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 이정헌-김준협 편집장, 인기 웹툰의 숨은 길잡이들

▲ 레진코믹스 이정헌 편집장(왼쪽)과 김준협 편집장

[레진의 꿈-③] 레진코믹스 이정헌-김준협 편집장, 인기 웹툰의 숨은 길잡이들

마츠다 나오코의 만화 ‘중쇄를 찍자’에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만화는 단순히 1인 창작만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다. 작가의 그림과 스토리의 방향을 고민하고, 만화의 성공을 위해 함께 뛰는 편집자들이 존재한다. 모든 문화 콘텐츠들이 그렇듯, 좋은 작품이 반드시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레진코믹스에는 만화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편집장(Chief Contents Producer)들이 존재한다. 거의 출판 만화와 동일한 수준의 편집장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레진코믹스의 색깔은 작가와 함께 이들이 함께 만들어간다. 실력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알리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웹툰이 단순한 인터넷 게시판 낙서가 아닌 산업으로 발전한 지금, 편집장들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들은 작가가 그리고 싶어 하는 것과 그려야 하는 것의 중간 지점을 안내하는 길잡이들이다. 만화를 보는 직업인 동시에 사람을 보는 직업이기도 하다.

레진코믹스의 이정헌 편집장은 애니북스 시절부터 독특하고 작품성 있는 만화들을 발굴해 왔고, 김준협 편집장은 학산문화사와 ‘재미주의’ 편집장을 거쳐 레진코믹스에 합류했다. 한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경쟁자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이제는 한 배를 탔다.

출판 만화 시절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준협: 출판 외에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마음가짐이나 느낌은 분명 다르다. 예전에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신인 작가를 레진을 통해 데뷔시키고, 함께 나아가는 입장이다. 작가들의 생계에도 도움을 줘야만 하는 위치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가 매우 크다.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이정헌: 뒷이야기를 보고 싶어 미치겠다면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재미라는 부분이 어떤 장르에서도 중요하다. 물론 캐릭터나 세계관의 설정, 그림, 대사, 스토리 등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처음 만화를 볼 때 먼저 보는 것은?
김준협: 아무래도 그림을 먼저 보게 된다. 독자가 만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선 그림, 후 이야기’니까. 다만 그림이 좋으면 이야기가 보게되고, 이야기가 좋으면 그림은 크게 보지 않게 된다. 대신 그림의 잠재력은 보인다. 현재 잘 그리는 작가보다, 성장하는 작가를 독자들도 좋아한다.

이정헌: 레진에 연재를 준비하면서, 연재 중간에 그림이 좋아지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다.

김보통 작가처럼 성장하는 것인가
김준협: 김보통 작가의 장점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만화가 중에서도 그림을 잘 그리는 분과 글을 잘 쓰는 분이 있는데, 김보통 작가는 후자다. ‘아만자’에서는 연출이 가장 중요한데, 특히 느린 시간을 상당히 잘 표현했다. 그림이 발전할 가능성도 봤다.

편집장들마다 작품을 보는 기준이 다르지는 않나
김준협: 총 4명의 편집장들이 있는데 성향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편집장들의 개성을 인정해 주는 편이다. 가끔 중요한 작품의 경우 4명이 동시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400명에 가까운 작가들과 소통하려면 업무량이 많을텐데
이정헌: 한 사람당 100명의 작가들을 관리하는데, 100명이 모두 연재중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업무량이 많은 편이기는 하다. 마감이나 작품의 퀄리티는 상시 이야기를 하고, 작품의 방향도 잡아나간다.

작가들과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
이정헌: 원래 카톡 이모티콘을 쓰지 않는데, 요즘은 자주 쓴다. “레진에 늘 화가 나 있는 PD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웃음). 소통은 거의 카카오톡이나 라인으로 하는데, 주로 카카오톡 PC버전을 활용한다.

김준협: 예전에는 만나는 작가가 10명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 많으니까 힘든 부분이 있다. 얼굴 보고 소통을 해도 힘든데, 얼굴을 안보고 해야 하는 게 힘들다.

작가들과 이야기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김준협: 어려운 게 낫다. 가끔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작가가 있다. 나중에는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편집자에게 물어온다. 작품이 편집자에게 넘어온 경우인데, 결과적으로는 작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작가가 고집이 있고 소통이 어려울 때 오히려 결과물이 좋아지더라.

이정헌: 단행본 시절, 출판사 여러 곳에서 접근했는데 퇴짜를 놓은 작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갑자기 우리 출판사와 계약하겠다고 한 거다.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당신만 요즘 내 연재물이 루즈해졌다고 욕을 해서”라고 답하더라(웃음).

