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구회사에서 게임회사로, 지금의 남코를 있게 한 초창기 게임들

게임별곡 시즌2 [남코의 1970~1980년대]

지난 편에서는 ‘철권’으로 잘 나가는 남코라는 게임회사에 대해 얘기했었다. 지금이야 최고의 기술력을 지니고 3D게임의 강자로 알려져 있는 남코지만, 40년 전만 해도 대부분 회사들이 그렇듯이 간단한 슈팅게임들을 많이 만들었다. 창립일은 1955년이지만, 처음부터 게임 사업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1977년에 가서야 회사 이름을 ‘NAMCO’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인 게임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사실 실제로 게임 사업에 진출한 것은 그보다 3년 앞서 1974년 아타리 재팬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게임 사업 이전에는 어린이용 목마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 이후 유원지에 납품할 놀이기구를 제작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게임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회사였다. 

[Galaxian, NAMCO(1979)]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Galaxian#)

   
어린이용 놀이기구나 유원지용 놀이기구로 많은 돈을 벌었던 남코는 197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아타리의 ‘퐁’이 등장하자 단박에 이것이 향후 큰 돈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여기에 동참해 게임 사업에 진출하게 되는데, 당연히 남코도 그 많은 회사 중에 하나였다(당시 아타리 재팬을 인수할 때 경쟁자는 세가였다).

■‘갤러그’가 촉발한 우주 게임 전쟁

남코가 처음 사업에 진출한 1970년대에 출시한 게임들로는 ‘나발론’이나 ‘지비(Gee Bee)’, ‘갤럭시안’ 등이 있다. 작품 수는 몇 개 안 되지만, 출시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은 ‘갤럭시안’ 같은 게임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갤러그 캡쳐(거미줄) 아이디어 노트]
(이미지: http://shmuplations.com/galaga/)

 
특히 한국에서 인기 많았던 게임 중에 ‘갤러그’라 불리는 ‘Galaga’라는 게임이 그렇다. 게임 소개 사이트에는 장르가 무려 ‘우주(Space)’라고 적혀 있다. 당시에는 어지간하면 죄다 슈팅 장르에 속하는 게임이 많다 보니, 슈팅게임이라는 말보다는 우주게임이라는 미국 NASA의 염원과도 같은 단어로 설정되어 있다. 

사실 범우주적인 이 슈팅 게임은 우주 장르를 개척한 첫 게임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드넓은 우주를 협소한 화면 안에 먼저 구현한 우주 장르의 게임이 있었는데, 타이토(TAITO)의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 역시 전설급에 속하는 게임으로, 출시 년도가 무려 1978년으로 이제 불혹에 접어들었다. 그 이전에도 우주적 소재를 다룬 게임들은 있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게임으로 평가하자면 1978년 출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초기작으로 평가받는다(함부로 최초라는 수식어는 달지 않겠다).

[Galaga, NAMCO(1981)]
(이미지: https://www.arcade-museum.com)

   
정식 명칭으로는 ‘Galaga / ギャラガ’ 라는 이름으로, 한글로는 ‘갤러가’ 등으로 소개 되어있지만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동네 오락실에서 쓰던 ‘갤러그’라는 이름으로 쓰도록 하겠다(꼰대 파워가 아니라 ‘갤러그’ 또는 ‘겔러그’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코는 ‘갤러그’라는 게임 이전에 ‘Galaxian / ギャラクシアン(갤럭시안)’이라는 조상뻘 되는 게임도 만들었다. 그래봤자 1년 차이지만. 애초에 우주 개척 정신 따위는 없었는지 몰라도,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우리도 한 번 우주개척시대에 몸을 실어보자는 의지는 통했던 것 같다. 당시 잘 나가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따라 ‘제2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표방하던 게임들은 엄청 많았는데, 대부분 출시도 못 하거나 출시 이후에도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우주의 미아가 됐다.

여러 아류 게임 중에서도 그나마 ‘갤럭시안’이라는 게임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1등이 갖지 못한 부족한 부분이었던 적기의 이동 패턴이라던가 공격 패턴 등을 개선했다.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게임으로 그 이후 등장하는 다른 슈팅게임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Space Firebird, NINTENDO(1980)]
(이미지: https://www.arcade-museum.com)

 
재미있는 점은 그 당시 닌텐도에서도 남코의 우주정복을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스페이스 피버(1979)’라는 게임으로 우주 개척 시대로 진입하려 했다. 그러나 대놓고 카피 게임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웠는지 다음해에 다시 ‘스페이스 파이어버드(1980)’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나가지는 못 했던 것 같다(대기권 소멸). 

