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게임 시장경제 ‘디플레이션’ 수렁…시장경제 시스템 ‘풍전등화’

엔씨소프트의 PC 온라인게임 ‘리니지’가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게임 내 고가 아이템 중 하나인 ‘진명황의 집행검(집행검)’의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위기감이 몰려오는 중이다.

서비스 19년을 맞이한 ‘리니지’는 장수 비결 중 하나로 안정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꼽아왔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이용자간의 활발한 거래와 게임화폐 ‘아데나’를 통한 아이템 가치가 꾸준히 유지됐다.

실물 화폐와의 교환비율, 즉 환금성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원년부터 ‘리니지’ 아이템과 ‘아데나’는 환금성을 띠고 있었다. 업데이트에 따른 아이템 가치 변동이 크지 않은 ‘리니지’는 안정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형성했다.

하지만 19년간 쌓아온 ‘리니지’의 시장경제 시스템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3000만~3300만원에 거래된 집행검은 10개월만에 1800만원까지 하락했다. 이는 하이엔드급 아이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템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리니지’의 무거운 비즈니스 모델

‘리니지’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붕괴로 몰아넣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무거운 ‘비즈니스 모델(BM)’이다. 과중한 BM은 신규 유저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기존 유저들까지 이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대표적인 BM은 ‘룸티스의 귀걸이’, ‘스냅퍼의 반지’, ‘문장’, ‘휘장’, ‘오림의 장신구 강화 주문서’ 등이 있다. 해당 아이템은 보유하지 않으면 게임 내 정상적인 플레이가 어려울 정도로 밸런스에 큰 영향을 준다.

[신규 유저에게 진입장벽으로 다가온 스냅퍼의 반지, 룸티스의 귀걸이]

특히 ‘리니지’의 핵심 BM은 대부분 ‘강화성’ 아이템으로 분류돼, 높은 강화일수록 그 효과가 더욱 증폭된다. 최고 강화 수치 아이템과 기본 아이템과의 격차는 업데이트로 최초 선보일 당시보다 더욱 커졌다. 평균적인 강화 아이템인 5강화까지만 하더라도 수십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또 ‘확률성’ 강화로 실패시 아이템과 강화 재료는 모두 사라지며, 7~8강화 아이템을 갖기 위해서는 수천만원 이상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유저들에게는 매우 높은 진입장벽이며, 신규 유저가 대폭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이다.

[장착 아이템 슬롯 중 57%인 12곳이 유료 아이템 슬롯이다]

게다가 ‘문장’, ‘휘장’ 등 새로운 BM 슬롯 확장과 동일한 아이템 합성으로 ‘축복받은’ 효과는 기존 유저들도 밑도 끝도 없는 과금에 혀를 내두르며 떠나게 만들었다. 실제 ‘리니지’의 동시접속자는 지난 2012년 12월 22만명에서 4년 8개월만인 지난 8월 29일 4만명대로 주저 앉았다.

‘리니지’의 유저 감소는 게임 내 시장경제 시스템부터 콘텐츠 순환까지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리니지’는 레이드, 공성전부터 커뮤니티 콘텐츠까지 과거 대량의 유저풀을 기반으로 기획된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BM 남발로 게임 내 대체 통화량 급증

쏟아지는 유료 아이템은 게임 내 시장질서를 흐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개봉전 박스형태로 구성돼, 유저간에 거래가 가능하다. ‘아데나’가 급히 필요할 때, 해당 아이템을 구매해 바로 처분하면 된다. 게임 내 기준통화 ‘아데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 통화물이 대량으로 쏟아진 것이다.

실제 유료 결제를 통해 구매한 ‘룸티스의 귀걸이 상자’, ‘스냅퍼의 반지 상자’, ‘문장의 주머니’, ‘휘장 상자’ 등은 게임 내에서 곧바로 아데나로 환전이 가능하다. 과거 게임 플레이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임재화가 이제 유료결제로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게임재화 공급이 무한정으로 변경된 것에 반해, 소비처는 회복 물약, 주문서, 사망 패널티 복구 등 한정돼 있다. 엔씨소프트는 쌓이는 게임재화를 소진시키기 위해 지난해 ‘기운잃은 아이템’을 업데이트, 아이템 획득까지 ‘확률성’으로 변경했다.

[올해 1월부터 매월 2주간 운영한 ‘경마장’ 콘텐츠 ‘마법인형 운동회’]

그래도 부족한지 더욱 소진시키기 위해 올해에는 매월 ‘마법인형 운동회’라는 이름 아래 ‘경마장’ 콘텐츠를 게임 내에서 꾸준히 운영 중이다. 과거 월 이용권 이외에 BM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리니지’의 시장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됐지만, 이제는 엔씨소프트가 조정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엔씨소프트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리니지’ 연간 매출을 매번 경신했다. 

하지만 회사의 이익과 별개로 게임 내 시장경제 시스템은 파탄 났다. 또 유저들의 이탈로 쏟아지는 각종 아이템은 게임 내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다수의 차상위 아이템들이 폭락을 거듭했으며, 수년간 가격을 유지한 ‘집행검’을 비롯한 하이엔드급 아이템까지 ‘가치 보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리니지, 시장경제 ‘디플레이션’ 늪으로

2012년까지 ‘리니지’는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유저들이 생성한 통화량의 증가로 화폐 가치가 서서히 하락해, 아이템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수억 아데나를 주고 하나의 아이템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2012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리니지 시장경제는 ‘디플레이션’ 상황이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부동산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이 가치를 유지한다. ‘리니지’도 마찬가지다. 게임 내 아이템 가치는 폭락을 거듭하는데, 게임 화폐 가치는 그나마 유지 중이다.

때문에 일부 ‘리니지’ 유저들은 보유한 아이템을 모두 팔고 ‘아데나’로 ‘가치 보전’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저의 이탈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아 쉽지 않다. 아이템 거래 카페에는 ‘집행검’을 비롯한 고가 매물이 쏟아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돌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리니지 ‘진명황의 집행검’ 가격 변화 추이]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보다 더욱 위험한 것이 ‘디플레이션’으로 보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1990년대 일본 버블경제 붕괴를 불러왔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셔는 ‘디플레이션’이 경제 전 영역에 걸친 파산 이후에야 궁극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리니지M이 나오기 전까지 엔씨소프트의 전반적인 매출 구조에서 리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며 “단기적 매출 증대를 노린 엔씨소프트의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리니지의 수명을 단축시킨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상반기 이용자 지표 하락등의 이유로 게임내 아이템 가격이 하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하반기 들어 이용자 지표가 상승하고 있으며, 대규모 업데이트 등 이용자 분들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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