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게임을 PC에서 즐긴다, 피시모스토어 개발한 김영호 대표

피시모스토어는 모바일게임을 PC에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멀티플랫폼 오픈마켓이다. 언뜻 ‘블루스택’이나 ‘녹스’처럼 모바일 환경을 흉내내는 에뮬레이터와 비슷해 보이지만, PC 환경에 맞게 이식(porting)한다는 점이 다르다. 콘솔게임이 PC버전으로 따로 발매되는 것처럼, 모바일게임도 피시모스토어를 통해 PC버전으로 바뀌는 것. 모바일게임 대부분이 유니티, 언리얼, 코코스 등 상용엔진으로 개발되고, 이 상용엔진들이 리소스를 자동으로 컨버팅하는 기능을 지원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피시모스토어는 이렇게 PC버전으로 바뀐 모바일게임들의 계정을 연동하고, 한데 모아 서비스하는 오픈마켓 기능까지 담당한다.

세상에 없던 플랫폼을 표방하는 피시모스토어는 김영호 피지맨게임즈 대표의 아이디어다. 그는 게임엔진 엔지니어 출신으로, 온라인게임업계에 15년 몸담은 베테랑이다. 한국 온라인게임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바스티안’, 액션 MMORPG ‘패왕!세상을먹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MORPG ‘소울워커’ 등 쟁쟁한 온라인게임에서 엔진 설계를 맡았다. 남미에서 한국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진행한 경력도 있다.

“모바일게임에 올인해봐야 할 때인 것 같아 독립했다”는 김 대표를 서울 구로구 피지맨게임즈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모바일게임을 개발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했다”며 “고민 끝에 퍼블리싱 경험을 살려 플랫폼에 도전하게 됐다”며 웃었다.

구글-애플과의 싸움, 이 정도면 경쟁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은 쉽지 않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라는 글로벌 공룡기업들을 상대해야 했다. 국내 유수의 통신사 대기업들이 연합전선을 갖춰도 어렵다고 하는 판에 피지맨게임즈같이 작은 기업이 정면대결을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김 대표는 구글과 애플이 미처 접근하지 못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동남아, 중남미, 인도 등지의 신용카드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였다. 이 곳에서는 결제수단으로 선불카드가 주로 쓰이는데, 선불카드의 수수료가 너무 높은 탓에 구글과 애플이 수지타산이 안맞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그 곳이 우리가 먹을 시장이라고 생각했다”며 “선불카드 결제 기술을 개발해 중남미 시장에 접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1위 게임포털 기업과 접촉해 “1년 걸려 자체개발 할래, 간편하게 우리 기술 쓸래”라며 승부수를 던져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는 것. 결국 피지맨게임즈는 중남미 20개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이 경험을 기반으로 최근 태국에도 발을 넓혔다.

해외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 목표는 한국이었다. 김 대표는 모바일게임을 PC에서 즐기려는 수요는 많은데 관련 오픈마켓은 아직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뮬레이터로 모바일게임을 구동했는데, 버벅거림이나 프리징(멈춤) 현상으로 애를 먹었다. 이 때문에 중요한 순간을 망치고 아이템 보상도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문제는 에뮬레이터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 게임 개발사도 자신들이 에뮬레이터를 공식 지원한 것이 아니라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일 게임 개발사가 정식으로 모바일게임을 올려놓는 PC 오픈마켓이 있다면 어떨까. 유저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개발사는 유통채널을 넓힘으로써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피시모스토어다.

김 대표는 “이 정도면 구글, 애플과도 경쟁해볼 수 있다”며 “그들이 멀티플랫폼을 미처 생각하지 못할 때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게임등급을 자율적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5월에 통과된 것도 호재였다. 피시모스토어는 한국에서 13번째 게임 오픈마켓 사업자로 등록을 마쳤다.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대기업들만 유리한 법안? 예상 외 암초 만나

문제는 해당 개정안이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문화체육관광부령이 정하는 금액 이상인 법인에 한해서만 자체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문항이었다. 신생 사업자인 피시모스토어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김 대표는 “대략 100억원대 연매출을 올려야만 마켓사업을 할 수 있다”며 “이 문항 때문에 마켓사업은 가진자들만을 위한 장터가 됐다”고 한탄했다.

