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 ‘다키스트 던전’ 등 정통문법 깨는 퓨전

인디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명확한 카데고리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2000년대 중반, 정확히 말하자면 2005년 이후부터다. 그해 12월 미국 밸브 사는 자사의 게임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기 위해 만들었던 스팀에 ‘다위니아(Darwinia)’라는 타사의 게임을 올려놓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인디게임을 위한 플랫폼의 건설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인디스러운 게임만을 찾아서 플레이하는 마니아들도 많아졌을 정도로 인디게임의 위상은 올라갔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구글 플레이나 아이튠스 스토어뿐만 아니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콘솔 게임을 유통하는 플랫폼에 모두 자신의 인디게임을 예전보다 손쉽게 퍼블리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개발자들에게 항상 우호적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도 인디게임의 수준작들을 매 해마다 몇 편씩 플레이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눈높이 역시 인디게임의 발전 속도 못지않게 올라갔다. 특히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플랫포머(Platformer, ‘슈퍼 마리오’처럼 발판을 밟고 점프를 하면서 횡으로 진행하는 액션 게임), 로그라이크(Rogue-like, 고전 게임 ‘로그’의 특징들을 물려받은 게임으로, 세이브 불가, 랜덤한 던전 생성 등의 특징을 공유한다), 생존 게임(특정한 조건 하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을 경쟁하는 게임)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로그라이크 스타일에 리듬 접목 열광

‘페즈(Fez)’나 ‘림보(Limbo)’ 같은 수준급 플랫포머 게임을 플레이해 본 유저들은 다음 게임을 선택할 때 이 게임들을 기준으로 놓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플레이어들은 인디게임이 몇 명 안되는 개발자들이 제작한다는 상황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고, 치밀하게 설계된 퍼즐과 개성 넘치는 연출을 동시에 요구하게 된 것이다.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 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47080/
이는 개발자 입장에서 보자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인디 씬에서 창작이 빈번한 위의 세 장르에서는 지난해 무렵부터 기존의 전통적인 장르의 문법을 무너뜨리는 퓨전적인 형태의 게임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다른 장르의 메커닉(Mechanics,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GTA’ 시리즈의 가장 대표적인 메커닉은 총쏘기와 차몰기라고 할 수 있다)과 접목을 시도한다든가, 이미 고착화되어버린 연출 방식을 비틀어서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등의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게임은 지난해 4월에 출시된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였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로그라이크 스타일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리듬 게임을 접목시켜 스팀 유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쉽게 말해 로그라이크가 하나의 메커닉인데, 여기에 리듬 게임이란 메커닉을 접목시켜 게임을 퓨전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로그라이크 장르는 랜덤한 던전이 무한히 반복되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이브가 불가능하여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따라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장르를 플레이할 때 죽음에 이르지 않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 게임은 리듬 게임의 메커니즘을 차용하여 플레이어의 이러한 신중한 플레이를 원천적으로 차단시켜 버렸다.

이 게임의 화면 하단 가운데에는 심장이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심장을 향해 현재 재생되고 있는 배경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리듬바가 지속적으로 다가온다. 그 박자에 맞추어 플레이어는 무조건 상하좌우 중 하나의 버튼을 눌러야만 페널티를 받지 않게 된다. 이 박자를 놓치는 순간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받는 골드의 보상치 배수가 초기화 되어 버려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 필요한 좋은 아이템을 구입할 기회가 차단되어 버린다. 때문에 이 게임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그 박자에 맞추어 상하좌우 버튼을 무조건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플레이어에게 향후 일어날 결과에 대해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게임의 진행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로그라이크 장르의 게임 중 하나인 ‘바인딩 오브 아이작(Binding of Issac)’ 같은 게임의 경우,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와 마찬가지로 세이브 기능이 없어 매 순간 빠르게 적들의 공격에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하나의 장면에서 ‘바인딩 오브 아이작’은 몬스터를 다 처치했을 경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 플레이어가 잠깐 쉴 수 있는 인위적인 휴식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의 경우 하나의 스테이지 내부에서는 이러한 쉴 틈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플레이어의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다키스트 던전’ : 턴제 전략 게임 메커니즘 접목 고난이도 주목
반면에 같은 로그라이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턴제 전략 게임의 메커니즘을 접목시켜 매턴마다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인디게임도 존재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소재한 레드훅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다키스트 던전(Darkest Dungeon)’은 최근 IGF 2016 그랑프리에 최종 후보로 올라가면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인디게임이다.

공포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고딕적인 그래픽도 이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그러나 사실 이 게임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엄청나게 높은 난이도와 레벨 디자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다른 게임과는 달리 HP 외에도 캐릭터가 전투나 던전의 탐험 중에 받게 되는 심리적인 데미지를 수치화하고 있다. 이 심리적인 데미지는 최대 200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이미 100에 도달하는 순간 신경증, 공포, 남용, 편집증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여 다른 주변 캐릭터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어 플레이어가 꾸린 팀에게 또 다시 심리적인 데미지를 유발하게 된다. 또한 200에 도달하면 HP와 관계없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HP 외에도 이 심리적인 수치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죽으면 다시 부활할 수 없고, 매 순간마다 자동적으로 게임이 세이브되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결과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물론 이는 로그라이크 게임의 대표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다키스트 던전, 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62060/
따라서 플레이어는 던전 플레이 중 매 턴마다 항상 마음을 졸이면서 향후에 벌어질 결과를 예측하면서 심사숙고 해야한다. 이 때문에 ‘다키스트 던전’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기존 전략게임이 상당히 익숙한 플레이어들조차도 이 게임의 도전적인 난이도에 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진행 단계에 따라 난이도가 높아지는 속도가 빠르다. 일반적인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던전 내에서 빠른 판단과 민첩성,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컨트롤 실력을 요구하는 것에 비해, ‘다키스트 던전’은 반대로 신중한 판단과 전략을 요구한다. 물론 던전의 랜덤한 구성, 되돌릴 수 없는 결과 등과 같은 로그라이크 장르 특유의 특징들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와 ‘다키스트 던전’은 같은 로그라이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이 장르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메커닉을 퓨전적으로 접목시켜 눈높이가 높아진 플레이어들의 안목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물론 단순히 아무 메커닉이나 가져다 붙인다고 해서 그 게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게임은 기존 로그라이크 장르를 철저히 해부하여 그 중에서 자신들의 게임플레이 스타일에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제거하고, 그 나머지 부분에 리듬 게임이나 턴제 전략 게임의 요소, 심리적인 데미지 등의 메커니즘을 추가한 것이다.

이러한 공정은 게임을 세분화하여 분절시킨 뒤, 각각의 분절된 요소들이 게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보는 숙련된 게임 디자인이 뒷받침되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최근의 외식업계에서 요리 과정을 세분화하여 퓨전적으로 변화시킨 ‘분자 요리’가 인기를 얻게 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경닷컴 게임톡 이정엽 객원기자 elises@snu.ac.kr

이정엽은?

198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과 아버지가 사주신 애플 ][e와 북미판 닌텐도를 시작으로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7년째 게임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개설해 왔다.

이 수업들을 통해 제자들의 스타트업을 장려하고 후원하고 있다. 현재 모바일 게임회사 엑스몬게임즈의 감사 겸 서울대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연구교수 및 카이스트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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