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악플러를 위한 변명

댓글은 민주주의의 한 키워드다. 야당으로부터 `댓글삼매경`이란 비판을 받는 대통령도 댓글을 달고, 메이저리그 박찬호도 댓글을 쓴다. `난폭자` 초등학생도, 시골 촌부도 댓글에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본디 e세상은 `심심닝닝`한 것을 싫어한다. 화들짝 놀라거나 엽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해주는 것이 아니면 쉽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제목은 섹시, 스토리는 말랑말랑, 사건은 황당무계해야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까이꺼 대충 클릭 한번 해`준다. 또 하나, 누리꾼은 `댓글에 살고 댓글에 죽는다`.

이제 세상의 모든 소란과 화제는 기존 뉴스 생산자의 일방적인 제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댓글의 쌍방향 소통에서 나온다. "안티가 있어야 진정한 스타"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 권력을 창출했다는 인터넷 문화, 그 중에서도 댓글에 페널티가 주어졌다. 악성댓글(악플)을 양산하는 악플러 때문이다.

지난 번 한국과 덴마크의 칼스버그컵 결승전 기사에는 수 천개의 댓글이 붙었다. 상당수는 적나라한 욕설과 특정인에 대한 비방이었다. 2년 만에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한 이승연은 악성 댓글에 "가슴이 섬뜩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엔 임수경 씨 아들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올린 14명이 벌금 100만 원씩에 약식 기소됐다. 가수 비의 라디오 괴담에 관련된 악성 댓글을 유포한 중학생 누리꾼에 대한 검찰 조사도 있었다.

이처럼 미꾸라지가 연못물을 흐리듯이 욕설과 비방을 일삼는 상당수의 악플을 보면 인터넷 댓글문화는 오염될 대로 오염된 듯 보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악플은 극소수의 누리꾼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마음 놓고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인격을 깔아 뭉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카더라식 괴담, 여론 조작이 도를 넘어 테러수준이다 보니 공권력이 나섰고, 같은 누리꾼들도 80% 이상이 처벌에 찬성했다. 각 포털들은 악플 신고, 추천글 상단 배치 등 대대적인 악플 퇴치에 나섰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악플러보다는 `선(善)플러`가 훨씬 많다. 또한 악플러가 비비 꼬이고 요상하게 생긴, 다른 세상으로부터 불시착한 것 같은 외계인도 아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가학적 중독상태에 빠져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상처 입고 덫에 걸린 사람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이동한 것이란 어느 석학의 진단은 탁견이다. 인터넷이 등장, 수평사회로 고속질주하는 와중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악플러다. 그들은 본디부터 악플러이기보다는 팽팽 돌아가는 광속의 변화 속에서서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다. 선플러들도 때로 독도문제나 황우석 사태 같은 회호리에 애국주의적으로 댓글을 달며 열광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는 소통이다. 악취 나는 인터넷의 바다를 정화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플러들의 자체 정화 노력이다. 실명제, 좋은 댓글 마일리지, 악플 추방 캠페인 등의 노력이 먼저다. 처벌의 칼은 최악의 경우에 빼들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댓글 문화를 제대로 다듬어낼 책임은 선플러와 악플러 모두의 몫이다.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일간스포츠 2006.02.09

 
댓글은 민주주의의 한 키워드다. 야당으로부터 `댓글삼매경`이란 비판을 받는 대통령도 댓글을 달고, 메이저리그 박찬호도 댓글을 쓴다. `난폭자` 초등학생도, 시골 촌부도 댓글에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본디 e세상은 `심심닝닝`한 것을 싫어한다. 화들짝 놀라거나 엽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해주는 것이 아니면 쉽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제목은 섹시, 스토리는 말랑말랑, 사건은 황당무계해야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까이꺼 대충 클릭 한번 해`준다. 또 하나, 누리꾼은 `댓글에 살고 댓글에 죽는다`.

이제 세상의 모든 소란과 화제는 기존 뉴스 생산자의 일방적인 제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댓글의 쌍방향 소통에서 나온다. "안티가 있어야 진정한 스타"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 권력을 창출했다는 인터넷 문화, 그 중에서도 댓글에 페널티가 주어졌다. 악성댓글(악플)을 양산하는 악플러 때문이다.

지난 번 한국과 덴마크의 칼스버그컵 결승전 기사에는 수 천개의 댓글이 붙었다. 상당수는 적나라한 욕설과 특정인에 대한 비방이었다. 2년 만에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한 이승연은 악성 댓글에 "가슴이 섬뜩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엔 임수경 씨 아들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올린 14명이 벌금 100만 원씩에 약식 기소됐다. 가수 비의 라디오 괴담에 관련된 악성 댓글을 유포한 중학생 누리꾼에 대한 검찰 조사도 있었다.

이처럼 미꾸라지가 연못물을 흐리듯이 욕설과 비방을 일삼는 상당수의 악플을 보면 인터넷 댓글문화는 오염될 대로 오염된 듯 보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악플은 극소수의 누리꾼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마음 놓고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인격을 깔아 뭉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카더라식 괴담, 여론 조작이 도를 넘어 테러수준이다 보니 공권력이 나섰고, 같은 누리꾼들도 80% 이상이 처벌에 찬성했다. 각 포털들은 악플 신고, 추천글 상단 배치 등 대대적인 악플 퇴치에 나섰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악플러보다는 `선(善)플러`가 훨씬 많다. 또한 악플러가 비비 꼬이고 요상하게 생긴, 다른 세상으로부터 불시착한 것 같은 외계인도 아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가학적 중독상태에 빠져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상처 입고 덫에 걸린 사람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이동한 것이란 어느 석학의 진단은 탁견이다. 인터넷이 등장, 수평사회로 고속질주하는 와중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악플러다. 그들은 본디부터 악플러이기보다는 팽팽 돌아가는 광속의 변화 속에서서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다. 선플러들도 때로 독도문제나 황우석 사태 같은 회호리에 애국주의적으로 댓글을 달며 열광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는 소통이다. 악취 나는 인터넷의 바다를 정화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플러들의 자체 정화 노력이다. 실명제, 좋은 댓글 마일리지, 악플 추방 캠페인 등의 노력이 먼저다. 처벌의 칼은 최악의 경우에 빼들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댓글 문화를 제대로 다듬어낼 책임은 선플러와 악플러 모두의 몫이다.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일간스포츠 200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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