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뒤흔든 ‘e스포츠 영웅’ 60만 팬클럽 최초 팬덤-‘불사의 대마왕’

[e스포츠 기획] 글로벌 뒤흔든 ‘e스포츠 영웅’: 60만 팬클럽 임요환-‘불사의 대마왕’ 페이커

29일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로게이머 이상혁(페이커, 20)이 한국 e스포츠 사상 최고 대우를 받으며 SKT T1과 재계약했다. 지난 23일 e스포츠 대상을 2회 연속 수상한 것에 이은 경사다. 구체적인 액수는 알 수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30억원에 근접한 금액으로 보인다.

격세지감이다. 14년 전 ‘테란의 황제’ 임요환(36)은 동양 오리온에게 프로게이머로서 최초로 1억 원의 연봉을 제의받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전성기에는 연봉을 포함 연 3억 원을 넘는 수익을 벌었다. 시간에 따른 가치를 감안해도 10배에 이르는 금액 차이는 놀랍다. e스포츠 시장이 한층 더 성장했음을 실감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당대를 대표하는 e스포츠 종목인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의 ‘팬덤’(광팬)을 가진 글로벌 스타라는 점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두 사람을 통해 ‘e스포츠 아이돌’ 계보를 파헤쳐본다.

■ 임요환,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화제의 승부사 ‘아이돌’ 우뚝

오늘의 페이커처럼 임요환은 당대 최고 인기스타였다.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그의 팬 카페 회원 수가 60만 명에 달했고 ‘스타크래프트’ 시청률 TOP10에 드는 경기만도 4경기였다. (1위가 2005 so1 스타리그 결승전 임요환 vs 오영종의 경기. 1.73%)

뛰어난 외모와 슈퍼플레이, 끈질긴 승부욕은 동시대 프로게이머들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면모였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엔 관심이 없어도 임요환의 경기는 챙겨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일종의 아이돌이었던 셈이다.

엄재경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 해설은 “임요환은 초대형 아이돌 스타였다. 그것도 연예계의 아이돌도 좋아하는 스타였다. 그의 이전에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자체를 좋아했지만 이후에는 내용을 몰라도 좋아하는, 60만 팬클럽을 거느린 진정한 ‘아이돌’ 위치를 차지했다”고 회고했다.
 
임요환의 플레이는 늘 화제를 낳았다. 생각지도 못한 전략도 모자라 상대의 허를 찌르는 드랍쉽 플레이, 마린 하나로 럴커를 잡아내는 플레이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게다가 임요환의 승부욕은 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중2병’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경기가 뻔히 기울었는데도 지저분할정도로 상대를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런 승부욕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4년 ever(에버)스타리그 결승전 당시 임요환은 제자 최연성에게 5세트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임요환과 어쩔 줄 몰라 잔뜩 풀죽어 있는 최연성의 모습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진을 통해 인터넷에 떠돈다.

이때 승자를 배려하지 않는 임요환의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괴물테란' 최연성은 '롤' 프로게임단 아프리카 프릭스의 2대 감독이 됐다.

그러나 명경기도 많았다. 특히 2005년 sol 스타리그 박지호와의 준결승에서 0대2의 상황을 뒤집고(익숙한 패패 승승승)역전승을 차지한 경기는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뽑힌다. 임요환이 만화 주인공 마냥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은 꼭 그림 같았다.

■ 프로게이머 최초로 대통령을 만난 임요환 '한국 e스포츠 개척자'

WCG(월드사이버게임스) 2회 우승부터, 최다 스타리그 진출 횟수(4회)까지 굵직한 커리어도 많지만 숱한 좌절도 겪었다. 은퇴하기까지 끝내 골든 마우스를 손에 쥐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임요환 보다 커리어가 뛰어난 선수도 많다. 그러나 그가 ‘스타크래프트’를 넘어 e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은 무엇보다 e스포츠를 향한 그의 헌신 때문이었다.

[출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사진 왼쪽 두번째가 임요환]

시작은 4U라는 독립 팀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그는 동양의 개인 스폰을 마다하고 사비를 털어 최연성을 포함한 팀을 구성했다. 대기업 스폰서가 없던 때라 임요환의 결정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개인의 성공보다는 e스포츠 전체의 번창에 집중한 결정이었다.

2004년 4월, 그는 결국 SK 텔레콤을 e스포츠 바닥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자 뒤이어 CJ와 웅진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이 팀 창단에 나섰다. 이는 e스포츠가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더불어 그는 수많은 지상파 방송에 출연을 자처,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게이머 최초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는 e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팀 유니폼을 입고 청와대에 들어간 당당한 태도는 많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엄재경 해설은 “임요환은 1999년 데뷔 후 8년 내내 e스포츠 산업을 끝없이 확장 시킨 대표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팬덤’ 현상을 만들었다. 임요환-홍진호의 ‘임진록’-개인통산 100승 등 명승부들을 펼쳐 한국에서 탄생한 e스포츠 용어를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반명사’로 정착시키는 일등공신이다”고 평가했다.

■ 롤의 시대 개막 CNN “페이커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스포츠 스타” 극찬

2016년 현재 e스포츠 판은 “롤은 몰라도 페이커는 안다”는 말이 나온다. 이상혁(20, 페이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그의 아이디 ‘고전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2013년 데뷔 경기부터 화제였다. 상대는 화려한 경력의 미드라이너(롤에서 중단 라인을 맡고 있는 플레이어) ‘엠비션’ 강찬용이었다. 페이커는 엠비션이 방심한 틈을 타 과감히 타워로 진입, 솔로 킬을 따냈다.

