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성 대표, ‘만들어지지도 않는 웹툰’ 연재 부탁...40명 흔쾌히 계약서 사인

[레진의 꿈-①] 한희성 대표, ‘만들어지지도 않는 웹툰’ 연재 부탁 계약서 사인

“사랑한다 아스카. 사랑한다고!!”

매년 12월 4일마다 ‘에반게리온’ 아스카의 생일을 축하하는 ‘오덕(오타쿠) 블로거’가 있었다. 그의 블로그는 우주의 재미있는 것들을 죄다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애니메이션과 영화, 음악 이야기는 물론 여자 연예인과 일본 AV(성인물비디오) 배우들의 근황까지. 먼 훗날 블로그라는 미디어가 인류 역사에 이바지한 사례를 나열한다면, 반드시 포함될 블로그가 될지도 모른다.

블로그 주인장의 이름은 ‘레진’.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만든 한희성 레진엔터테인먼트 대표의 필명이다. 그는 전문 지식인도, 명문대 졸업생도 아닌 순수한 오덕이었다. 직접 창업한 레진엔터테인먼트가 사실상 그의 첫 직장이다. 블로그에는 아직도 그가 처음 웹툰 사업을 구상하고 구인광고를 내던 글들이 남아있다(아스카에 대한 사랑도 남아있다).

“이 나이에도 아스카와 레이 이야기로 밤을 샐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을 위한 진지한 만화 사이트를 구상했다. 이름하야 레진코믹스. 만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하고, 영화처럼 만화를 익숙한 대중문화가 되게끔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창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약(?)을 팔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만 알고 지내던 개발자들을 찾아가 사이트 개발을 부탁하고, 인기 웹툰 작가들에게는 일일이 메일을 보냈다. 1년 동안 그가 한 일은 인기 웹툰 작가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들어지지도 않는 웹툰 플랫폼에 연재를 해달라며 계약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 오덕 백수가 파는 약에 많은 작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 웹툰 작가 40명이 그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끝냈다. 이 40명의 작가들의 계약서를 바탕으로 레진코믹스는 직원을 뽑고 투자를 받아 서비스에 돌입한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일어난 일이다.

레진코믹스 웹툰의 초반부는 무료로 보지만, 후반부를 계속 보고 싶다면 일정 시간을 기다리거나 유료로 결제해야 한다. 이러한 모델은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났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나 ‘몬스터’를 몇 장씩만 야금야금 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고, 드라마를 한 방에 몰아봤을 때의 쾌감은 해 본 사람만이 느낀다. 무료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모바일게임 ‘클래시오브클랜’이나 ‘붐비치’에 돈을 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나 다음 웹툰에 대중적인 만화만 연재하던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것도 독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서.

레진코믹스는 그러한 플랫폼이었다. 초창기 40명으로 출발했던 레진 작가들의 수는 이제 400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2015년 12월 현재 레진코믹스에서 서비스 중인 만화 수는 총 1378편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만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 콘텐츠 배급사다. 회사가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들이 꾸는 꿈은 짐작 가능하다. 이 회사는 과거 레진이 운영하던 블로그가 성장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세상의 온갖 재미있는 것들을 블로그에 펼쳐놨었다. 그가 보기에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차고 넘쳤다. 웃고 즐기기만 해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는데, 이상하게 친구들은 그러한 것들을 찾기 어려워했다. 보다 못한 그가 친구들을 위해 만든 것이 블로그였다. 재미있는 것들을 죄다 모아놓았으니 와서 실컷 구경하라고. 레진은 지금도 그렇게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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