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로 돌아온 레진코믹스 인기 웹툰 ‘단지’ 작가 인터뷰

▲ <단지©2016, 단지∙레진코믹스>

처음 웹툰 ‘단지’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사이바라 리에코의 작품에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성차별과 폭력, 정서적 학대로 고통 받으며 자란 딸의 이야기. 작가는 자신의 분신인 단지를 통해 참담했던 성장기를 풀어놨다. 한 컷 한 컷 모두 작가가 직접 겪은 상처를 다시금 곱씹어낸 결과물이었다.

덜컥 노파심이 생겼다. 어쩌면 작가가 만화 연재를 끝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휴재에 들어간 날이면 불안은 더 커졌다. 그래서 시즌1이 끝났을 때, 결말의 내용보다는 연재를 무사히 끝냈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했다.

잠시 휴재 기간을 가진 뒤, 작가는 ‘단지 시즌2’로 돌아왔다. 시즌2는 작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독자들의 사연으로 꾸며진다. 어쩌면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연재에 들어간 단지 작가를 만났다.

“숙제 끝낸 기분”…독자 사연으로 시즌2 시작

‘단지’는 레진코믹스 사이트에서 최단기간,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인 이 작품이 화제를 모을 것이라고는 레진코믹스 내부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레진의 몇몇 편집자들은 “지금까지 내가 만화를 보던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인기는 시즌2와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졌다.

시즌1을 끝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후련하다”고 답했다. 시즌1에서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과거 자신의 힘들었던 속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지 작가는 “엄마와 연락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이야기를 한번 했다는 것 자체로도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고 전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도중 독자들의 사연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만화 속 단지처럼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의 사연이 수백 통이 날아들었다. 사연들은 작가가 펜을 다시 쥐게 만들었다. 단지 작가는 “만약 사연을 받지 않았으면 시즌2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단지©2016, 단지∙레진코믹스>

타인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작품으로 옮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시즌1은 제 이야기라서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서 힘들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시즌2에서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독자들에게 표현해야 한다. 결국 상처를 이야기 하는 것은 모두 힘들다.

작가는 페이스북과 메일로 사연을 보낸 독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거나 청소년들이었다. 대부분 단지처럼 가족에게 고통 받고 있지만, 스스로 현실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공통적으로는, 마음속 깊이 가족들을 싫어했다.

작가는 미리 어떠한 방향으로 만화를 그길 것인지 사연을 보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러 허구를 집어넣지는 않을 생각이다. 첫 에피소드는 가족 간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뉴스에 모든 사건 사고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 단지 작가는 자신이 메일로 받은 사연 중 성폭행에 대한 내용이 7%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저에게 사연을 보낸 사람들만 세어본 것이 그 정도니, 실제로는 더 많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시즌2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닌 웹툰의 형식으로. 그리고 사연을 보내온 독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의 사연을 읽을 때면 “어쩌면 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많았다고 한다. 웹툰 ‘단지’가 처음 공개됐을 때도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반응들이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는 “작가가 엄살이 심하다”는 냉소를 보냈다. 단지 작가는 “누군가가 더 아프다고 해서, 내 아픔이 괜찮아 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모든 사람들의 아픔은 결국 아픈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단지’의 방법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작품의 무게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까. 직접 만나본 단지 작가는 예상보다 훨씬 밝고 명랑했다. 취미를 묻는 질문에 “예전에는 우쿠렐레를 조금씩 쳤었는데, 최근에는 춤을 배우고 싶어 댄스 동호회를 나가고 있다”며 “몸으로 하는 취미활동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며 밝게 웃었다.

작가가 꿈꾸는 가정과 결혼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원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이 완벽할 수는 없고,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했을 때 가족들과 대화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 <단지©2016, 단지∙레진코믹스>

만약 ‘단지’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그녀는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스토리텔링과는 다른 구조라 힘들지 않을까. 진짜 그렇게 된다면 기분은 좀 이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내렸다. “어린 시절 키우던 동물이 죽은 뒤, 무엇인가를 책임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는데, 누군가가 함께 엮인다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단지’의 시즌1을 보면 종종 그녀를 학대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그림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최대한 못된 얼굴로 그리려 했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만화를 본 독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욕하는 것을, 작가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 수록 뒷모습을 그려 넣거나 자세히 그리지 않았다.

단지는 언제나 큰 귀와 꼬리가 달린 고양이의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한다. 모두가 사람인 가족 안에서 본인만 다른 존재로 그려 넣은 것은, 실제로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작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마치 만화에 등장하는 단지처럼. 상처는 잠시 잊혀질 수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끔 독자들은 그녀에게 물어본다. 긴 시간 동안 가족들이 주는 상처와 학대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냐고. 나도 단지처럼 하면 견딜 수 있는 것이냐고. 그녀는 “저는 만화를 그리면서 저의 방식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도, 저의 이야기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니 참고만 해 달라”며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정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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