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게임의 선구자, 남코 프로듀서 하라다 카츠히로

게임별곡 시즌2 [남코의 ‘철권’ – 2편]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격투게임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철권’이라는 게임을 이야기할 때 하라다 카츠히로라는 개발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하라다 카츠히로는 무려 20년 이상을 ‘철권’ 개발에 참여하며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사람이다. ‘버추어 파이터’의 경우 마지막 버전에 스즈키 유가 참여하지 않았던 반면, ‘철권’의 경우 역대 시리즈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줄곧 하라다가 ‘철권’의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


하라다는 한국에도 관심과 애정이 많다. 현재까지 수십 번 한국을 탐방했고(인터뷰에서 30번 이상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국내 철권 유저들과의 행사나 인터뷰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게임 내 한국 캐릭터를 추가하거나 PS2용 ‘철권 태그 토너먼트’부터 거의 모든 ‘철권’ 시리즈를 한글화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물론 한국이 ‘철권’의 큰 시장인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그의 약력을 보면 1994년 ‘철권’부터 ‘철권2’, ‘철권3’, ‘철권 태그 토너먼트’, ‘철권4’ 등을 거쳐 현재 ‘철권7’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권’ 시리즈에 참여했다. ‘철권’ 외에는 ‘소울 칼리버’나 ‘에이스 컴뱃’ 등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철권’에서 성우로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주로 ‘요시미츠’나 ‘마샬 로우’ 등의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했다(뭔가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Katsuhiro Harada(原田 勝弘) 트위터]

 
생긴 것부터 범상치 않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케이드 센터(오락실)를 자주 드나들며 게임에 빠져 살았던 적도 있었다고 할 만큼 게임에 애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또 공부할 시간은 있었는지 명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여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전공 분야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유도와 가라데, 태권도 같은 무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철권’에 등장하는 각종 무술이나 심리전과 같은 게임의 기본 철학은 이렇게 이미 준비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공이 심리학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개발에 앞서 기획 단계에서도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는 조사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철권’ 개발을 할 때 ‘1990년대 후반, 영국, 격투에 흥미가 있는 18~28세 남성, 그리고 북미 서해안 격투 커뮤니티’와 같이 명확한 대상을 설정하고 게임 제작을 진행했다. 이에 앞서 대상들의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종교관, 정치관은 물론 경제관까지 수집된 자료를 기반으로 그들의 선호와 취향에 대해 예측 데이터를 설정하여 게임 캐릭터 구현에 참고하였다고 한다.

철권 – 리리 로슈포르 / 아이돌 마스터 - 미나세 이오리
(오른쪽 하단에 ‘하라다 카츠히로’가 보인다. 그래 저 정도는 해야 오덕이지..)

           
반면에 이렇게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다소 파격적이고 과격한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 참고로 그는 ‘아이돌 마스터’의 ‘미나세 이오리’를 특히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트위터 배경화면도 ‘미나세 이오리’의 얼굴을 확대한 배경화면이고, 공식석상에도 ‘미나세 이오리’의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자주 입고 나오는가 하면 ‘철권’의 캐릭터 ‘리리 로슈포르’에게 ‘미나세 이오리’의 복장을 입혀버릴 정도로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은 굉장히 깊다고 한다(살아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정확히는 같은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뿐만 아니라 워낙 많은 사건(인터뷰 막말)을 몰고 다니는 양반이라서, 그의 기행을 소개하자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철권’이라는 타이틀에 영혼을 바쳐 개발에 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하나의 시리즈 타이틀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게임 타이틀에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덕후라 해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오히려 반발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밝혀진 바는 없지만, 필자는 아직도 남코에서 출시한 게임 ‘에이스 컴뱃’의 ‘아이돌 마스터’ 기체 도장 DLC에 이 양반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에이스 컴백 컬러링 기체 – 아앜.. 나의 에컴은.. 이렇지 않아!!]

 
워낙 기행이 많기로 소문난 양반이라 ‘그 사람이라면 그럴만하지’ 하고 수긍이 가지만, 그래도 ‘철권’ 시리즈 하나 잘 일궈냈으니 그 공로는 인정할만하다. 대외적으로도 각종 철권 관련 행사나 이벤트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고 유저들과의 간담회나 기자들과의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니 ‘철권’에 관해서는 누구도 뭐라 하기 힘들 것 같다.

 

최근(이라 해도 벌써 2~3년전 얘기)에는 ‘철권’ 시리즈 외에도 새로운 기술이지만 이미 새롭지 않은 가상현실 분야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철권’ 외에 틈틈이 개발한 ‘서머레슨’이라는 게임이 그것인데, 이 게임의 개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린 시절 하라다의 부모님은 굉장히 엄격한 분들이어서 아들이 아케이드 센터에 드나드는 걸 허용하지 않았고, 학업에 매진하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하라다는 여러모로 머리를 짜내 틈새 시간을 잘 활용해서 부모님의 눈을 피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 때 주로 즐긴 게임들이 ‘버추어 파이터’를 개발한 스즈키 유의 초기 작품들이었다고 한다. ‘아웃런’이나 ‘애프터 버너’와 같은 체감형 게임을 즐기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이런 현실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당시에 가상현실(VR)라는 말은 알지 못했지만, 그 느낌만은 생생히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염원하던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사실 ‘서머레슨’은 출시 이후 주위의 열렬한 지지와는 사뭇 다르게 출시 결정 당시에는 큰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고 한다(역시 선각자는 외로운 법이다). 하지만 2014년 ‘SCEJA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처음 공개되고 그 이후 ‘프로젝트 모피어스(Project Morpheus, PS VR의 전신)’에서 사용자 체험으로 공개되었을 때 유저들의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애초에 제품화할 생각까지는 없던 데모 프로그램이었으나, 그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세상에 출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을 것이다. 이러한 유저들의 간절하고 열렬한 소망으로 2016년 6월 14일 지금으로부터 약 1년전에 제품화가 발표됐고,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어(거의 기본 골격은 되어 있었으니까) 같은 해 10월 13일에 출시됐다.

