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강요배-김영갑-이명복 등 ‘담담한 고독’을 아는 예술가 보고싶다

무술년 입춘, 제주의 겨울은 수선화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혹독하다.

여행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제주의 겨울. 하지만 정작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선화’는 되레 제주여행길을 유혹하고 있다. 매화보다 우월하다고 수선화의 품격을 은유하고 칭찬한다.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에 냉철하고 영특함이 둘러있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추사는 이 시를 통해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매화를 통해 당시 주류세력을 벗어난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담담한 기품, 냉철하고 영특함’을 은유하는 수선화로 유배를 잊은 예술가의 처지를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이 시 하나로도 '담담한' 회사 생활자에게 여행을 할 이유가 되어줄까? 어쩌면 추사의 8년 3개월의 유배 시간조차 짧은 여행이었을지 모른다.
    

[귀덕리 강요배 화백의 작업실 귀덕화사]

280여 년이 지난 우리는 수선화 향기 담은 ‘특별한 제주행’을 택해 볼 만하다. 봄이 오면 애월 한담해변을 지나 귀덕리 강요배 화백의 작업실 귀덕화사로 예술행장을 꾸려볼까. 그곳에서 한 시대의 역사적 고뇌를 화폭에 담았던 원로작가의 뜨거운 열정을 들어볼까?
    

[이중섭 거리]

아니면 화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초가 혹은 그의 은지화를 만날 수 있는 이중섭 미술관이 위치한 서귀포 언덕배기로 담담한 예술투어를 청해볼까. 그곳에는 아직 가족을 사랑했던 고독했던 한 남자의 예술이 은지화 속에서 꾸물거리고 있다. 9월이면 변신할지도 모를 서귀포관광극장은 덤이다.

사실 추사 김정희의 유배 길이 제주에서 도드라지는 이유는 ‘담담한 고독’ 때문이다. ‘자발적 유배’를 의미하는 현대 제주이주민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수선은 제주에서 추사 김정희에 의한, 제주이주민을 위한, 제주여행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갑갤러리 박훈일 관장]

담담한 제주행은 김영갑 갤러리가 위치한 삼달리로 이끄는 제주 중산간으로 이어진다. 제주에 반해 20여 년 이상 원시 제주의 오름과 중산간을 앵글에 담았던 사진작가 고 김영갑. 제주 중산간 '오름의 미혹'이 아직 그곳의 사진 속에 머물고 있다.

    

[이명복 작가 작업실이 있는 갤러리노리]

또 화가 이명복을 만날 수 있는 저지리 예술인 마을길로도 이어진다. 4.3을 포용하고 오름과 석양마저 웅장한 물줄기로 녹여내던 중견 작가의 제주 사랑이 바람이 되어 머물고 있다. 곁에 있는 제주현대미술관과 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제주여행자에게 보너스다. 
    

[제주현대미술관]

이처럼 제주수선은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기까지  흰 눈이 소담하게 덮인 듯 민중의 꽃으로 존재한다. 제주의 산과 들, 밭두둑 사이로 마치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 친근한 꽃이다. 올레 골목마다 해안 골목마다 수선화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한 제주예술의 꽃이다.
    

[탑동 아라리오뮤지엄 전시장]

화품(花品)도 대단히 커서 한 가지에 많게는 10여 송이에 꽃받침이 8~9개, 5~6개에 이를 정도다. 마치 제주 현대미술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탑동 아라리오뮤지엄을 닮았다. 앤디워홀을 사랑하는 도시 여행자의 발길은 사나운 탑동의 제주바람과 입맞춤하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산지천으로 이르는 예술 순례길이 기가 막히다.

2월의 제주수선은 모든 제주 예술의 은유다. 제주 여행의 꽃이다.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떠나기 전 수선을 보러 서둘러 행장을 꾸릴 일이다.

글쓴이=이재정 add61@naver.com

이재정은?
1964년생. 중앙대 졸. 미술세계, SK상사, 경향게임스, 마크앤리스팩트 등 20년차 직장인 졸업.

2012년 제주 이주 후 제주기획자로 '괜찮은삼춘네트워크'를 만들어 제주소비에 관한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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