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크래프트’ 개봉전 만나는 ‘듀로탄’과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연대기’

호드의 대족장 오그림이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둠해머’를 휘둘러 인간 병사를 절명시키는 순간을 본다면,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서막’ 관객 반응은 아마 둘로 나뉠 것이다. “록타르 오가르(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저런, 저 흉측한 대머리가 나쁜놈 끝판왕인가봐.”

오크(호드)와 인간(얼라이언스)의 대립을 다룬 원작 게임 ‘워크래프트’에서 오크가 마냥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원작팬들에게 기본 상식에 가깝다. 처한 상황과 이념이 다른 탓에 인간에게 칼을 겨눌 뿐, 그들도 옳고 그름을 아는 지성적 존재다. 오크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스랄만 봐도 그렇다. 올곧은 인성과 정의로움을 자랑하는 스랄은 ‘스랄형님’으로 불리며 수많은 원작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원작팬이라면 오크와 인간의 전투에서 오크의 편을 든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원작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오크는 몬스터일 뿐이다. 이들이 흔히 떠올리는 오크는 판타지의 아버지 톨킨이 쓴 ‘반지의제왕’에 등장하는 사악한 존재들이다. 외모부터 비호감인데 하는 짓도 미운 짓만 골라서 했으니 감정 이입이 될 리 없다.

더구나 ‘워크래프트: 전쟁의서막’은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아제로스’에 오크들이 침공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연스레 ‘오크=나쁜놈’, ‘인간=착한놈’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무릇 사람은 최초에 빌미를 제공한 가해자에게 인색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많은 관객들이 가해자 오크보다는 피해자 인간의 편을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워크래프트: 전쟁의서막’에서는 오크들의 행동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리는지가 관전포인트 중 하나가 됐다. 개봉 전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던칸 존스 감독이 “인간과 오크 모두 서로를 공격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공언한만큼 오크들이 왜 아제로스에 침략하게 됐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룰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티 골든의 ‘듀로탄’, 오크부족의 드레노어 탈출기

이런 점에서 크리스티 골든의 소설 ‘듀로탄’은 오크 지지자들에게 든든한 지원사격을 해준다. 이 소설은 스랄의 아버지이자 서리늑대 족장인 듀로탄이 왜 정든 고향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왜 호드에 합류해 아제로스를 침략하게 됐는지를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서막’의 공식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사실 듀로탄은 썩 입체적인 인물은 아니다. 언제나 명예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바른생활 사나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금수저로 태어나 공명심에 눈이 멀어 패륜까지 저지르는 아서스나, 친형의 형수를 노골적으로 넘보다가 추방당하고 타락한 일리단처럼 ‘막장 드라마’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 대신 이러한 듀로탄의 대쪽같은 성격 덕에 오크들의 타향살이는 더욱 절박하고 안타깝게 그려진다.

크리스티 골든은 뾰족한 송곳니로 인간을 위협하는 덩치 큰 괴물에게도 책임져야 할 어린 자식과 병든 부족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부족이 절체절명의 위험에 빠지자, 듀로탄은 명예에 반하는 판단임을 알면서도 결국 굴단이 이끄는 호드에 합류한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크들의 아제로스 침략을 정당화 수는 없겠지만,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블리자드와 손잡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관련 소설을 다수 발표해온 크리스티 골든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뛰어난 심리묘사와 표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역시 믿고 보는 크리스티 골든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이 소설을 본다면 영화의 재미가 한층 배가될 것이다.

다만 오크들이 처한 상황을 더 극적으로 그리려다보니 원작의 설정이 많이 바뀌었다. 원작에서 천둥군주 부족의 2인자였던 오그림 둠해머가 소설에서는 서리늑대 부족이 되어 듀로탄의 소꿉친구가 됐다. 원작에서는 무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배우자 드라카도 소설에서는 어릴 때 부족에서 쫓겨났다가 성인이 되어 극적인 순간에 합류한다. 오우거와 싸우다가 죽은 아버지 가라드는 굴단의 흉계에 목숨을 잃는 것으로 바뀌었다. 원작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듀로탄’= 크리스티 골든 지음. 유미지 옮김. 제우미디어. 값 1만4800원.

티탄의 탄생부터 어둠의 문이 열리기까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연대기

크리스 멧젠 블리자드 부사장이 만들어낸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정말 방대하면서도 매력적인 설정으로 가득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12년간 서비스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놨지만, 사람들의 궁금증은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다. 아니, 확장팩이 추가될 때마다 새로운 떡밥이 계속 늘어난다.

세계관에 목마른 설정덕후라면 블리자드의 공식 설정북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연대기’를 주목하는 편이 좋겠다. 이 책은 ‘워크래프트’부터 ‘월드오브워크래프트’까지 20년간의 이야기를 모두 모았다. 최초의 티탄 아만툴이 탄생한 순간부터 살게라스가 어둠의 문을 열고 아제로스를 침공한 순간까지 삽화를 곁들여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놀라운 점은 165페이지에 달하는 이 하드커버의 연대기가 이제 1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2권, 3권이 계속 나온다는 이야기다. ‘워크래프트’를사랑하는 설정덕후들이 수집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연대기 1’= 크리스 멧젠, 맷 번즈, 로버트 브룩스 지음. 고경훈 옮김. 제우미디어. 값 2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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