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악오름, 백약이오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바람과 구름-빛의 선물

[용눈이오름]

제주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오름을 오르는 일은 드문 경우이다. 저지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금악 오름은 그것이 가능하다. 덕분에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으로도 유명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금악 오름을 제주도민들이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자그마한 동산에 올라 제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본다든지 가끔 깜깜한 밤에 혼자 올라가 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는 기쁨 같은 것들이 이유가 된다. 물론 그런 오름이 일상 가까이 존재해 주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머체왓오름에서 본 한라산(위)-금악오름.]

그곳이 최근 효리네 민박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러블리한 모습을 세상에 송출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국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게 되고 지금은 차량진입마저 금지되었다.

또 용눈이 오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조용한 동쪽 오름으로 도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백약이 오름도 효리네 민박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들끓고 쓰레기 천국이 되어버렸다.

어떤 분들은 이를 ‘슬픈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를 떠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이 파괴되는 관광은 또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 사람들에게 아픔을 선물한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동쪽오름]
[제주서쪽 새별오름]

이 때문에 효리네 민박 시즌2를 안 했으면 하는 제주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러블리한 모습이 미운 게 아니라 많아진 관광객들을 사이에 두고 경제적 이익과 환경 보존의 가치가 늘 충돌한다는 사실이 현지인들을 슬프게 한다.

용눈이 오름은 물론 광활한 공동묘지 둔지봉 등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미술관으로 호칭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제주 중산간 삼달리 마을 한가운데 김영갑갤러리가 위치해 있다. 2005년에 작고한 김영갑 사진작가는 제주 오름의 산담, 산갓을 지나치는 바람은 물론 안개, 구름과 바다 등 ‘제주자연’의 실질적 아이콘들을 앵글에 담았다.

[제주오름의 성지 성산일출봉 인근]
[제주오름의 성지 성산일출봉 인근]

1985년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는 20여 년 가까이 제주 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처연하게 사진기에 포착했다. 특히 그가 남긴 오름 사진들은 제주 오름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직면하는 제주자연’에 경의를 표하지만 필자는 예술가 한 사람이 마을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 늘 머리를 숙인다. 나아가 제주의 속살에 일찍 앵글을 맞춘 작가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이곳은 여행자들에게 여전히 놀라운 공간이 되고 있다. 

이효리 부부가 오름을 다녀가기 전부터 제주의 오름은 오랜 기간 또는 제주 곳곳에서 각자의 품위를 뽐내 왔다. 제주 자연의 일부였던 오름이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불편함의 이유가 되고 또 하나둘 그곳을 떠나가는 이유가 된다면 분명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제주오름의 성지 성산일출봉 인근]

하지만 제주는 그렇게 바뀔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또 바뀌어서도 안 된다. 오랜 기간 제주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아주던 오름, 앞으로도 제주 오름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원동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남아 주길 바랄 뿐이다.

글쓴이=이재정 add61@naver.com

이재정은?
1964년생. 중앙대 졸. 미술세계, SK상사, 경향게임스, 마크앤리스팩트 등 20년차 직장인 졸업. 2012년 제주 이주 후 제주기획자로 '괜찮은삼춘네트워크'를 만들어 제주소비에 관한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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