김준협: 편집자는 적정한 수준의 개입을 통해 작가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작품이 인기를 얻어도, 너무 많이 개입했을 때는 “이게 내 작품이 아닌 것 같다”며 떠나가는 경우도 있다. 들이대도 문제고, 들이대지 않아도 문제다. 그 지점을 찾는 게 항상 어렵다.

이정헌: 작가를 격려한다고 좋은 말을 해 줬는데 “왜 이렇게 좋은 이야기만 하느냐”며 항의할 때도 있다.

김준협: 지적을 원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거꾸로 싫어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걸 잘 파악해야 한다. 때로는 연재 중인 이 작품이 망하더라도 응원만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그릴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작가들의 경우 저마다의 개성도 무척 강할 것 같다
김준협: 편집자에게 화를 내는 작가도 있지만,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가 싸우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편집자가 양쪽 다 설득하고 조율을 해 나가야 한다. 두 작가가 언제나 편집자를 통해서 의견을 나누지는 않으니까.

이정헌: 그럴 때 편집자는 황희정승 모드가 돼야 한다.

김준협: 사실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두 작가가 너무 친해도 쪼개지는 수가 있다. 오묘한 지점이다.

매출이나 트래픽이 작가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는 않는가
김준협: 작가들에게 “안보는 것은 좋지만 신경은 쓰시라”고 말한다. 레진에는 댓글이 없는데, 트래픽이 댓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DP 개의날’ 같은 경우 조회 수나 매출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좋았다. 그런 경우에는 가만히 놔 둬도 차츰 인기를 얻게 되더라.

편집장으로서 개인적인 고충이 있다면
이정헌: 일본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고래상어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원고를 보고 있었다. 작가들이 주말이라고 봐주시지는 않으니까. 주 1회 마감이면 어쩔 수 없다. 작가들도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서 휴가 갔다는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다.

김준협: 스마트폰 중독이 생겼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심각하다.

이정헌: 난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웃음).

만화 편집자를 꿈꾸는 이들도 많을 듯 하다
김준협: 예전부터 입사 지원서는 많이 받았다. 매력적으로 보일 직업이기는 한데, 현실과 꿈은 다르다. 좋아하는 만화만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만화 편집자를 필요로 하는 직장은 많지 않고, TO는 더 없다. 작가와 커뮤니케이션은 지금 우리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경험과 연륜이 필요한 직업이다.

최근 웹툰 산업이 뜨고 있음을 실감하는가
김준협: 만화학과를 나왔는데, 이런 전성기가 없었다. 사실 지금은 약간의 오버페이스가 느껴진다. 회사의 매출이 떨어져도 작가들의 대우는 유지를 해줘야 하니까. 실제로도 웹툰 사이트들이 고꾸라지는 경우도 많다. 작가들도, 우리도 열심히 뛰어야 할 때다.

이정헌: 독자들이 즐기는 장르나 작품들이 있다. 그런 만화의 인기가 올라간다면,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다. 물이 들어오면 배를 띄워야 하니까. 그래야 모두가 존속할 수 있다. 다만 그 균형점은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레진에 투고하는 신인작가들에게 바라는 점은
김준협: 개인적으로는 각이 있는 작품을 원한다. ‘DP 개의날’이나 ‘여자제갈량’ 같은. 사회 자체를 고발하거나, 보는 시선이 다른 작품이 왔으면 한다. 팁을 주자면, 요즘엔 분노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잘된다. ‘치즈인더트랩’ ‘단지’ ‘미생’ ‘송곳’ 같은. 반대로 행복을 다룬 작품이 좀처럼 뜨지 못하는 편이다. 보통 작가들이 작품의 장르만 고민하는데, 어떤 감정을 다룰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더 했으면 한다.

이정헌: 요즘 ‘사이다’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나. 진짜 시원하고 통쾌한 작품이 왔으면 한다. 픽션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최근 만화를 웹툰으로 보면서 독자들의 호흡이 매우 짧아졌다. 짧아진 독자의 호흡에 맞춰주는 작품이 필요하다.

본인의 인생 만화는 무엇인가
이정헌: ‘슬램덩크’. 예전부터 성장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연출이야 더할 나위 없고. 전 직장에서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 직원들과 만난 적이 있는데, 좋아하는 만화를 물어보기에 별 생각 없이 ‘슬램덩크’라고 말했었다(웃음).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라.(‘슬램덩크’의 출판사는 슈에이샤다)

김준협: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다. ‘H2’가 있음에도 ‘러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케이스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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