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스트’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갈아탄 세가의 선택

게임별곡 시즌2 [세가 하(下)-2편] 세가의 황금기

■ ‘버추어 파이터 4’

‘버추어파이터3’에 이어 출시된 ‘버추어파이터4(이하 버파4)’는 ‘MODEL O’ 시리즈 기판을 탈피하고 새롭게 개발된 ‘NAOMI 2’기판으로 출시됐다. 이전에 출시한 ‘NAOMI 1’기판은 ‘MODEL 3’ 보다 후속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성능에 제약이 있었던 터라, 때를 기다려 다음 버전인 ‘NAOMI 2’ 기판으로 출시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콘솔 게임기 사업을 철수한 세가의 사람들은 참으로 애석하고도 성질 나는 장면을 봐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케이드 게임 사업부 하는 짓이 영 못마땅했던 차에 이제는 ‘세턴’과 ‘드캐(드림캐스트)’의 몰락을 가져오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플스2)’ 기종으로 ‘버파4’가 이식된 것이다.

[세상에.. ‘SEGA’와 ‘SONY’의 로고를 한 타이틀에서 보게 되다니..]

 

세간에는 이를 두고 ‘돈 앞에 장사 없다’느니 ‘영악한 세가’라던가 하는 말들이 나돌았지만, 뭐 어찌 됐던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이식 됐다는 것 자체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입장에서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식 작업이 초월이식은 고사하고 상당히 낮은 수준의 이식으로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사의 게임기 ‘드캐’의 사용자마저 배신하고 상대 진영인 소니의 게임기로 출시했으면 뭐 하나라도 더 좋게 나왔어야 하는데(나 배신하고 떠났으면 잘 살기라도 해야지!), 아케이드 버전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이식으로 ‘드캐’의 사용자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곱절로 다가왔다.

애초에 ‘NAOMI’ 기판 자체가 ‘드림캐스트’ 호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말이나 하지 말던가. 아케이드 버전의 게임들을 집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품질로 즐길 수 있을 것처럼 부푼 꿈을 안게 해놓고, 이제 와서 ‘드캐’를 버리고 ‘플스2’로 갈아탄 세가의 처사에 대해 많은 ‘드캐’ 사용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NAOMI 2로 출시한 ‘버파 4’]
(이미지: http://club.tgfcer.com/thread-6490049-1-1.html)

 

세가는 ‘드캐’를 마지막으로 2001년 3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을 철수함과 동시에 ‘드캐’에 대한 생산과 지원도 중단한지 불과 5개월 만인 2001년 8월에 아케이드 버전 ‘버파4’를 출시했다. 그 뒤로 빠르게 이식작업을 진행하여 불과 다시 5개월 만에 ‘소니’의 ‘플스2’버전으로 이식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국내의 경우 ‘버파 4’에 이르러서는 이미 ‘철권’의 시장 지배력에 패배를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판을 들여놓은 오락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작 3편이 예상 외로 초보자의 접근이 쉽지 않았음을 인지하고(이제서야) 시스템적으로 많은 고심 끝에 시리즈 2편의 스타일로 돌아갔지만, 이미 대세는 ‘철권’으로 기울어 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다시 한 번 화려한 부활을 꿈꾸던 세가의 야심찬 계획은 말 그대로 꿈처럼 사라져갔다.

[필자의 주 캐릭터 – 사라 브라이언트 (한 때 필자의 이상형..)]

 

하지만 ‘버파4’에 새롭게 도입된 카드 시스템과 네트워크 시스템은 필자에게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마 ‘Break Age(브레이크 에이지)’라는 일본 만화책을 본 사람들이었다면 비슷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만화책의 내용 중에 게이머들 간에 자신의 특화된 기체로 대전 액션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 있는데, 카드 시스템과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내용도 등장했다. 그 당시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라며 탄복하던 필자에게 ‘버파 4’의 카드 시스템과 네트워크 시스템은 만화책에서나 보던 미래의 하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현실 가능성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에이지’ – 이거 보고 게임개발자의 꿈을 꾸던 사람도 많다]

 

이 만화책을 보고 장래 희망이 게임 개발자로 변경 된 사람도 꽤 많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필자가 오프라인 골프 게임을 만들던 O기업에서 면접을 보던 당시에 필자 옆에 있던 기획분야 지원자가 자신은 ‘브레이크 에이지’라는 만화책을 보고 게임 개발자를 꿈꿨다고 말하기도 했었다(심사위원님들은 그 만화책을 안 본거 같지만). 만화에는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전적 정보 등이 기록된 카드를 삽입하고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전적과 상대의 전적 정보 등을 교류하면서 통신(네트워크) 대전을 하는 등, 게이머들이 보기에 감동적이고 흥분되는 설정이 많이 있다(비록 후반부로 갈수록 연애 쪽에 가까워서 실망스럽지만).

