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도구로 외계인과 싸우다… 시에라온라인의 별종 SF 어드벤처게임

게임별곡 시즌2 [시에라온라인 번외편3]

시에라온라인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너무 진중한 게임들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1986년과 1995년 사이에 ‘스페이스퀘스트(Space Quest)’라는 별종 공상과학(SF) 어드벤처게임 시리즈를 개발했다. 6개 시리즈로 구성된 이 게임은 ‘진실, 정의 및 정말로 깨끗한 바닥’을 위해 은하계를 넘나들며 분투하는 로저 윌코(Roger Wilco)라는 불운한 청소부의 모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실제로는 본인보다 주변 인물들이 더 불운한 것 같은 느낌이다).
 

[SPACE QUEST I]
(이미지: http://spacequest.wikia.com/wiki/Space_Quest_I)


아마도 시에라온라인에서 만든 게임 중 가장 난해한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 이 게임은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패러디를 포함하고 있다. 시에라온라인의 여느 어드벤처게임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에서 주인공은 쓸데없이 버튼을 누르거나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면 곧바로 죽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다만 지금까지의 시에라온라인 게임과 다른 점이라면 죽음의 순간조차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될 만큼 이 게임은 ‘코믹’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향해 있다.

[SPACE QUEST TRILOGY II]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Quest_II)

 
필자도 처음 ‘스페이스퀘스트’를 접할 때는 뭔가 광활하고 심오한 대우주의 스펙타클한 서사시를 기대했다. 하지만 반나절 정도 하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거 무슨 게임이지?’라는 생각과 ‘이거 진짜 시에라온라인 맞아?’라는 생각뿐이었다. ‘킹스퀘스트’나 ‘폴리스퀘스트’ 등의 기존의 시에라온라인 게임을 했던 분들이라면 다소 황당하고 의아하게 느낄 수 있는 게임이 ‘스페이스퀘스트’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애초에 ‘스페이스퀘스트’를 개발할 때부터 이 게임의 목표는 유머러스한 SF 어드벤처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 스콧 머피(Scott Murphy)와 그래픽 디자이너 마크 크로우(Mark Crowe)에 의해 주도된 이 팀의 프로젝트는 기존에 없었던 SF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진중하고 재는 척하는 기존의 SF 콘텐츠들이 너무 지루했는지 코믹을 첨가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마크 크로우와 스콧 머피는 원래 시에라온라인에서 디즈니 원작의 어드벤처게임 ‘타란의 대모험(The Black Cauldron)’을 개발하던 팀이었다. 이들은 ‘킹스퀘스트’ 시리즈가 너무 진중한 것 같다는 생각에 본래 본인들 성격에 맞는 게임을 만들고자 회사에 새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된다.

[SPACE QUEST TRILOGY III]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Quest_III)

 
회사 창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켄 윌리암스(Ken Williams)는 그들의 의견에 처음엔 다소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배경화면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자아내는 기존의 게임들에 비해 너무 경박하고 가볍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회사의 이미지에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콧 머피와 마크 크로우의 데모 버전을 보고나서는 개발진행에 OK 사인을 내렸다. 그만큼 그들의 아이디어는 굉장히 신선하고 색다른 것이었다(지금도 그런 종류의 게임은 별로 많지 않다).

[SPACE QUEST TRILOGY IV]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Quest_IV)

 
‘스페이스퀘스트’의 주인공 로저 윌코는 기존의 게임들에서 보던 주인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직업이 청소부다. 물론 청소부라는 직업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게임 주인공은 왕 아니면 용사 또는 왕자나 탐험가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거나 쉽게 접해 볼 수 없는 신비한 존재들이었던 것에 비해, ‘스페이스퀘스트’는 이미 주변에서 자주 보아왔던 현실적인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런 게임이 팔리기나 할지 걱정하는 회사 임원들의 의구심과는 달리, 1986년 출시된 ‘스페이스퀘스트’ 1편은 20만장 넘게 판매됐다. 별 해괴한 게임이 나왔다는 소문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도 시에라인데...’라고 생각하게 하는 회사의 네임밸류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시리즈 1편은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로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20만장 이상 판매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시리즈 1편은 인기에 힘입어 1991년 VGA버전으로 다시 발매됐다). 1편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2편 개발이 진행됐고, 이후로 정식 시리즈는 1995년까지 총 6편이 출시됐다. 비록 시작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별종 같은 게임이었으나,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차 ‘킹스퀘스트’와 더불어 시에라온라인의 간판 게임이 되었다.


