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루카스아츠의 대표 어드벤처게임

게임별곡 시즌2 [루카스아츠 ‘원숭이섬의 비밀’ 1편]

살면서 숱한 게임들을 해봤지만, 그 많은 게임 중에 딱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원숭이섬의 비밀’을 꼽고 싶다. 필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이기도 하고,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 게임이기도 하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 https://betanews.com/2016/03/14/best-adventure-games-raspberry-pi/)

 
‘원숭이섬의 비밀’은 필자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출시된 아주 오래 전 게임이다. 그 당시 친구들은 XT PC에서 2D 디스켓 9장을 번갈아 끼워가며 열심히 이 게임을 했다. 흑백 모니터라 그리 큰 감흥은 없었는데, 필자에게 어느 날 286 PC가 생기고 나서는 게임을 해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 때 PC는 컬라모니터에 Super VGA 그래픽 카드도 장착된 PC였다. 게다가 무려 40MB(메가바이트)에 달하는 하드디스크도 탑재되어 디스켓을 매번 갈아 끼워가는 수고로움도 없었다.

[1990년대 컴퓨터 광고]
(이미지 http://gametoc.han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77)

 
그 당시 PC는 ‘본격 게임용’이라는 인식보다는 어른들에게는 사무용 업무 보조 기기요, 아이들에게는 학습 도우미 등으로 알려진 첨단 디지털 물건이었다. 사실 당시 16비트 PC에는 콘솔 게임기에 대항할 정도의 그래픽 능력이 없었다. 당시 XT로 나온 게임들이라고 해봐야 MSX나 국산 재믹스만도 못한 그래픽을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었고, 컴퓨터는 “집에서 게임도 할 수 있다” 정도에 만족하는 물건이었다. 대작게임들은 콘솔 게임기로 먼저 출시되고, 콘솔과 PC의 영역이 나름대로 정해져 있던 시절이었다.

PC에는 어드벤처게임들이 많이 나왔지만, 콘솔게임기에는 RPG가 많았으면 많았지 어드벤처게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패미컴(패밀리)이나 슈퍼 패미컴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집에서는 14인치 모니터에 그려지는 PC용 게임들로 마음을 달랬다. 그랬던 시절에 ‘원숭이섬의 비밀’을 만났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출처: http://www.amigablogs.net/)

 
‘원숭이섬의 비밀’은 그때까지 해오던 쫓기듯이 쏘고 피하고 부수는 게임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처음으로 시간의 압박을 받지 않고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치는 게임이었다. 그것이 필자와 어드벤처게임과의 첫 만남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원숭이섬의 비밀’에 빠져들었고, 매일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자마자 바로 실행하곤 했다. 

필자가 이 게임을 좋아한 이유는 누군가 뭘 하라고 강제적으로 시키지도 않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거리를 왔다갔다하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좋았다. 가만히 저 상태로 있으면 누군가 바쁘게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문이 열리고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슈팅 게임들에서 배경은 그냥 지나가는 화면 정도이고 게임 내용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에 비해, ‘원숭이섬의 비밀’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저 세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멋진 세계를 탐험하고 다닐수록 이런 게임을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건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증을 갖게 됐다. 그 때부터 PC통신이나 개발 서적 등을 통해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 열심히 C언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출처: http://www.mobygames.com/)

 
경쟁사였던 시에라온라인의 어드벤처게임들에서는 주인공도 인정사정 없이 죽어버리는 잔혹한 ‘죽음’이 존재했던 것에 비해, ‘원숭이섬의 비밀’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죽으려 발버둥쳐도 죽지 못하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죽을 수가 없다.

물론 죽음이라는 개념이 게임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죽은 존재인 유령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은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 주인공이나 다른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게임들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곧 ‘Game Over’를 뜻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Game Over’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게임이 긴장감이 없다거나 따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을 해보게 되면 꼭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장치가 게임 진행의 연출과 연속성을 위해 필요했었나?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필자는 또 한번 깊이 감탄하였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출처: http://www.mobygames.com/)


저 장면에서 ‘이거 혹시 개들 죽은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중요 공지’라는 내용으로 친절하게 자막으로 ‘SLEEPING’이 뜬다. 개들이 죽은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을 보고 어이없을 정도로 죽음을 배제한 개발자에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원숭이섬의 비밀’이 필자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숭이섬의 비밀’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도 영향을 주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필자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깊다. 필자가 살던 동네는 아직은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개발이 덜 된 동네였다. 밤이 되었을 때 가장 필자를 괴롭힌 일은 집 바깥에 있는 야외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아직도 공사 현장이나 시골 어딘가에는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그래서 밤만 되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질 때 어떻게든 아침이 밝아오기 전까지 참아야 하는 그 고통을 감내하기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출처: http://www.mobygames.com/)

 
그렇게 괴로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시절에 이 게임을 접했다. 그런데 게임의 배경 대부분이 밤이다. 물론 낮 배경도 나오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밤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이 게임을 하면서 점점 밤이라는 세계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밤에는 공포나 두려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캄캄한 밤에 화장실에 가야 될 일이 있을 때면 속으로 ‘나는 원숭이섬의 비밀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화장실을 갔다. 그 뒤로 화장실에 갈 때의 두려움도 점점 없어져 갔고, 지금은 당연히 잘 가고 있다. 어찌 보면 철없던 어린이의 우스운 에피소드 같지만 당시 필자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고 전 세계의 또 다른 어떤 어린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한 두 명 이상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게임 하나쯤은 다들 있지 않으신지?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루카스아츠의 ‘원숭이섬의 비밀’ 개발 비화와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게임이지만, 언젠가 다시 부활의 신호탄이 올라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수 많은 팬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만 봐도 이 게임의 가치를 알 수 있다.

■ 필자의 잡소리

어린 시절 감명 깊게 했던 게임을 다시 보니 반갑다.

[원숭이섬의 비밀 (1990)]
(이미지출처: http://monkeyisland.wikia.com/wiki/File:Stan_vessels.gif)


울적하거나 심심할 때는 ‘스탠(Stan)’을 찾아갔다. 저 친구는 늘 말이 많다. 엄청나게 말이 많은 수다쟁이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쉴틈없이 주절대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와 정말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스탠의 가게에 가면 딱 봐도 콜라 자판기 같이 생긴 자판기가 있었는데, 콜라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자주 찾아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장소였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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