만화에서 보던 설정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에 대해 필자는 만세를 부르면서 엄청 흥분되는 마음으로 ‘버파4’에 동전을 헌납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가 사는 동네 오락실 중에 이런 카드 시스템과 네트워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오락실은 한 군데도 없어, 만화책 속에서 감동받았던 내용을 현실에서 체험 해 볼 기회가 없었다.

‘VF.NET’의 채용에 의해 이름, 연승 기록, 단수, 아이템 등의 관리가 가능하게 됐다던 광고 설명 문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시스템이 가동되던 오락실이 없던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혼자 게임이 끝나고 나면 잊혀지던 기억에서 카드 시스템을 통해 잊혀 지지 않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크게 찬양했다. 하지만 동네 오락실에서 지원하지 않는 바람에 필자의 ‘버파 4’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플스’ 메모리 카드에는 남아있다).

필자는 이 카드 시스템이 제대로 성공해서 대전의 누구, 서울의 누구, 부산의 누구 하는 등 전국의 유명한 고수들이 등장하면 너도 나도 몰려들어서 서로 구경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세상에 날리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하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서울 같은 큰 동네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국내 아케이드 시장(오락실)에 출시 ‘버파4’는 신규 시스템을 지원하지 않는 여러모로 아쉬운 ‘반쪽짜리’ 게임이었고 이미 대세를 뒤집기에는 힘겨운 상황에서 그나마 특색 있는 시스템으로 승부를 볼 수 있을까 하던 기대마저도 사라져 상당히 아쉬웠다.

 

■ ‘버추어파이터5’

마지막 편이자 국내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아니 아예 보기 힘들었던) ‘버추어파이터5(버파5)’는 국내의 많은 팬들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통이 되지 않았었다. 일단 비싸기로 소문난 ‘린드버그’ 기판의 문제도 문제지만, 여기에 더해 별도의 회선을 요구했는데 그 비용만 해도 장비 임대료를 제외하고도 회선 사용료만 월 80만원 수준이었다. 오락실 업주 입장에서는 당연히 달가울 리 없었고, 이미 국내 시장은 ‘철권’이 장악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업주가 ‘버파’의 광팬이 아닌 이상 기계를 들여놓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 외돌개 근처 풍경과 완전 비슷하다..]
(이미지: http://smartfim.com/games/virtua-fighter-5/)

 

출시 당시 세가의 업무용 범용 CG보드인 ‘린드버그’ 탑재에 32인치 와이드 액정 모니터 캐비닛인 ‘유니버셜 캐비닛’의 기본 옵션 외에도 IC카드 등에 사용되는 ‘VF 터미널’이나 라이브 캐비닛인 ‘VF.TV’등이 한 세트 구성이었다. 잘만 하면 전국의 ‘버파’ 고수들의 대전 상황이나 랭킹 등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감상 할 수 있을뻔했으나 국내에는 꿈 같은 얘기로 끝났다.

국내에서 이렇게 한낱 꿈 같은 얘기로만 끝나게 된 배경에는 세가의 이해하기 힘든 판매정책도 한 몫 했다. ‘버파5’ 발매 당시 일반 판매 방식을 없애고 렌탈 형식으로만 하다 보니 해외로 ‘버파5’가 수출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안 그래도 ‘철권’에 밀리던 ‘버파’는 이제 완전히 밀려버리게 되어 현재 국내에서 ‘버파5’를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소문에 의하면 홍대 어딘가에는 ‘버파5’ 구경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린드버그 – 우리 집 PC에서 많이 보던 모습인데?]
(이미지: https://namu.wiki/w/LINDBERGH)

 