[Katsuhiro Harada(原田 勝弘) 트위터]

 
게다가 일본에서 발매 전날인 10월 12일 무려 한글판을 지원한다는 말에 한국의 많은 하라다 카츠히로 지지자들은 그에게 ‘신’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당신은 진정 신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약속을 지켰다. 2017년 봄 출시 예정이라는 기사들을 보고 출시 연기가 되더라도 출시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확히 2017년 4월 27일 출시,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인 봄에 출시됐다. 

하지만 출시 이후 이것을 게임이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체험 소프트웨어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사실 게임성만을 따지고 보면 본격적인 게임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그래도 충분히 돈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필자와 같은 일부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나이! – 한글판!]

 

그리고 이제 곧 ‘엘리슨 스노우’가 등장하는 ‘서머레슨’ 후속작이 출시된다. 이 버전은 2015년 E3에서 공개됐던 것으로, 전편 ‘서머레슨: 미야모토 히카리’편과 마찬가지로 데모 프로그램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출시 여부가 불투명했다. 아마 차례차례 하나씩 출시되는 모양이다. 한동안 VR 자체에 대해 시큰둥했던 사람들에게 대거 구매욕구를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철권’ 시리즈와 함께 계속해서 장수하는 타이틀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세간의 소문으로는 하라다가 VR을 실험하는 이유가 ‘철권’의 VR 버전을 계획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 그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이미 시도를 해봤지만, HMD를 활용한 VR의 세계에서 즐기는 철권을 만들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남아있고, 현재로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보다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경험을 선사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바로 눈 앞에서 두들겨 맞기만 하는 장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죽어도 안 만들겠다고는 안 했는데, 아마 언젠가 ‘철권 VR’도 출시되는 거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나중에 가서야 자신 스스로가 밝힌 얘기이기는 하지만, ‘서머레슨’을 개발하면서 ‘철권’팀의 예산을 자기 맘대로 몰래 빼돌려서 개발자금으로 투입했다고 한다(이거 망했으면 어쩔뻔했어).

[2017년 6월 22일 출시! – 엘리슨 스노우 7시간의 정원]


아직까지는 큰 탈 없이 ‘철권’시리즈가 장기집권에 성공하고 있으며, 하라다는 살짝 다른 분야에도 발을 들여놓으면서 소소한 재미를 즐기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실험과 기행이 미래의 ‘철권’을 향한 발걸음이 아닌가 싶다. 철권 20주년이 지난 지 얼마 안됐지만, 또 금방 30주년이 다가온다.

[산다! 무조건 산다!]
(이미지: 공식 홈페이지 - http://summer-lesson.bn-ent.net/allison/)

 
하지만, 하라다 카츠히로는 최근 기조연설이나 강연 후반부에 ‘서머레슨’ 등의 예를 인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은 호기심과 용기’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적인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시장을 HMD를 활용한 VR게임 시장이라고 보는듯하다.

이미 철권 20주년(2014년)의 연설이나 강의 자리에서 향후 10년(철권 30주년이 되는 때쯤)안에 HMD 등의 장치는 지금보다 더 소형화되고 성능개선이 이루어져 일반인에게 일상적으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결국 30주년쯤에는 진짜 철권 VR 버전이 나올지도?). 모쪼록 30주년 이상 장수하는 또 하나의 장수 게임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정말 2024년 이전에 ‘철권’ VR 버전이 등장할지 너무 궁금해진다.
 
■ 필자의 잡소리

[TGS2016 인터뷰 - Katsuhiro Harada(原田 勝弘)]

 
하라다는 한국에서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특이하게 한국의 간장게장을 좋아한다고 한다. 진심인지 모르겠으나 인터뷰 중에 자신의 트위터에 맛있는 간장게장 집을 찾는다고 요청할 정도인데 ‘김O미의 간장게장’을 먹어봤는지 모르겠다(필자의 평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언제나 사진에 등장하는 그를 보면 대낮에도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 그와 함께 선글라스로 유명한 사람이 ‘DOA(Dead or Alive)’의 개발자 이타가키 토모노부다. 그 역시 ‘DOA의 아버지’라 불리며, ‘철권 아버지’라 불리는 하라다 카츠히로와 함께 기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카가키 토모노부는 한 때 철권막말(‘철권은 쓰레기다’)로 유명했는데, 사실 이 둘은 와세다 대학 동문이다. 사석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듯 하며,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딱히 협력하는 것 같지는 않아도 그렇게 격겜(격투게임) 삼국지(버추어파이터, 철권, DOA)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미 ‘버추어파이터’는 앞날을 예견하기 힘들어진 상태가 된 것 같고, 이제 ‘철권’ 시리즈와 DOA시리즈 누가 더 오래 살아 남는지 지켜볼 일이다. 둘 다 오래오래 살아 남기를 바란다. 아울러 DOA는 꼭 VR 버전으로….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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