[역대 스페이스 퀘스트 시리즈]
(1986) Space Quest I: The Sarien Encounter
(1987) Space Quest II: Vohaul's Revenge
(1989) Space Quest III: The Pirates of Pestulon
(1991) Space Quest IV: Roger Wilco and the Time Rippers
(1993) Space Quest V: Roger Wilco – The Next Mutation
(1995) Space Quest 6: Roger Wilco in The Spinal Frontier


시리즈 7편도 계획된 적이 있었지만, 회사 내부의 사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세상에 출시되지 못했다. 시에라온라인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메인 멤버였던 스콧 머피와 마크 크로우가 회사를 떠나면서 ‘스페이스퀘스트’의 명맥은 끝이 나게 됐다.

[SPACE QUEST TRILOGY V]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Quest_V)

 
‘스페이스퀘스트’ 시리즈 중, 필자가 큰 마음먹고 거금을 들여 구매한 타이틀은 5편이다. 루카스아츠의 ‘원숭이섬의비밀’ 시리즈로 어드벤처게임의 재미를 느낀 필자는 한동안 어드벤처게임들만 줄곧 했는데, ‘킹스퀘스트’ 시리즈의 묵직하고 웅장한 게임 시스템에 반해 ‘스페이스퀘스트’ 5편이 출시되자마자 당시 국내에서 유통을 담당했던 동서게임채널 매장에서 구매했다. 5.25인치 디스켓 6장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하드 디스크에 인스톨하는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대에 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스톨이 완료되고 ‘SQ5’를 입력하고 게임을 시작한 순간 필자가 기대했던 우주의 대 서사시는 우주 저 끄트머리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황당하지만 당시에는 왜 황당했는지도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의 게임을 반나절 정도 해보고 잘 포장해서 창고 어딘가에 다시 찾지 못할 만큼 깊은 곳에 고이 숨겨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페이스퀘스트’는 명작 게임의 반열에 오를 만큼 좋은 게임이었는데, 그 때 당시(1993년) 중학생이던 필자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세계관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막 “아임 파인 땡큐”나 외치고 다니던 필자 수준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대사를 모두 읽고 해석하고 단순히 해석을 떠나 문장에 담긴 그들만의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SPACE QUEST TRILOGY 6]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Quest_6)

 
실제로 한국 중학생이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 이 게임의 유머러스함을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필자와 같은 영어 미달자만 있는 것은 아닌지라, 시리즈 5편도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다음 편이 출시된다. 그런데 시리즈 6편은 그것으로 끝이 날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기존 시리즈까지 로마 숫자로 표기해왔던 타이틀과는 달리 ‘VI’이라 표기하지 않고 아라비아 숫자로 ‘6’이라고 표기했다.
 
■ 필자의 잡소리

이렇게 좋은 게임을 출시 당시에는 모자란 영어 실력으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창고에 처 박아 둔 것이 후회된다. 지난 날의 과오의 반성으로 최근 시리즈 1편부터 다시 해보고 있는데, 눈이 썩어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워프 장면]
(이미지: https://www.myabandonware.com/game/space-quest-i/)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출시 당시에 진득하게 즐겼으면 제대로 된 재미의 추억이 가득했을 텐데 최근에는 뭔가 마저 끝내지 못한 숙제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하긴 당시에 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으면 지금쯤 UN 동시 통역사가 되었겠지).

미국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게임에 등장하는 수 많은 패러디를 보고 바로 알아보고 그 기발함에 박수를 치고 웃음을 참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한 SF영화나 인스턴트 푸드 체인이나 드라마와 각종 캐릭터들이 게임 안에 등장하는데, 이제서야 그 진가를 알아 본 것이 참으로 아쉽다. 당시에 한글화까지 진행해주지 못한 열악한 유통 환경을 생각해보면 불법 복제가 만연하던 시절에 그래도 국내 정식 출시라도 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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