“법안이 생긴 것은 좋은데, 왜 조건이 붙는지 모르겠다. 100억원 정도 매출을 갖춘 PC 오픈마켓은 페이스북 밖에 없는데, 페이스북이 시장을 다 먹으라는 이야기와 똑같다. 이건 좀 너무하다.”

김 대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출액 기준이 국내인지 해외 포함인지도 모르겠고, 게임에서 나오는 매출만 계산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답답한 나머지 게임물관리위원회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게임과 아무 관련 없는 부동산 기업이랑 M&A해서 매출 100억원 맞추면 되는거냐”고 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바일게임 오픈마켓이 많아져야 중소 게임개발사들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원스토어에 입점하지 못하는 게임들은 구글 피쳐드가 유일한 희망인데, 그나마도 인맥이 없으면 꿈도 못꾼다고 했다.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켓이 더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강원도 마켓, 전라도 마켓, 인디게임 마켓, MMORPG 마켓 등 다양한 전문 오픈마켓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며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들과도 상생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시모스토어는 ‘미인강호’, ‘팬텀솔져’, ‘뉴맥스포커’ 등 대여섯개의 게임으로 8월 한국에 론칭했다. 인지도가 낮다보니 아직까지는 게임사들의 반응이 소극적이다. 그는 “인디게임사들도 게임이 얼마나 입점했냐, 매출은 얼마냐, 뭘 해줄 수 있냐 꼬치꼬치 물어본다”며 “구글이나 원스토어 등 기존 마켓에 입점하되, 우리 오픈마켓에도 부가적으로 같이 입점하라는 게 우리의 콘셉트”라고 웃었다.

게임 10개를 채우지 못하고 론칭했지만, 게임은 앞으로 차차 늘려나갈 생각이다. 김 대표는 “현재 두군데 게임사가 추가로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달에 한두개씩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매출을 올리기보다는 향후 2년은 자리잡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행히 ‘미인강호’가 피시모스토어에 입점한 후 매출이 눈에 띄게 올랐다. MMORPG와 같은 하드코어 게임에서 수요가 있다는 방증이다. 김 대표는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감당할 수 없는 대형 콘텐츠가 나올수록 PC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초부터 중국게임들을 필두로 대규모 레이드, 대규모 공성전 등의 무거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며 “간단한 콘텐츠는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네트워크 안정성이 필요한 콘텐츠는 사양이 받쳐주는 PC에서 즐기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퍼블리싱 업체와 론칭 계약을 체결한 피지맨게임즈. 오른쪽이 김영호 대표]

VR사업도 준비중… 1000개 가맹점 목표

오픈마켓이 자리잡은 후에는 가상현실(VR) 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전국 PC방에 샵인샵 개념으로 ‘VR존’을 만들고,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 두어대를 갖다 놓고 운영하겠다는 게 요지다. 김 대표는 “지금은 유저들이 100만원대 장비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시기”라며 “비슷한 비즈니스가 중국에서 성행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피지맨게임즈는 서울 지역 PC방 점주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VR사업 프랜차이즈 모집에 나섰다. 부산, 청주, 대구 등 지방에서도 비슷한 세미나를 개최할 생각이다. 전국 1000개 가맹점 동시 오픈이 목표다.

김 대표는 “특히 VR게임 개발사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콘텐츠는 만들었는데 시장이 없어서 우려하던 부분을 우리가 해소시켜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피지맨게임즈는 PC방 가맹점 및 VR게임 개발사들과 협업해 다운로드 건당 과금이 아닌 시간제 과금으로 VR존을 운영할 계획이다.

김 대표의 중장기 목표는 피시모스토어를 중소 게임 개발사들의 오아시스로 만드는 것이다. 중소게임들이 수백억원 개발비를 자랑하는 대작게임에 밀려 론칭도 못하고 고사하지 않도록 틈새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중소 모바일게임 개발사, VR게임 개발사들은 게임을 팔 수 있는 시장을 갈망한다. 그 목마름을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싶다.”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