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출시 예정 ‘오리너구리’ CEO로 새 인생 도전

참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여전히 구릿빛의 건강미가 물씬 풍겼다. 처음 만났던 5년 전 직장인 야구클럽 선수로 맹활약을 자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또 틈나면 기타 연주를 즐기던 취미도 달라지지 않았다.

2년 전 블리자드의 대만·홍콩·마카오 법인을 총괄하는 북아시아 본부 대표를 떠났던 한정원 사장(43). 그의 잠수는 제법 길었다. 그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연락이 왔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다.

그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에 꽂혔다”. 미국에 직접 가서 6개월 SNS의 흐름을 파악해 왔다. 그리고 12명이 모여 '오리너구리(Platypus) 네트워크’라는 회사도 만들었다. 대학의 동문들을 위한 멘토미(mentome)를 포함해 SNS도 2개나 만들었다.

그는 “2년 동안 가장 많이 접한 것이 위치기반 서비스 포스퀘어(Foursquare)다. 하루 3회, 2780번 체크를 하고 103명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분석을 해보니 한국은 아직 SNG(소셜네트워크 게임)에 접근-참여하는 것이 어렵다. 글쓰는 것도 부담이다. 또 내용도 정치-연예에 치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가령 음식점을 다룬 소재는 누구나 가볍고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으로 통해 제가 SNG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 무슨 말이지 알겠다. 그는 내년 초 SNG를 선보인다. 주타겟은 20~30대 여성이다. 온라인처럼 계속 콘텐츠를 관리하는 게임이다.

1996년 게임업계에 입문한 1세대였고, ‘왕고참’이면서 한국게임계의 슈퍼스타 중 하나인 한정원 사장. “LG 빼고 EA와 블리자드 등 외국회사의 월급쟁이”이었던 그는 이제 자기가 설립한 플래티퍼스 네트워크의 CEO다. “그동안 지내왔던 회사들, 특히 자기가 설립하고 키웠던 블리자드 코리아가 새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었다"는 그는 여전히 밴드 공연도 하고, 주말에는 야구장에 나선다. 그 남자가 사는 법을 들어봤다.

멘토미에 한정원 대표가 자신을 소개한 모습.
■ “게임사는 절대 못하는 SNS 요소 특화”

그가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가 올해 선보인 멘토미(mentome)다. 처음에는 그의 출신 대학인 연세대 동문끼리 취업, 고민, 연애 상담 등을 멘토링해주는 앱이다. 이제 고려대 등 다른 대학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멘토링 신청을 하고 음악, 고민 등을 '별추천'을 해주는 상담이 이어진다. 

그는 2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콘솔 유통(LG)과 온라인과 콘솔 퍼블리싱(EA와 블리자드)의 전문가였던 그는 온라인게임은 아예 안했다. 그리고 모바일에 올인했다. 특히 “SNS에 꽂혔다”. 1995년 처음 게임업계 입문할 때 부모님에게 “너 미쳤니?”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바일 라이프사이클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라고 확신한다.

그가 생각하는 모바일, 특히 SNS는 남들과 다르다. 가령 ‘위룰’ 같은 SNG는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초대한다. 다른 SNG 게임도 모두 위룰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는 “위룰 류는 진정한 SNG가 아니다. SNS는 투자를 하지만 매출이 없다. 그래서 게임사들은 SNS에 뛰어들지 못한다”라고 역설했다. 현재 그가 개발중인 SNG는 “세상의 모든 장소가 소셜 놀이터가 되는 것, 고기집이나 이자까야, 대학교 등 모두 방문한 곳에서 토이 게더링(장난감 수집), 소셜놀이터와 토이가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다. 온라인게임처럼 계속 콘텐츠 관리가 필요한 SNS다."

플래티퍼스 네트워크 홈페이지

멘토미를 직접 보여주는 한정원 대표.
■ “포스퀘어 같은 위치기반 소셜 네트워크”

그에게 모바일 커뮤니티는 장소가 가장 중요하다. 가령 유저가 빌딩에 들어가 게임을 할 경우 그 안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서로 사진을 올리거나 멘트를 하면서 서서히 가게가 변한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친해지는 과정으로 진화한다. 

그는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라.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았다. 지금은 식당이나 술집에 사람들이 모인다”며 “이곳이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이런 사람들이 왔구나 등 기존 SNS 콘텐츠가 이미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한정원이 다녀갔다’는 단순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한정원이 여기까지 다녀갔네요’는 친구들에게 '굿' 이라는 호응의 클릭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장소에 대해 게임 요소는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가령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의 세일 비교 등 ‘유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어느 곳,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 소식이 살아넘치는 소셜 놀이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스타벅스만 가는 나에게 문득 껑충토끼가 와서 쪽지를 건네왔다. '원두가 기가 막힌 모닝선셋을 가보세요!'라는 정보를 전해오면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는 “포스퀘어가 게임성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커뮤니티 요소로 보면 트위터보다 더 낫다. 솔직히 장소 소개하는데 트위터의 180자도 많다”고 생각한다.

SNS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한정원 대표.
■ “모바일 사이클은 상상조차 몰랐던 빠름”

그는 LG에 입사 후 EA와 블리자드 등 외국회사를 거쳤다. 그는 “나는 운이 좋았다. 남보다 기회가 많았다. 또 경제적 자유도 얻었다. 생활패턴에 큰 변화가 없지만 장기적 계획을 짤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모바일게임 분야에 창업한 지금은 삶의 사이클이 빠르다.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속도다. 이제 느리면 답답할 정도다. 모바일의 개발 사이클은 온라인게임이나 콘솔 게임과 다르다.

가령 블리자드 시절 ‘스타크래프트2’를 출시 전후에는 지하철에 가서 반응을 들어보면 가장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업그레이드를 빠르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는 SNS 개발에 몰두하느라 올해 지구촌을 뒤흔든 ‘디아블로3’도 해봤다고 고백했다. 그는 "'디아블로3'가 그동안 게임을 안하던 게이머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에 대해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한정원 대표.
한 대표의 블리자드 출신의 DNA는 ‘오리너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QA에 가장 중요하고 “무조건 재미있고, 완성도에 목숨을 건다”던 과거 블리자드 시절 기자에게 설파했던 말을 다시 들었다. 그는 “블리자드 모하임 사장이 영원히 멘토이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는 내년 초에 재미있고, 탁월한 완성도로 무장한 ‘한정원표’의 SNS를 들고 올 것이다. 게임에서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디아블로3’ 마법처럼 이 당대 게임업계 슈퍼스타는 어떤 모습으로 귀환할지 무척 궁금해졌다.

 한경닷컴 게임톡 박명기 기자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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