 출시하고 있는 게임 업계의 거물이 됐다. 하지만 초기에는 여타의 다른 회사들의 게임과 비교해서 딱히 뛰어나다던가 특별한 무언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EA의 고색창연한 고전게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회사가 어떻게 지금의 거물이 됐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NBA 농구]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특히 스포츠 게임의 강자로 알려진 지금의 EA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함께 미국의 나스닥 100위 안에 드는 게임회사다(2017년 11월 기준 51위.)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EA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이전 편(오리진시스템즈)에서 다룬 것처럼 EA는 각종 게임업체를 인수한 뒤에 팀을 해체하고 무리한 일정으로 후속작마저 실패로 몰아넣는 등 인수과정 이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EA와 인수합병을 한 회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망가지거나 사라졌다. 오리진시스템즈가 인수합병 후 내놓은 첫 작품인 ‘울티마 8’ 역시 무리한 개발일정 탓으로 결국 출시 이후에 ‘울티마’ 최대의 졸작이라는 오명을 썼다. 이때 리차드 게리엇의 인터뷰에 의하면, EA는 매년 스포츠 시즌에 맞춰 해당 스포츠를 게임으로 출시해 계속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때문인지 출시일에 대한 압박이 매우 강력했다고 한다. 

EA에서도 스포츠 게임 브랜드인 ‘EA 스포츠’의 위상은 현재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축구, 농구, 골프,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와 같은 미국내외의 인기 종목들은 거의 다 EA 스포츠가 이미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이 때문에 후발주자가 뛰어들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다.

[NBA 농구]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EA 스포츠의 인기 시리즈 중 ‘NBA 라이브’ 시리즈가 있다. ‘NBA 라이브’ 시리즈의 시작은 1989년 출시됐다. 정식 타이틀명은 ‘ELECTRONIC ARTS LAKERS VS CELTICS AND THE NBA PLAYOFF BY ROBERT WEATHERBY DON TRAEGER MICHAEL KOSAKA’이다. 너무 길어서 보통은 ‘NBA농구’라고 부르거나 ‘NBA 레이커스 대 셀틱스’ 정도로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 

‘NBA 레이커스 대 셀틱스’에 ‘AND THE NBA PLAYOFF’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유는 NBA 플레이오프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실제 NBA 선수 협회로부터 NBA 전체 선수의 이름과 권리를 획득한 최초의 농구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이 ‘NBA 라이브’ 시리즈의 시초가 된 게임은 맞지만, EA에서 이 게임보다 먼저 출시한 농구게임이 있다. 1983년에 나온 ‘One on One: Dr. J vs. Larry Bird’라는 게임이다.  

[One on One: Dr. J vs. Larry Bird (1983)]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EA 최초의 농구게임으로 알려져 있는 ‘One on One: Dr. J vs. Larry Bird’은 당시 PC이외에 다른 기종으로도 발매됐다. 특히 후속작인 ‘Jordan vs. Bird: One on One’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으로 스포츠 분위기가 한창이던 1988년 발매되었다. One on One이라는 제목처럼 시카고 불스(Boston Bulls)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s) 의 래리 버드(Larry Bird)만 선택해서 할 수 있는 1대1 농구게임인데, 1993년에는 ‘마이클 조던 인 플라이트(Michael Jordan in Flight)’라는 단독 출연 게임으로도 출시됐다. 

선수 개인의 이름으로 농구 게임이 출시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마이클 조던보다 매직 존슨의 농구 게임이 더 먼저 출시됐다. 매직 존슨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인 1989년에 ‘매직 존슨의 패스트 브레이크’라는 농구 게임이 나왔다. 당시 열악한 하드웨어의 제원 한계로 농구 게임임에도 불구, 5명이 한 팀이 아니라 2명씩 한 팀으로 구성돼 2:2 농구를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이후 ‘마이클 조던 인 플라이트’에서는 3:3 경기를 할 수 있었다. 게임의 시점도 3D에 가까운 모습으로 구현됐다. 특히 게임 개발 과정 중에 마이클 조던이 직접 참가해 블루 스크린에서 모션 캡처 촬영을 하고, 게임 검수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자신이 등장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조던]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Y8abkIeYlfA)

EA는 농구 게임을 출시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최고의 농구 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걸고 게임들을 만들었던 것에 비해 조던과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바로 조던과의 계약금 지불 문제였는데, 그 이후 관계가 틀어진 마이클 조던은 현재 2K(테이크투) 게임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EA와 2K의 싸움은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EA는 타사의 경쟁 게임들을 견제하고 스포츠 게임 시장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심에 북미의 인기 스포츠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아이스하키(NHL)와 미식축구(NFL)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라이선스의 독점 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스포츠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출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회사는 EA와 같이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던 2K였다. EA의 NFL 라이선스 독점으로 게임 출시가 막혀버리자 분노한 2K는 곧바로 메이저리그(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신청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EA 역시 서둘러 같은 내용의 계약을 신청하면서 양측의 격렬한 라이선스 계약 싸움이 시작됐다. 최종적으로 MLB 사무국은 2K의 손을 들어줬고 이로 인해 2K는 수년간 MLB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게 됐다. 

