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아 미국으로…오민근 에픽게임즈 테크니컬 아티스트 인터뷰

비디오게임에 열광하던 소년이 있었다. 특히 먼 미국에서 건너온 에픽게임즈의 게임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에픽메가게임즈(前에픽게임즈)의 1994년작 ‘재즈잭래빗’에 푹 빠져 살았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TPS게임 ‘기어스오브워’에 인생을(?) 바쳤다. 또래 친구들이 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살 때 혼자 배신하고 MS의 엑스박스를 산 이유도 엑스박스 독점 타이틀로 발매된 ‘기어스오브워’ 때문이었다.

십여년 뒤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미국 에픽게임즈 본사 엔터프라이즈팀의 테크니컬 아티스트(TA)가 됐다. 중간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던 게임사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바로 오민근 에픽게임즈 TA의 이야기다.

“나 혼자 엑스박스를 고집했던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에픽게임즈에 오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며 웃는 오 TA를 에픽게임즈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 두번의 유학, 할리우드 3D 아티스트 꿈꾸다

사실 오 TA에게는 게임말고도 좋아하는 취미가 또 하나 있다.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슈렉’ 등 픽사와 드림웍스의 3D 애니메이션이다. 어릴 때부터 3D 아티스트를 꿈꾸던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그 곳에서 그는 밴쿠버 필름스쿨 애니메이션 및 비쥬얼이펙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금의환향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수년간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와 게임 회사에서 3D 아티스트와 애니메이터로 근무했지만, 그에게 한국 시장은 너무 좁았다. 북미 시장에서 활약하고 싶은 갈증은 그를 다시 유학길로 인도했다. 그는 늦깎이 유학생이 되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애니메이션과 비쥬얼이펙트를 다시 공부했다.

미국 첫직장은 LA에 위치한 더 그래픽 필름 컴퍼니였다. ‘툼레이더’, ‘콘에어’ 등을 연출한 사이먼 웨스트 감독이 설립한 3D 애니메이션 회사다. 그는 그 곳에서 색온도와 강약을 조절해 CG 조명을 만들어내는 라이팅 아티스트로 근무했다. 그가 꿈꾸던 할리우드 영화 3D 아티스트로서의 새출발이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지 않았다. 미국 영화사들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스튜디오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캐나다나 동남아시아로 회사를 이전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기 일쑤였다.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영화 3D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유학을 시작했지만, 막상 3D 아티스트가 되고 나니 기회가 점차 작아졌다. 그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게임엔진으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게임엔진이 영화만큼 그래픽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CG 스튜던트 어워드에 응모했고, 운명처럼 입상하며 부상으로 에픽게임즈 인턴으로 취직하게 됐다.

■ 에픽게임즈 입사 후 非게임분야 맡아 호평

에픽게임즈에 입사할 당시 오 TA는 경력직임에도 불구하고 언리얼엔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에픽게임즈는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오 TA는 “내 장점 중 하나가 빠른 적응력”이라며 “마침 처음 맡았던 일이 에셋을 사고 파는 마켓플레이스 업무라서 언리얼엔진에 대해 두루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그가 속한 팀은 엔터프라이즈팀이다.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언리얼엔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을 담당한다. 광고, 영화 등의 분야에서 실시간 렌더링을 지원하는 언리얼엔진을 사용하면 종전보다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로그원: 스타워즈스토리’와 ‘혹성탈출: 종의전쟁’이다. ‘로그원: 스타워즈스토리’에 등장하는 로봇 ‘드로이드 K-2SO’는 언리얼엔진으로 렌더링됐다. 또 ‘혹성탈출: 종의전쟁’에서 원숭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하이라이트 장면도 언리얼엔진으로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pre-visualization, 실제 촬영 전에 CG로 결과물을 미리 보는 사전 시각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언리얼엔진으로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라며 “실제 원숭이는 단 한마리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 TA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 단편 애니메이션 ‘소년과 연(A Boy & His Kite)’은 한 소년이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자신의 연을 찾아다니는 내용을 담았다. 이 작품으로 에픽게임즈 엔터프라이즈팀은 2015년 시그라프에서 ‘베스트 리얼타임 그래픽 & 인터랙티비티’ 팀으로 선정됐다. 오 TA는 “뉴질랜드의 실제 바위, 자갈밭, 언덕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에셋으로 만들어낸 후 사용했다”며 “매우 사실적인 그래픽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자동차 광고 ‘더 휴먼 레이스(The Human Race)’에도 참여했다. GM자동차, 더 밀 광고사, 에픽게임즈 3개사가 파트너십을 맺고 만들어낸 미래지향적인 자동차 광고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다른 차량 또는 다른 색상으로 바뀌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적용됐다. 이 작품 또한 올해 시그라프에서 ‘베스트 리얼타임 그래픽 & 인터랙티비티’로 뽑혔다.

■ 에픽게임즈, 개발자들의 천국

에픽게임즈 본사 분위기에 대해 물었더니 오 TA는 “한마디로 행복하다”고 답했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구조가 창의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개인의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회사”라며 “전세계적으로 게임회사의 이직율이 높은데, 에픽게임즈에는 20년차 이상 개발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것과 휴가가 무제한이라는 점이 그가 꼽는 에픽게임즈의 장점이다. 에픽게임즈에서 근무한 지난 4년간 오 TA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2주씩 꼬박 쉬었다. 그는 “회사와 직원간에 책임감과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라며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악용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는 “어떤 TA는 휴가 기간에 집에서 언리얼엔진으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작업하면서 힐링한다고 하더라”며 “에픽게임즈는 (열심히 일하는) 개발자들의 천국”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미국 게임사 취업지망생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오 TA는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영어는 필수”라면서도 “꿈이 있고 성실하다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국이 게임강국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친구를 만들기 쉽다고 했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게임을 즐기고 싶어한다”며 “의사소통에 너무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으니 자신감을 갖고 문을 두드려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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