‘버파5’의 ‘린드버그(LINDBERGH)’ 기판 구성품을 살펴보면 CPU는 인텔의 ‘펜티엄 4 3.0GHz’에 nVidia 그래픽 카드(지포스 6800, 7900)와 리눅스 운영체제 등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PC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구성요소로 이뤄져 있다. 이렇게 기존의 콘솔 게임기와 PC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하드웨어 구성요소도 PC와 동일한 부품으로 구성된 이유에는 ‘전용’과 ‘범용’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콘솔 게임기 사업은 자체적인 하드웨어 설계와 그에 따른 부품 생산 및 수급으로 공정관리나 생산관리 비용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지만, PC의 부품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전체적인 시스템 구성 요소의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해도 기판이 왜 이렇게 비싸지?). 그보다는 ‘범용’적인 이식 작업에 수월함이 아마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미 전 세계에 퍼져있는 PC기반의 개발 환경을 상당 부분 공유할 수 있으므로 개발의 난이도가 ‘전용’ 하드웨어에 비해 상당히 낮아진다는 점과 이식성에 높은 호환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해도 PC용으로 이식 된 게 왜 이렇게 별로 없지?).

새로운 기판인 ‘린드버그’의 경우 출시하는 족족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동종 업계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할 만큼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세가였기에 새로운 기판치고는 너무나 평범한(?) 구성에 다들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세가 치히로’(센과 치히로?)라는 기판에도 PC 사양의 부품을 사용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기도 했었다. 족보의 계승 문제로만 본다면 기존의 ‘MODEL’ 시리즈나 ‘NAOMI’시리즈에서 벗어나 이전 ‘치히로(Chihiro)’기판의 차기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이전 ‘NAOMI’ 보드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구성 부품을 국산(일본)부품을 사용했던 것에 비해 미국제 부품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부터가 큰 차이점이다.

2005년에 출시한 ‘린드버그’ 기판 이후로 출시된 새로운 아케이드 게임 기판들도 ‘린드버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산 부품을 주요 구성 부품으로 쓰고 있는데, Europa-R(2008), RINGEDGE(2009), RINGWIDE(2009), RINGEDGE2(2012), Nu(2013) 과 같은 기판에서도 계속 CPU는 인텔, GPU는 nVidia 부품을 쓰고 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일본의 콘솔 게임기 업체들(닌텐도의 스위치, 소니의 플스4 등)은 더 이상 자국의 부품이 아닌 미국 업체의 부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한때 잘 나가던 일본이 이제는 자국의 콘솔 게임기나 아케이드 시장의 기술 원천마저 미국에 장악 당해가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냉엄한 현실과 한 때 화려하게 빛나던 지난 날의 향수가 묘하게 뒤섞여 복잡한 심경이다. 그래도 국산 콘솔 게임기라도 개발하고 출시하는 일본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PS3 – 버추어파이터5 (엑박용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국내의 ‘버파’ 팬들은 집에서 즐기는 방법 밖에는 없을 듯 한데, ‘그나마 집에서라도 할 수 있으니 어딘가?’ 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기왕 PC와 호환성을 갖춘 하드웨어 스펙이라면 콘솔 게임기가 없는 유저들을 위해서 PC용으로도 하나 내줬으면 하는데, 아마도 ‘린드버그’의 O/S(운영체제)가 ‘Windows’ 계열이 아닌 ‘Linux’계열을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이식이 안 되는 건지 수익성이 없어서인지 PC 버전은 출시되지 않았다.

이후 출시된 ‘버추어파이터5 파이날 쇼다운’ 이후로 신작 출시는 하지 않고 있는데, 같은 ‘Final(마지막)’이라는 이름을 쓰는 ‘Final Fantasy(파이날 판타지)’는 계속해서 시리즈를 출시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정말 ‘Final(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렸다.

 

■ 필자의 잡소리

[DOA 원정 왔다]
(이미지: http://deadoralive.wikia.com/wiki/File:DOA5_Sarah_Swimsuit.jpg)

 

이제는 불혹을 지나 어엿한 중년이 된 ‘사라 브라이언트’는 1973년생으로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 솔직히 필자는 ‘사라’ 캐릭터 때문에 버파 1, 2, 3, 4, 5 패키지를 샀고 게임기를 구매했다. 최근 유행하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뭐던 간에 돈 좀 모아서 ‘버파6’ 개발을 시작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필자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 기사를 쓰는 시점(6월 2일 새벽)에 ‘철권7’ 한국어판 PC용 발매 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지난 20년간의 ‘버파’의 역사와 필자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참으로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자본력도 충분해졌고, 예전에 우주를 지배하고자 했던(‘플래닛 프로젝트’) 그 기상과 야망을 이어 받아 새로운 콘솔 게임기도 출시하고 다시 한 번 ‘버파’ 시리즈도 개발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언젠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 소망을 세가가 싫어합니다. 음?)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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