2K는 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들이 MLB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대인배의 아량을 보여줬는데, EA만은 MLB 라이선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얼마나 EA가 싫었으면). 이 여파로 EA의 인기 야구 게임이었던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2005년 시리즈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고, EA는 2K의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2013년까지 야구 게임을 출시하지 못했다.

[One on One: Jordan vs Bird]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EA와 2K의 라이선스 분쟁은 야구(MLB)로 끝나지 않고 농구까지 이어졌다. 사실 초창기 농구 게임을 지배한 회사는 EA였다. 1989년 MS-DOS 게임으로 출시한 ‘NBA 레이커스 대 셀틱스’부터 그 시리즈를 계승한 ‘NBA 라이브’ 시리즈는 농구를 주제로 한 게임이라면 선택의 여지없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 누구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시 2K의 ‘NBA 2K’ 시리즈는 그저 EA의 농구 게임에 대항하는 게임 중에 하나였을 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실제로도 당시 EA는 초기 ‘NBA 2K’ 정도의 게임은 단지 지나가는 게임 중 하나로 여기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2K가 2010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내며 게임의 판도는 뒤집어지게 된다. 마이클 조던을 빼고 NBA시리즈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조던이 농구라는 스포츠에 기여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는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점 계약을 따낸 마이클 조던을 전면에 내세운 ‘NBA 2K 11’은 당연히 불티나게 팔렸고, EA의 ‘NBA 라이브’ 시리즈는 이때부터 급격한 판매량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EA는 야구와 농구 모두 2K에게 완패하며 시장에서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눈여겨 볼 것은 두 종목 모두 EA가 시장을 선점했고 시리즈를 계승해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탐욕으로 인해 패배의 굴욕을 맛봤다는 것이다.

[NBA 농구]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NBA 레이커스 대 셀틱스’ 이후 계속해서 자만하지 않고 제 길을 걸었더라면 지금의 농구 게임 시장은 판도가 달라졌을 텐데, EA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실제 NBA 선수의 이름 사용 권리를 획득한 최초의 농구 게임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고, 실존하는 농구팀과 농구 선수를 직접 조종하는 점 등 농구 게임으로 그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게임을 만들어 놓고도 결국 패배한 원인은 게임을 게임으로 대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사업으로 대하려는 EA의 자만과 욕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NBA 농구]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zzWq8LiD0Tk)

‘NBA LIVE 95’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NBA LIVE 96, NBA LIVE 97, NBA LIVE 98, NBA LIVE 99, NBA LIVE 2000, NBA LIVE 2001, NBA LIVE 2002, NBA LIVE 2003, NBA LIVE 2004, NBA LIVE 2005, NBA LIVE 06, NBA LIVE 07, NBA LIVE 08, NBA LIVE 09, NBA LIVE 10, NBA ELITE 11, NBA LIVE 14, NBA LIVE 15, NBA LIVE 16 등 거의 해마다 빠짐없이 출시됐다. 매해 거의 빠짐없이 시리즈를 내면서 대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EA의 ‘NBA 라이브’ 시리즈를 능가할 농구 게임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5년 발매된 2K의 ‘NBA 2K 6’에 실제 선수들의 슛 동작을 게임에 반영하면서부터 2K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이전까지 농구게임은 누가 무슨 슛을 쏴도 그 모습이 다 똑같았는데 ‘NBA 2K 6’부터 각 선수 마다 차이를 두고 개인적인 슛 동작을 구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EA도 시도하던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적용하지 못했던 기능이었다. 그 사정이란 이미 시장을 독주했다는 안도감과 자만심, 그리고 무리한 개발일정에 따른 작업 우선순위 등이었다.

하지만 1등이 안도하는 사이 기본에 충실하고 그것을 특장점으로 내세운 2K의 ‘NBA 2K’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지금이야 야구나 축구 등의 스포츠 게임에서도 각 개별 선수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고 야구선수만의 독특한 타격자세나 투구자세, 그리고 축구선수 들의 슛 동작과 세레머니 등을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 EA는 그것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게을리한 대가로 후발주자인 2K에게 1등의 자리를 내 주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 필자의 잡소리

[NBA 2K18]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XWrreUVlfnk)

일개 선수 한 명이었던 마이클 조던은 농구 게임 시장의 판도를 뒤엎었다. 물론 조던 한 사람만의 영향은 아니었지만, 분명 조던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이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농구 게임의 시초를 일구었으며 시리즈를 통해 장수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판단 미스와 시장을 독주하고 있다는 안심과 자만으로 결국엔 그 시장에서 철수를 고민할 정도로 고전하고 있는 ‘NBA 라이브’ 시리즈를 보면서 1989년 출시된 그 때의 게임 하나를 떠올린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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