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병맛 마케팅부터 셀프디스 마케팅까지…기상천외한 게임 마케팅 눈길

불과 열흘 전 일본 SNS(소셜네트워크, 트위터)에서 몇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훼손된 택배 상자 사이로 게임 ‘파이널 판타지15’ 패키지가 들여다보이는 사진이었다. 잘못 배송된 거냐고? 아니다. 스퀘어 에닉스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재팬을 통해 펼친 신작 마케팅이었다. 박스가 훼손된 것처럼 위장한 뒤 ‘파이널 판타지15’ 패키지 이미지를 인쇄해 소비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겠다는 의도였다.

상자를 받은 네티즌들은 감쪽같이 속았다는 반응이었다. 저마다 SNS에 사진을 공유하며 ‘파이널 판타지’ 출시 소식을 퍼날랐다. 자연스레 스퀘어 에닉스의 객원 마케터가 된 셈이다. 이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똑똑히 게임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 게임업계의 마케팅도 만만치 않다. 트렌드에 맞춰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상징적인 아이콘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한다.

‘던전앤파이터 신봉선’, ‘마구마구 도도새 이벤트’ 등의 마케팅은 이색적이면서도 다소 황당한 마케팅 사례로 주목 받았다. 게임톡은 한국 게임에서 화제가 됐던 ‘이색-병맛- 셀프디스’ 등 소위 ‘약 빤’ 마케팅을 조명해본다.

■ 아이유가 화나면 신봉선이 된다? ‘던전앤파이터’ 아이유 - 신봉선 닮은꼴 마케팅

2014년 1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던전앤파이터(던파)’ CF는 유저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제6대 던파걸 출신인 아이유가 오랜만에 던파 유저의 품으로 돌아와서만은 아니다. CF 후반부에 등장한 문제의(?) 장면 때문이었다.

적에게 둘러싸인 아이유가 난데없이 신봉선으로 변신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충격과 함께 웃음을 자아냈다. 영상 속 신봉선은 무기, 옷차림, 머리스타일과 생김새(?)까지 아이유와 흡사하다. 당시 인터넷 상에서 아이유와 신봉선이 닮은 꼴 연예인으로 자주 언급됐고 이를 캐치한 마케팅 팀이 과감히 둘을 동반 출연시킨 것이었다.

사실 콜라보의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CF 영상은 ‘던파’의 신규 캐릭터 나이트를 선보이기 위함이었다. 나이트는 평행 세계의 또 다른 자신에게 힘을 빌려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다. 유사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가진 아이유와 신봉선의 상황과 대입하면 절묘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CF는 유저들 사이에서 ‘기발하고 트렌디하다’ ‘광고 스토리와 잘 맞아 떨어진다’ 등 호평을 받으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마케팅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이유’,‘봉선이’ 크리처(보조 캐릭터)를 출시했다. 더불어 무제한 크리처를 획득한 유저 중 추첨을 통해 아이유 혹은 신봉선 등신대 300개를 각각 제공했다. 등신대는 랜덤으로 발송됐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함지현 넥슨 홍보팀 과장은 “닮은꼴인 두 모델을 통해 반전의 재미를 재치 있게 선보이고자 했다. 연약한 이미지의 캐릭터 나이트를 재현한 아이유가 적들을 만나 괴력으로 발휘하는 순간 신봉선으로 변한다는 설정이었다. 두 홍보모델 역시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유저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 말했다.

■ 강화, 강화라니! 신입사원 쑤남 아이돌로 우뚝

2015년 던파 페스티벌에서는 즉성 강화 쇼가 한창이었다. 일반인 유저들의 참여가 끝난 후 비쩍 마른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네오플의 1개월 차 신입사원 쑤남(가명, 게임 ID)이었다.

쑤남이 컴퓨터 앞에 앉자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그가 강화를 할 아이템은 +12강 6재련 미완성 인피니티 건틀릿이었다. 당시에 미완성 인피니티 건틀릿은 상위권의 능력을 가진 값진 아이템이었다. 쑤남은 강화 상태창을 닫는 등 현실을 거부하려 애썼으나 일개 신입사원인 그가 상황을 바꿀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결과는 강화 실패. 한동안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의 모습은 한동안 ‘던파’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일부 유저들은 부당한 이벤트를 진행한 넥슨 측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계획된 행사였다는 해명 글까지 올라왔을 정도니 당시 쑤남이 팬들에게 얼마나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지 짐작 가능하다.

