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스터 대환영, 우리는 왜 20년째 ‘스타크래프트’를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설 연휴 시내 번화가의 당구장은 승부욕에 불타는 도시인들의 콜로세움이었다. 어디를 가나 큐대를 휘두르는 검투사들이 넘쳐났다. 고향 친구인 남자들은 몇 차례 당구장을 기웃거리다, 결국 PC방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약속이나 한 듯이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다. 모두 종족은 랜덤이었다.

테란이 나왔다. 빌드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물쭈물 하던 사이 본진 커맨드센터가 하늘로 솟았다. 두 번째 판에는 저그를 선택했다. 그때서야 단축키와 빌드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빠르게 3해처리 빌드를 올리고 히드라 럴커 드랍으로 3시 프로토스 진영을 괴멸시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고백하자면 과거에도 친구들에 비해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지는 못했다. 주로 어드벤처 게임이나 전략시뮬레이션을 좋아했던 탓에, 끝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여야 하는 RTS 장르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커맨드 앤 컨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스타크래프트’는 그 감각이 남아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고향친구들과 늘 같은 게임을 하게 된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게임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탓에, 최신 게임들에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고향 친구들은 20년이 다 되도록 새로운 게임을 거의 배우지 않았다. 그들은 최근 뜨는 ‘오버워치’는 물론 대세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롤)’도 전혀 할 줄 모른다. 어느날 게임을 하다 별 생각 없이 물어봤다.

“다른 게임은 안 하나. 롤 같은 거.”
“못한다.”
“와? 해보면 별 거 아이다.”
“니 아니면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70년대생들의 이야기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제 40대에 접어들었다. 학창시절 놀이라고는 오락실, 만화방, 당구장이 전부였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PC방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했다.

지금처럼 커뮤니티나 공식카페가 활성화되지도 않았었고, 한글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은 단골 PC방에서 친구들과 떠들면서 배웠다. ‘브루드워’가 처음 출시됐을 때는 럴커를 뽑아놓고도 공격 방법을 몰라 PC방 주인과 함께 난상토론을 벌여야 했다. ‘레인보우식스’도, ‘디아블로’도 그런 식으로 배웠다.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는 이해하지 못할 풍경일 수도 있다. 당장 아프리카TV나 유튜브만 봐도 ‘롤’ ‘오버워치’ 선생들이 넘쳐나는 시대니까.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게임 공략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게임을 그렇게 배워오지 않았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부터 시작해, 태어나서 배웠던 모든 게임들은 친구들이 가르쳐 줬다. 그러니 친구가 없으면, 게임을 배우는 것이 어색하다.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스타크래프트’보다 훨씬 죽여주는 게임들을 실컷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겪어본 바로는, 20년이 지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밖에 없다. 워낙 잘 만든 게임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게임을 하지 않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모두 고향을 벗어나 뿔뿔이 흩어졌고, 힘든 직장생활과 야근, 육아에 시달린다.

지난 3월 26일,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 출시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벌써부터 게임의 성공 여부와 리마스터 버전에 대한 분석, e스포츠 리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굳이 게임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봐도 추억은 곱씹을 수 있다.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을 다시 봐도 된다. 하지만 게임은 다른 콘텐츠들과 다르다. 영화나 음악은 그저 보고 들으면 되지만, 게임은 유저가 직접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추억이 완성된다.

‘스타크래프트’는 40대, 혹은 그 이상의 올드 게이머들이 친구들과 함께 떠들며 배우던 거의 최초의 PC 온라인게임이었다. 그리고 슬프지만, 그처럼 신나게 게임을 즐기던 시절은 사실상 ‘스타크래프트’에서 끝났다. 물론 몇몇은 지금도 다른 게임을 하겠지만 그 게임을 또래 친구 모두가 즐기기는 매우 어렵다.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의 민속놀이라 불리는 이유는, 누구나 즐길 수는 있어도 항상 모여서 즐길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건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고, 게임사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못해서도 아니다. 단지 영화 ‘친구’의 대사처럼,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일 당장 훨씬 잘 만들어진 ‘슈퍼 울트라 스타크래프트’가 나온다 해도 모두가 그 시절로 돌아가 아이처럼 게임을 즐길 수는 없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눌러야 하는 손등 위에 각자 삶의 무게가 얹혀져 있다.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CEO의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말은 이것이다. “리마스터 이후 앞으로 20년 동안 스타크래프트를 더 즐겨주시길 바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한 말이다. 게임회사 사장이 신작 게임을 더 팔아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90년대 출시된 구닥다리 게임을 20년 동안 더 즐기라고 말하다니.

올드게이머들은 그 의미를 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단순히 그래픽을 개선한 게임이 아니라, 오래전 추억과 앞으로 찾을 즐거움까지도 선명하게 만들어줄 게임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열광한다. 젊은 세대들이 볼 때는 다소 유별날지도 모르지만, 일부는 플레이하지도 않을 블리자드 게임을 구입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블리자드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20년 후에도 친구들과 술값내기 4:4 무한헌터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테니까.

올해 여름 등장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상업적으로 얼마나 성공할지, 과거처럼 e스포츠 리그가 부활지는 미지수다. 젊은 프로게이머들이 ‘브루드워’에 얼마나 도전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의 게이머로서, 리마스터가 실패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단순히 철지난 고전게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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