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짓에 반응하고, 내 말에 응답하는 VR… 미연시게임이 온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온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이 맥주 한 잔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이렇게 혼자 마신다.”

지난 5일 첫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혼술남녀’의 대사다. 이 드라마는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강사들과 공시생(공무원시험)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혼술(혼자 먹는 술)’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얼마전 ‘혼밥’이 트렌드로 떠오르더니, 이번에는 ‘혼술’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공감을 사는 중이다. 그만큼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한국 전체 인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520만3000가구로 27.1%를 차지했다. 102만1000가구였던 25년 전에 비해 5배 늘었다. 고시촌에 틀어박힌 취업준비생, 결혼을 포기한 싱글족, 아무도 찾지 않는 독거노인은 해마다 늘어난다.

이들은 추석에도 다양한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명절에도 여전히 혼밥, 혼술이다. 덕분에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CU는 내친김에 호박전과 동그랑땡을 담은 명절 콘셉트의 ‘풍성한 전 도시락’까지 출시했다. 일본에서 설날에 1인용 오세치(정월에 먹는 특별요리) 도시락이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혼밥족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데에는 게임이 큰 역할을 한다. 많은 유저들이 동시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MMORPG는 명절 기간에 더 북적거린다. FPS게임이나 MORPG 등 다른 온라인게임들의 접속자 수가 대폭 늘어난다. 이 기간에는 PC방에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혼밥족, 혼술족들은 게임에서나마 “추석 잘 보내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명절에 고향땅을 밟을 수 없었던 탈북민 정시연씨는 한 방송에 출연해 “사람이 그리운 날이면 온라인게임에 접속했다”고 말했다. 게임에는 재주가 없는 그녀였지만, 게임을 못한다고 타박을 들어도 시끌벅적 게임을 즐기는 편이 좋았다는 것. 결국 그녀는 온라인게임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다. 게임이 온갖 범죄의 원흉인 양 묘사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VR(가상현실)게임은 혼밥족들의 고독을 근본적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는 도구로 꼽힌다. VR 속 게임 캐릭터가 내 손짓에 반응하고, 내 말에 응답한다. VR게임에서 가상의 게임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 앞에 진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실체가 없는 그래픽도 인간과 교감을 나누고 위로가 되어준다. 시장을 선도하는 VR게임 개발사들 중 상당수가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을 택한 이유다.    

볼레크리에이티브는 VR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두 종류의 데모버전이 완성된 상태다. 오큘러스코리아 지사장을 역임했던 서동일 볼레크리에이티브 대표는 “인공지능과 VR을 결합해 만든 가상의 친구가 인간의 외로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진짜 친구나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VR스튜디오도 정서적 교감에 초점을 맞춘 VR게임 ‘프로젝트M’을 만들고 있다. 민동준 EVR스튜디오 총괄프로듀서는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이 아닌 감성교감 콘텐츠라고 불러달라”며 “디지털캐릭터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사실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리얼엔진4의 기술을 십분 활용한 ‘프로젝트M’의 프로토타입 버전은 올해 10월 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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