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게임과 한국인의 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주말 아침이면 도봉산이나 북한산으로 연결된 전철은 등산철이라고 불릴 정도고. 최첨단 고가 신발에서 지팡이. 선글라스 등 패션까지 등산용품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산에 대한 높은 관심이 2만 달러 시대의 당연한 레저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긴 하지만 화려한 옷이나 장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에는 고상돈을 비롯한 박영석·엄홍길 등 세계적인 산악인들을 많이 배출하긴 했다. 최근의 등산 열풍에는 분명 그들의 영향이 크고. 기준을 제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산행객들이 높이와 장비 등에만 한눈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므로 만약 높이로만 산을 보는 것을 ‘등산’이라고 한다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는 ‘산’문화가 없었을까. 한국인에게 산은 단지 오르는 대상만은 아니었다. 엄연히 정신이 깃드는. 그리고 평안을 얻으려고 다녀오는 신성한 거처였다. 누대에 걸친 산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과 헌신을 대표하는 말로 ‘입산’이라는 말이 있다.

산은 드는 곳이지 단지 오르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말 중의 하나다. 물리적인 높이보다는 찾아가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내고. 쉬고 오는 정신적 귀의처였던 것이다. 그래서 ‘등산’이라는 말보다는 ‘산행’이라는 말이 더 윗길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인에게 산과 같은 친근감을 잘 발현하는 곳이 현대의 온라인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1촌을 맺어 파도타기로 서로를 방문을 하는 싸이월드나. 누구나 묻고 누구나 답하는 Web2.0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현한 네이버의 지식in. 게임하면서 대화창을 통해 수다 떨면서 자신의 길드나 클랜 등과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온라인 게임 등 한국인의 누대에 걸친 상부 상조의 전통과 품앗이 정신이 비로소 커뮤니티에 접목되어 날갯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혈연·지연·학연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이버 문화인 ‘넷연’이나 극성스런 댓글 민주주의를 지켜보면 어쩌면 한국인의 심성 속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어울리길 좋아하는 그런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지난 2월 <스타크래프트>의 개발자들이 방한했을 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한국에서의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의 원인 중의 하나가 자신들이 게임을 만들었을 때 집어넣은 대화창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그 이야기를 통역으로 들으면서 그렇지 하며 남 모르게 전율했다.

제 아무리 ‘낚시는 낚아채는 맛이요 산행은 굽어보는 맛’이라지만 산의 높이에만 집착하는 것이 서양식 허영이듯이. 온라인 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소양이 사실은 누대에 걸친 한국인의 상부상조의 심성에서 뿌리잡은 것임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그런 봄날이다.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200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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