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사들이 ‘오버워치’ 같은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

지난해 11월 블리즈컨 현장에서 ‘오버워치’를 플레이해본 후, 잠시 동안 블리자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개발자인 제프 카플란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무슨 약을 하기에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까.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기사를 작성했다. 미안하지만, 오버워치는 전설이 될거야. 기사 제목이었다.

예상대로 ‘오버워치’는 출시와 동시에 온라인게임 시장을 강타했다. 한국 서비스 1개월 만에 절대강자였던 ‘리그오브레전드(롤)’를 밀어내고 PC방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 봐야겠지만, ‘오버워치’가 전 세계 유저들이 인정한 수작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완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니다. 이 게임은 과거 FPS 게임 ‘퀘이크’ ‘하프라이프’ ‘팀포트리스’의 광팬이었던 블리자드 핵심 개발자들이 의욕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엄밀히 따지면 고전의 재해석이다. 그 재해석의 완성도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면 이런 게임이 나온다.

‘오버워치’의 성공은 한국 게임업계의 고정관념마저 깼다. 기존 IP(지적재산권)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FPS에서도 팀워크와 협동의 재미를 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스토리는 굳이 게임 안에 모두 담아내지 않아도 된다. 유저들은 노출이 없는 여성 캐릭터도 좋아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게임에선 할아버지도 멋있다.

새로운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넥슨이나 엔씨소프트가 만들었더라도 이런 게임으로 나왔을까. 한국에서 못 만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판교의 현직 개발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져봤다. 왜 우리는 못 만드느냐고.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타이탄’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타이탄’은 블리자드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우)’를 뛰어넘는 게임을 만들겠다며 덤벼든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최고의 개발자들이 수년간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게임은 나오지도 못했다. 프로젝트가 망했다. 2014년 마이크 모하임 대표는 직접 ‘타이탄’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가 ‘리니지이터널’을 포기하거나,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 있을까. 개발자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시는 한다.” 블리자드가 세계최고 게임사라 불리는 이유는 ‘오버워치’를 만들어서가 아니다. ‘타이탄’ 같은 대작을 포기할 수 있어서다(그 전에는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를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대작일수록 포기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구조다. 프로젝트가 접히는 순간 주가가 떨어지고 책임론이 불거진다. 투자자들과 주주들이 분노한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이 이어진다. 경영진들은 눈앞에 펼쳐질 비극을 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더 들여서라도 끝내 완성은 한다.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여도 내야 한다. 수많은 게임들이 그렇게 출시됐고, 그렇게 망해갔다.

두 번째는 어쩌면 핵심이다. 실패한 구성원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의 개발자 대부분은 ‘타이탄’에 참여했던 이들이다. 크리스 멧젠 부사장부터 제프 카플란, 스캇 머서, 제프 굿맨, 그리고 함께 일하는 수많은 팀원들까지. 회사는 프로젝트를 말아먹은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그 흔적이 게임에 남아 있다. 트레이서가 ‘오버워치’의 첫 영웅인 이유는, 같은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타이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르다. 개발이 중단되거나 게임이 망하면 구성원들은 다른 팀으로 넘어간다. 이때 이동할 팀에 TO가 없다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과거 한 FPS 게임의 경우 40%의 인원만 흡수됐다. 60%가 퇴사했다. 핵심개발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경영진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새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실력 있는 팀이 느닷없이 해체돼 거리로 내몰리는 일도 벌어진다. 실패의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다.

게임 개발은 종합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들은 기술자이자 작가이며, 미술가이면서 음악인이고, 동시에 몽상가들이다. 그들이 모여 상상도 못할 미친 아이디어를 내며 모험을 계획하고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 실패를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환경에서 그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세 번째. 한국에서는 게임의 재미를 먼저 생각하고 만들기가 힘들다. 블리자드는 일단 ‘오버워치’를 최대한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수익모델을 고심했다. ‘오버워치’는 몇몇 캐릭터를 유료로 팔거나, 무료 로테이션을 돌려서는 완벽한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결국 블리자드는 패키지 판매를 밀어붙였다.

한국에선 이 순서가 반대다. 수익모델과 매출 지표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애초에 그 지표를 목표로 게임을 기획하고 투자를 받아 예산을 집행한다. 매출을 잘 내기 위한 수단으로 유명 개발자들을 모아 팀을 꾸린다. 이 방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이렇게만 하니까 문제가 벌어진다. 매출과 주식, 작업의 효율성만 생각하다보면 게임이 추구해야 할 재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시장이다. “한국은 왜 오버워치를 못 만드느냐”라는 질문은, 그 게임이 팔린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 비로소 유효하다. 패키지 판매는 블리자드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한국 게임사는 패키지 게임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고, 해외에서 인지도도 없다. 내수시장에서만 팔아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이를 구입한다는 보장이 없다.

종합해보면 현실은 이렇다. 수익모델을 먼저 생각하면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나오기 힘들고, 유료 패키지가 시장에서 팔린다는 보장도 없으며, 회사는 재미보다 수익모델을 우선시하는데다, 실패한 구성원들은 당장 직장에서 잘릴 판이니, 오늘도 개발자들은 현질유도 극심한 게임을 만드느라 목숨을 걸어야 한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든 게임사의 사정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학계나 경영진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직 개발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규모의 회사이기에 개발 가능한 게임이지만, 동시에 한국이기에 만들지 못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블리자드가 완벽한 게임사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들은 18년 동안 지겹도록 기존 IP를 우려먹었고, 몇몇 게임들은 유저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버워치’라는 게임으로 시들해진 FPS 장르를 부활시켰다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한다.

유행에 민감한 것과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시간을 1~2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국 게임사 중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FPS 게임 개발에 나설 회사가 있었을까. FPS에 벽을 타는 힐러(루시우)와 표창을 던지는 자객(겐지)을 등장시켰을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벌써부터 판교에서 FPS를 개발하던 회사가 ‘오버워치’를 벤치마킹해 게임을 갈아엎는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한국 게임사는 이 폐쇄회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 물론 스스로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처럼 해도 된다. 모든 회사들의 목표가 블리자드일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위험해 보이기는 한다. 잘 알지 않는가. 유행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사진=맨위부터 블리자드의 제프 카플란 디렉터, 스캇 머서 디자이너, 크리스 멧젠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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