참고로 닌텐도의 본격 우주개척 게임 ‘스페이스 파이어버드’는 ‘마리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캐릭터 디자인을 했다. 그는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당시에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회사(닌텐도)의 영업부 요청으로 타사의 잘 나가는 게임을 모방해서 만들었지만, 개발팀 내부의 불만이 많았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남코의 우주개척 게임들은 다른 회사의 게임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쨌든 남코는 다른 회사들이 돈벌이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남코는 ‘갤럭시안’의 후속작인 ‘갤러그’를 출시했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느 동네 오락실에 가도 이 놈의 ‘갤러그’가 없는 오락실이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 ‘오락실 = 갤러그’ 라고 봐도 좋을 만큼 전국 어디서나 이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빨려 들어가고 싶은 범 우주적 레이저 광파 거미줄]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Galaga)

   
특히 필자는 ‘갤러그’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참 좋아했다. 타이틀 배경음악도 좋았지만, 보너스 스테이지 결과 화면의 음악도 참 좋았다. 몇 년 전에 비슷한 우주 게임을 아이폰용으로 개발한 적이 있는데, 30년 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우주배경 화면 처리를 ‘갤러그’ 게임에서 모방했다.

2차원의 평면 화면에 점(도트)의 밝기나 크기에 변화를 줘서 수직 스크롤 하는 것만으로 입체감 있는 화면을 구성했다는 것이 지금 보아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4년만 더 지나면 40살을 맞는 게임이 되는데, 그 오래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니 배경 처리를 디자인한 사람이나 프로그래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하여 1980년대 국내 오락실에 동일 기종이 여러 대 있는 게임은 거의 ‘갤러그’가 유일하다. 그만큼 엄청나게 많이 보급된 게임으로, 지금 중년의 아저씨들이라면 ‘갤러그’ 사운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그 당시 거의 대부분 불법복제 기판이었다는 게 문제). 게임의 31 스테이지까지 가면 ‘스타 트랙’의 ‘엔터프라이즈’가 나오는데 부끄럽지만 필자는 원코인 클리어 해 본적이 한 번도 없다(고로 ‘엔터프라이즈’호를 실제로 본적이 없다.) 출시 이후로도 꾸준히 다양한 버전으로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 되었지만, ‘갤러그’는 처음 출시 된 그 모양 그대로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팩맨’으로 세상을 집어 삼키다

1980년대 초기 오락실은 거의 남코의 게임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금 들어도 익숙한 사운드의 게임들이 많았는데, 앞서 소개한 ‘갤러그’라는 게임이 그랬고 원래 게임 이름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방구차(국내명)’ 라는 게임도 그랬다. 원래 게임 이름은 ‘Rally X’라는 비교적 괜찮은 이름이었는데, 국내에는 ‘방구차’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번 들으면 중독되는 이 사운드는 당시 오락실에 ‘갤러그’와 함께 널리 울려 퍼지는 남코의 점령곡이기도 했다. 일종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까지 얘기하자면 과장이 심하겠지만, 그 당시 상영하던 영화 ‘고래사냥’에도 주인공이 이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오죽 유명하거나 널리 알려져 있으면 영화에도 익숙한 소재로 등장했는지 당시 사회상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너도 나도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싶게 만들었던 방역 차]
(이미지: 국가기록원)

 
그리고 시대상으로도 1980년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방역 차량이 뿜어내는 허연 연기였는데, 매캐하고 ‘쿠쉐쉐’한 그 냄새에 한 번 중독되면 방역 차 뒤로 너도 나도 온 동네 아이들이 줄줄이 빨려 들어가곤 했다(갑자기 빗자루 들고 쫓아오시던 어머니의 아련한 풍경이..).

[Rally-X(1980), New_Rally-X(1981)]
(이미지: https://strategywiki.org)

    
나중에 정신 없이 연기에 취해 뛰다 보니 한참 멀리 가서 낯선 동네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징징 울다가 동네 파출소에서 집으로 연락해서 부모님이 찾아갔다는 괴담 같은 전설도 있다(물론 집에 가서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 라고 쓰니 필자 얘기 같은데 절대 필자 얘기는..).

마약같이 중독되는 BGM은 한 번 듣고 나면 한 동안 세반고리관에서 떠나지 않는다. 1980년대 초기 오락실에 가면 이 ‘방구차’라는 게임의 BGM과 ‘갤러그’의 BGM과 효과음들이 하도 많이 들려서 당시에 오락이나 오락실을 ‘뿅뿅’이라는 의성어로 대체할 만큼 뿅뿅 거리는 사운드들이 일품이다.