그 후로 신입사원 쑤남은 병맛 마케팅의 인기에 힘입어 ‘던파’의 얼굴이 되어 맹활약한다. 평범하고 수더분한 외모를 지닌 수남은 특유의 발연기로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3월 던파 VR 홍보 영상으로 시작해 던파 11주년 특별 기획 ‘시그널’의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6월에는 배우 유아인의 음료 CF를 패러디한 영상에 출연해 깜찍하고 잔망스러운 표정으로 모두의 손과 발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넥슨 측은 “쑤남이 던파 유저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해졌다”면서 “이후 유명 연예인과 다르게 네오플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로 유저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게 됐고 ‘던파’의 다양한 홍보 영상 출연뿐만 아니라 행사 진행자로도 활약하면서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인기 웹툰작가 이말년- 야구게임 ‘마구마구 도도새 이벤트’ 대소동 번져

셀프디스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모면한 마케팅 사례도 있다. 2011년 트위터에 ‘이말년 시리즈’ ‘이말년 서유기’ 등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 이말년의 트윗이 올라왔다. 넷마블게임즈에서 서비스하는 야구게임 ‘마구마구’와 제작사 애니파크를 향한 독설로 범벅이 된 글이었다. 당시 ‘마구마구’는 헤비 유저들을 겨냥한 업데이트로 유저들 사이에서 원성이 잦았다. 신규 유저들의 유입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말년은 ‘마구마구’의 광팬이었다. 그런 그가 분노한 이유는 한 유저와의 마찰 때문이었다. 과도한 실점으로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이말년은 콜드게임을 위해 상대에게 고의 사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 유저가 이말년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말년은 대화를 캡쳐해 애니파크 측에 신고했다.

그런데 애니파크 측의 대응이 황당했다. 스크린샷의 파일 형식을 지적하며 신고 접수가 불가하다는 의사를 이말년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말년은 즉시 분노의 트윗질을 시작한다.

그는 ‘마구마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밸런스 문제를 토로하면서 애니파크와 ‘마구마구’에 대한 비판으로 트위터를 도배했다. 이 때 그가 내뱉은 ‘멸종된 도도새가 돌아와 회의해서 운영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라는 트윗은 ‘마구마구’ 유저뿐만 아니라 많은 네티즌들에게 전파 돼 화제가 됐다. 이말년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노이즈 마케팅을 한 셈이다.

그런데 얼마 뒤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이말년 결혼식에 전달된 화환’이라는 제목으로 등록된 게시글에는 애니파크 측이 이말년에게 보낸 화환 사진이 있었다. 화환을 보낸 것도 웃긴 일인데 화환 리본에 쓰인 글귀는 더 했다. 스스로를 도도새 일동이라 부르며 셀프디스를 한 것이다. 사태를 피하려들기보다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애니파크는 전에 없던 대규모 이벤트를 발표한다. 현재까지도 분기마다 유저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도도새 이벤트’의 시작이다.

이말년과 애니파크의 ‘도도새 사건’은 셀프디스를 통해 위기를 홍보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마케팅이다. 이런 마케팅은 현재 단순히 업계만의 전략이 아니다. 실제로 요즘 방송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날의 과오를 셀프디스 형식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이상 치부보다는 대중들을 향한 진솔한 어필로 다가온다는 분석이다.

■ ‘데빌리언’ 김치블로 별명을 역으로 마케팅 이용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마케팅이 하나 더 있다. NHN에서 서비스하고 2015년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데빌리언’은 출시 당시 김치블로라는 오명을 안았다. 블리자드의 대작 ‘디아블로’를 연상케 하는 쿼터뷰 시점과 핵앤슬래시를 표방한 게임 방식 때문에,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를 인용하여 별명을 붙인 것이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별명이지만 마케팅 팀은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 당시 페이스북 인기스타였던 채보미를 모델로 선정, 추첨을 통해 선택된 유저에게 김치를 배달하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배달 과정을 생중계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마케팅도 있었다. 한 온라인 게임의 경우 추첨을 통해 아파트 입주권, 전신성형권 등을 지급한다고 밝혀 유저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잘하면 약(藥)이고, 잘못하면 독(毒)"이 되는 게임 이색 마케팅이 게이머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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