거침없는 행보가 계속됐다. 그가 속한 SKT T1은 2013년 LCK(롤챔스), 롤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2015년엔 LCK 2개 시즌과 롤드컵(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했다. 올해는 전반기에만 IEM, LCK, MSI를 전부 석권, 트리플 크라운을 이뤄냈으며 10월 말 결국 롤드컵 우승을 이뤄 내면서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이제 페이커는 전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로 성장했다. 세체미(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 페친놈, 페이커 센빠이(페이커 선배), 갓전파 등의 별명이 따라붙었다. 그의 경기가 담긴 유튜브 영상은 ‘빅뱅’ 못지 않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국·내외 프로게이머들이 그를 하나의 신앙처럼 떠받드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그려져 화제가 됐다. 말하자면 ‘프로게이머의 프로게이머’가 된 셈이다.

외신도 페이커에 주목했다. 지난해 6월에는 ESPN에 국내 프로게이머 최초로 ‘불사의 대마왕’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기사로 보도됐고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CNN이 페이커를 리오넬 메시, 마이클 조던과 같은 스포츠 스타에 비견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페이커는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게재하는 유력 해외 미디어인 ESPN, ABC 뉴스, USA 투데이, 더 플레이어 튜리뷴(The Players Tribune)에서 첫 e스포츠 선수로 소개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 살아있는 알파고 같은 계산 능력, 쇼맨십-겸손 무장 ‘세체미끼’라는 명성

온전히 개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롤’은 개인 기량이 부각되기 힘든 게임이다. 5vs5의 팀 대전 방식이기 때문이다. 페이커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도 모자라 국내 최고의 계약을 체결하게 된 밑바탕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뛰어난 피지컬이다. 상대 스킬을 무리 없이 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살아있는 알파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거듭 킬을 낸다. 자신보다 체력이 많은 상대를 도리어 게임에서 이탈 시키는 모습은 덤이다.

이현우 해설위원은 “페이커의 딜 계산은 더 이상 수학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며 아낌없이 칭찬했다.

챔피언 활용 폭이 넓은 것도 강점이다. 데뷔부터 2016년 3월까지 그가 선택한 챔피언 수만 42개다. 일반적인 프로게이머가 능숙히 다를 수 있는 챔피언이 10개 내외라는 것을 볼 때 어마어마한 수치다. 자연스레 전략적 활용도가 높아진다. 페이커를 마킹하는데 몰두하자 SKT T1의 다른 멤버들이 소리 없이 성장했다. 때문에 ‘세체미끼’라는 별명도 생겼다. 적절한 상황 판단과 과감함으로 선두에서 경기를 이끄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겸손함과 쇼맨십도 인기의 비결로 뽑힌다. 2016년 MSI에서 우승한 뒤에 “근거 있는 비판은 수용 한다”며 팬들에게 아낌없는 비판을 요청하는 모습은 눈길을 끌었다.

“제가 2대1로 붙어도 이길 것 같은데요.”라는 발언이나 “락스 타이거즈를 세계 2위로 만들겠다.”와 같은 인터뷰는 경기에 흥미를 더 해줘 비난보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2015년 롤드컵 당시 등장 퍼포먼스였던 앞구르기는 ‘페이커 라이즈’라는 캐릭터 스킨으로 만들어져 그대로 구현됐다.

그의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 유튜브 조회수다. 단순히 Faker로 검색해서 뷰(view)로 설정해보니 1년 전에 어느 유저가 만든 '베스트 오브 페이커' 영상의 조회수가 500만(5,045,578)였다. 2년 전 페이커 Zed라는 챔피언 플레이 영상은 300만이 넘었다.

2016 올스타 득표율에서 페이커는 타라인들과 비교 시 압도적인 득표율 82.6%을 기록했다. 탑: Smeb (56.5%), 정글: Bengi (46.3%), 원거리 딜러: PraY (51.9%), 서포터: MadLife (47.4%) 등과 비교하면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다.

■ 롤드컵 결승 시청자 2700만 명, e스포츠 아이돌 계보도 문화도 달라져

페이커의 인기와 더불어 e스포츠의 위상도 달라졌다. 2014년 10월 19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롤드컵은 관중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2010년 한일전을 포함해 4년 간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매진된 경우는 4번밖에 없었다. 심지어 2014년 롤드컵 결승 시청자가 2700만 명이었던 것에 반해 2014년 MLB 월드시리즈 7차전 시청자는 2350만 명이었다. e스포츠는 이제 하나의 스포츠이자 문화가 됐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시련도 많았다. 임요환은 게임 중독자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고, 이윤열은 연봉 4억 중 3억을 pc방에 쓰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농담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기라성 같은 e스포츠 스타들은 여타 프로종목에 못지 않은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다.

특히 슈퍼스타인 페이커의 한국 잔류는 “역시 페이커”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숱한 수십억대의 제안과 편의제공이 동반하는 해외 러브콜을 거부한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한국 e스포츠의 새 아이콘으로서의 책임을 보여주었다.

임요환과 페이커는 당대 e스포츠 스타로 우뚝 섰다. 임요환이 작은 e스포츠 산업을 계속 확장시킨 주인공이라면 페이커는 ESPN 등 정통 스포츠채널에서 메인 커버로 다룰 글로벌 스타다.

김건우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홍보부실장은 "임요환은 e스포츠를 모르는 사람도 알았던  '스타크래프트' 시절의 전국구 스타다. 페이커는 1억명이 플레이하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유저가 누구나 좋아하는 글로벌 슈퍼스타다. 둘은 게임 종목과 시간을 넘어  e스포츠가 낳은 최대 스타"라고 평했다.

이제 하나의 스포츠이자 문화가 된 e스포츠, 임요환과 페이커로 이어지는 유명스타와 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팬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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