[PAC-MAN, NAMCO(1980)]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File:Pac-man.png)

     
하지만, 이 ‘방구차’ 보다 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게임은 따로 있었는데, ‘남코’ 사업 초기에 간판 게임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만큼 유명한 ‘팩맨’이라는 게임이다. 실제로 기네스북에도 ‘가장 성공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남코하면 ‘철권’ 이지만, 예전에는 남코하면 ‘팩맨’이었다. 아니 사실 남코라는 회사 이름 보다도 ‘팩맨’이라는 게임 이름이 더 유명했다. 고전 게임 중에서도 이 게임이 의미가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무려 37년이나 지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미 양성평등에 대한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오락실에 게임들은 주요 소비자층이 남성 위주였는데, 남코의 개발자 중에 한 명이었던 이와타니 토오루는 여성 게임 유저들도 오락실(게임센터)에 올 수 있도록 ‘팩맨’을 기획했다.
 
게임 이름인 ‘팩맨(PAC-MAN)’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기획, 분석하던 이와타니 토오루가 지었다. 여성들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착안하여(다시 보니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생각이었던가) 먹는다는 행위의 ‘파쿠파쿠’라는 말을 인용해 ‘파쿠맨’ 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요즘 시대에 이렇게 했다가는..). 여기에는 좀 다양한 설이 있는데, 일단 ‘여성 유저를 위한 게임을 만들자’라는 명제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은 ‘개발자 와이프가 먹는 얘기를 자주 한다’라던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여고생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먹는(디저트, 케이크) 얘기를 많이 하더라’라던가 하는 것에서 가져왔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다만 ‘팩맨’에는 ‘먹는다’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더해 여성들이 좋아하고 좋아할만한 하나의 요소를 더했는데 바로 ‘귀여움’이었다. 그래서 게임의 캐릭터들 역시 최대한 단순하고 귀엽게 디자인했고 게임 진행 방식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게 단순하게 기획했다. 주인공이 입을 ‘파쿠파쿠’ 하면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계속해서 화면 속에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된다. ‘팩맨’은 세계 최초의 ‘캐릭터 팬시 게임’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는 한 때 ‘미키마우스’를 넘나드는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각종 영화나, 애니메이션, 음반 등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였다). 2010년에는 ‘구글’에서 ‘팩맨’ 30주년 기념으로 메인 로고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구글 링크에 가면 ‘팩맨’을 즐길 수 있다. 처음 게임 이름은 ‘파쿠맨’ 이었는데, ‘팩맨’이 된 사연은 ‘파쿠맨’이라는 게임 이름이 영문으로 ‘Puck Man’ 이었다는 점이다. ‘P’자를 ‘F’자로 잘못 인식하면 회사의 존망이 걸린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원제로 수출할 수 없었고, 결국 ‘Pac Man’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원래대로 ‘퍽맨’ 이었다면 구글 메인 화면에 소개되지도 못할 뻔했다.

[Pac Man보다 필자가 더 좋아한 게임은 CD-MAN (1992)]
(이미지: http://www.dosgamesarchive.com)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 하게 된 ‘팩맨’ 외에도 남코의 1970년대 사업 진출 초기 작품들과 1980년대 초기 작품들 중 대부분의 게임이 흥행에 성공했다. 그 바람에 남코는 그 뒤로 ‘디그더그’나 ‘제비우스’, ‘롤링선더’, ‘패밀리 시리즈’ 등 1980~1990년대 초기까지 100여개에 달하는 오락실, 콘솔 게임기용 게임을 개발, 출시 하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2D 게임의 전성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4년 본격 3D 격투게임 ‘철권’이 등장하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남코 게임의 역사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 필자의 잡소리

1980년대 초기 ~ 1990년대 까지는 오락실의 전성기였다고 본다. 1990년대 말 이후 등장한 PC방에 의해 서서히 침몰해가는 중이지만, 최근 새롭게 레트로 열풍을 타고 동네에 오락실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전국적으로 불처럼 번지는 현상은 아니지만, 필자가 사는 제주의 조그만 동네에도 오락실이 하나 생겼다. 작은 평수에 들여놓은 기계도 10여개 정도지만 아직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밤 12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필자도 사업장 운영에 보탬이 되라고 가끔 동전을 투입하고 오는데 그 작은 평수의 오락실에서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게임들을 나란히 볼 수 있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마치 내가 역사의 흐름 속에 서 있는 것처럼..).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