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엔전꿈’ 김보통 작가, 게임으로 사회의 민낯을 그리다

<사진=김보통 작가 제공>

[인터뷰] 게임 웹툰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김보통 작가

김보통 작가의 웹툰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이하 엔전꿈)’는 용감하다 못해 도발적인 작품이다. 몇몇 컷에서는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 만화가는 지금 제정신인가.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이러나. 이러다 어느날 쥐도 새도 모르게 연재가 중단 되는 것은 아닐까.

‘엔전꿈’ 첫 화는 우연히 모바일게임을 다운받은 ‘흙수저’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난이도부터 선택해야 한다. ‘쉬움(Easy)’을 선택하려니 일단 다짜고짜 결제부터 하란다. “뭐 이런 게임이 있나”라며 주인공이 당황하는 순간, NPC가 튀어 나와 말한다.

“게임의 쉬운 난이도가 왜 유료냐고? 원래 세상의 쉽고 편한 것들은 비싸기 때문이지. 몸으로 때우든가, 돈으로 때우든가. 마치 너의 인생처럼.”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주인공이 시작한 게임은 현질 압박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모든 기능들이 유료다. 심지어 자동사냥도 유료 결제를 해야만 가능하다. 이 황당한 게임을 두고 NPC는 돈만 내면 좋은 아이템을 얻고, 게임 내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다른 유저들의 부러움을 살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게 무슨 게임이냐고 반박하려는 주인공, 혹은 독자들의 눈앞에는 이런 대사가 펼쳐진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현질은 의미가 없어? 노력이 그렇게 중요해? 그러면 현실에서나 그렇게 열심히 살아. 게임하지 말고.”

놀라운 것은 이 웹툰이 게임사인 엔씨소프트 공식 블로그 ‘우주정복’에서 연재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연재 초반에는 “작가가 미쳐서 엔씨에 이상한 만화 올린다” “어떻게 이런 만화가 게임사 블로그에 연재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올라왔다. 고도의 게임회사 디스 만화라는 의혹도 따라 붙었다.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게임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다

홍대 인근에서 만난 김보통 작가는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절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며 웃은 그는 “엔씨를 욕할 생각은 전혀 없고, 게임회사를 디스를 하기 위해 그린 만화도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통 게임만화라고 하면 포맷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재가 중복되지 않아야 하니 지금까지 나온 게임 만화는 모두 읽었다.

“평소 VR과 AR 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소재를 다루고 싶었다. 또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게임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이 만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야기다.”

‘엔전꿈’은 어느날 정체불명의 게임이 출시되고, 게임사가 미션을 달성한 유저에게 취업을 시켜준다는 파격적인 보상을 내건다는 이야기다. 그러자 전국의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게임을 다운받고 플레이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갈등하고 저항하지만, 누군가는 인생을 걸고 게임에 몰두한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보통 작가는 “현재 청년들의 화두가 취업이기에, 게임의 보상으로 취업을 내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봤다. 아마 게임 공략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을까”라며 “현실의 수많은 취업 학원들도 경쟁만 가중시킬 뿐, 불평등한 구조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그걸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만화가 중반부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이 늘어나고, 게임을 둘러싼 음모와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만들어낸 세상도 나온다.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세상이냐고. 우리의 세상은 무엇이 문제냐고.

사실 이러한 내용들이 엔씨소프트 블로그에 그대로 실릴까 의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엔씨소프트가 민감한 내용은 막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막지 않았다”며 “엔씨의 그러한 점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게임 즐기는 마니아…다음에도 게임만화 그리고 싶어

김보통 작가와 대화를 나눠보면 게임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어릴 적에는 게임 개발을 하고 싶어서 관련 책을 읽거나 C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적도 있다. RPG메이커도 써 봤다”고 말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내용 중 유료화 모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본인이 좋아서 과금을 하는 것, 그리고 과금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게임사가 확률을 속이거나, 말도 안되는 확률로 장난을 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그건 유저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게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좋은 사회와 같다고 답했다. 그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가위바위보 같은 것이어야 한다”며 “룰에 따라 누구나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고 전했다.

“지금 20대, 젊은 세대들의 절대 다수는 사회에 대한 기대가 없다. 포기했다. 사회 구조가 너무 빡빡하고, 사회의 근간인 정부의 말도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보면 다음 정권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믿지 못하겠다는 젊은이가 절대 다수다. 그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사진=김보통 작가 제공>

올해로 데뷔 4년차인 그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30대에 뒤늦게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회사원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그릴 계획이다. 본인이 회사를 다닐 때 느꼈던 불합리함과 아쉬움을 만화에 모조리 담아낼 생각이다. 그때를 위해 칼을 갈고 있다. “한국의 보수적인 대기업의 경우, 군대와 회사가 거의 같은 조직”이라고 말한 그는 “대기업 신입사원에 대한 환상을 박살내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아만자’와 ‘D.P 개의날’, ‘내 멋대로 고민상담’, 그리고 ‘엔전꿈’까지. 그의 그림체는 작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 그는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들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계속 머물러 있고 싶지도 않다”며 “만화를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그릴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다음에도 게임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재 중간에도 게임과 관련된 더 재미있는 소재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순히 게임만을 다룬 만화를 그리기는 싫고, 현실의 갈등을 해결하는 매개체로 게임을 다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도 룰이 적용되는 커다란 게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지배하는 룰이 무엇인지, 그 룰이 공정한지 플레이어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해야 한다. ‘엔전꿈’은 좋은 게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지만, 독자들은 거꾸로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절대 게임회사 디스하는 만화 아니다(웃음).”

엔씨소프트 블로그 우주정복은?

엔씨소프트가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다. 엔씨소프트와 관련된 소식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게임 관련 콘텐츠들은 연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뇌과학, 게임 음악, 그래픽 등 다루는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엔씨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이나 야구단 엔씨다이노스의 소식들도 올라온다.

특히 ‘우주정복’에는 윤태호, 주호민, 강풀 등 인기 작가들의 웹툰이 연재돼 화제를 모았다. 현재 연재중인 김보통 작가의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는 33화까지 공개됐다. 김보통 작가가 무려 4명의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상당히 공을 들여 연재중인 작품이다(데뷔 이후 최대 블록버스터 규모라고 한다). 웹툰의 제목은 필립 K. 딕의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미현 엔씨소프트 소셜커뮤니케이션 실장은 “게임 회사 블로그라고 해서 단순히 자신들이 서비스하는 게임 홍보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엔씨소프트는 게임 업계의 맏형인 만큼, 모든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유저들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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