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게임넷 이명근 감독, 장애인e스포츠연맹서 새 인생

[게임톡]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사는 근육병 친구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키보드를 치고 우승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한 사내가 변신했다. 한국 e스포츠를 일군 1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팀 감독. 이름은 이명근(44)이고 최종 소속팀은 온게임넷(2005~2010)이다. 그런 그가 이름도 이유찬으로 바꾸고 새로 선 곳은 더 높은 곳이 아니라 더 낮은 곳이다. 한국장애인e스포츠연맹의 전무다.

그는 10개월간 연맹의 서포터였다. 지난 12월 1일 이 명함을 갖기 전까지는. 그는 연맹의 지도자교육, 대회 지원 등의 일을 도왔다. 그때 알았다. “장애인들도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정상인을 꿈꾼다”는 걸.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 장애인들에게 게임은, e스포츠는 머나먼 남의 문화(비장애인)였다. 하지만 단지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PC와 가까운 그들은 누군가 옆에서 부축하고 이끌어주면 e스포츠를 통해 세상으로 쉽게 걸어나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열어젖히고, 게임대회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골방 문을 밀치고, 휠체어를 타고 세상으로 나오면 집 앞 복지관에, e스포츠 체험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피파온라인2’ 등 게임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씻어내고, 옆집에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든든한 네트워크도 생기고 자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장애인e스포츠연맹 전무로 변신한 이명근 전 온게임넷 프로게임단 감독.
■ 프로감독 노하우 ‘맞춤형 대전’ 눈길
이유찬 전무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내로라하는 1세대 프로게임단 감독 출신이다. 온게임넷에서 5년(2006~2010)간 이명근이라는 이름으로 감독을 역임했다. 클럽팀 KOR팀을 창단했을 때부터 치면 10년이 넘는다. 정수영(전 KTF)-김은동(STX) 감독 등이 그와 비슷한 1세대다.

 ‘어떤 분야에서 1만 시간을 연습하면 최고의 실력을 갖춘다’는 게 ‘1만 시간의 법칙’이다. 10년간 3시간씩 연습을 하면 1만시간이 된다. 이 법칙으로 쳐도 그는 e스포츠에서 10년 경험과 노하우를 지녔다.  그런 그가 이제 장애인e스포츠연맹에서 새롭게 펼쳐보이고 싶다. “e스포츠를 장애인과 함께 즐기겠다”는 그의 구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의 진단은 “기존의 한국e스포츠협회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또다른 실패만 낳는다”는 것.

지난해 9월 이 전무는 사비를 들여 20~30명이 참가하는 장애인 e스포츠 카페 대전을 연 바 있다. 효과가 좋았다. '스타크래프트'(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카트라이더'(넥슨), '피파온라인2'(네오위즈게임즈) 등 다종목 1팀제였다. 여러 종목을 하더라도 같은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소속감이 생겼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업그레이드된 맞춤형 대회를 꼼꼼하고 치밀하게 선보인다. 내년 1월에는 100여명이 참가하는 장애인 맞춤형 ‘온라인 지역별 대전’을 구상 중이다. 강원, 부산 등 지역별 지부와 함께 지역대표가 붙는 온라인대전 방식이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각 시도 및 구청장과 함께하는 오프라인대회, 학생체전 정식종목 참가 등 함께하는 대회를 비롯 11월에는 국제대회도 준비 중이다. 역시 프로는 다르다.

■ “경기의 질보다 장애인들의 축제”
한국에서 장애인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250만명이다. 실제로 500만명이 넘는다는 조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중 e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이 전무는 “현재 서울지구 7~8개를 비롯, 문화관광체육부와 설문 조사를 추진해 유저를 파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회에 40대 중반 부부가 ‘카트라이더’ 대회에 참여해 3위에 올랐다. 이처럼 장애인e스포츠는 어린이부터 실버세대까지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 있다”며 “장애인과 장애인,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 박람회나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장애인 e스포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 그는 “집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근육병 불치병 어린이가 있었다. 병이 계속 전이되고, 몸을 못움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대회에 참여했다. 피파온라인2 선수로 참가해 키보드에 손이 못 올라갔지만 엄마가 잡아주어 우승했다. 이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물론 이 대회에 아무도 와준 사람 없고, 매체나 방송사들의 관심도 없었다. 그래도 “따뜻한 관심과 시선이 필요하다. 가슴으로 다가서면 장애인e스포츠를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봉사엔 아내와 찰떡궁합, 회장과도 호흡 척척”
그렇다면 그가 사비를 털어 대회를 만들고, 또 서포터를 자청하다가 이제는 전무가 되어 정말 필요한 대회를 구상하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려서부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아내도 10여년간 복지 시설에서 근무해 사회봉사에는 부부간 찰떡궁합이었다. 그는 장애인시설 지원 모임에도 참가해왔다. 하지만 프로게임단 감독을 하면서 이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가 장애인 e스포츠에 대해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보게 된 것이 감독을 떠나고 나서부터다.

“연맹 지도자교육을 하면서 보니 장애인감독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그들을 가르치며 10년 노하우를 몇 개월에 전수하는 게 아쉬웠다”며 “또한 상처 받은 마음을 누가 다가와 안내해주고, 스스로 극복하게 해주는데 장애인 e스포츠가 절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e스포츠는 많은 부분이 장애인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게, 또 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e스포츠. 프로게임단 감독 출신의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한 새로운 꿈이었다. 장애인e스포츠연맹 이사 출신이자 현 회장인 임윤태 변호사(43)와 의기투합한 것도 이 무렵이다. 무료 변론 등 약자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임 회장과는 뜻이 척척 맞았고, 목표도 같았다.

앞으로 그는 임 회장과 함께 장애인e스포츠 대회를 활성화하고 비장애인과의 교류를 넓히기 위한 ‘히든카드’로 연맹에 대학생 봉사대를 결성한다. 사이버 상과 오프라인 상 장애인을 돕는 대학생 봉사대는 봉사대 게임대회도 같이 열어 대회 현장에서 장애인과 대전한다는 구상이다. 봉사의 즐거움과 함께하는 콘셉트를 공감하는 구심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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