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58. 이정엽 ‘이야기되는 해외 모바일 인디’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58. 이정엽 ‘이야기되는 해외 모바일 인디’

한국에서 모바일 게임은 장르의 편중 현상이 매우 심한 편이다. 특정 장르가 한 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유형의 게임이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인디 쪽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한내 모바일 인디 게임은 실제 인디 게임이 가져야 할 정체성의 문제보다는 수익성과 자본의 규모에 의해 스스로를 규정해 왔다. 그래서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개발자의 철학이 갖춰진 팀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퍼블리셔나 VC 같은 투자자의 입김이 들어가게 되면, 개발자가 애초에 의도했던 독창적인 부분들은 많이 깎여져 나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모바일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자신의 철학이나 취향보다는 유저와 퍼블리셔, 투자자의 요구 사항을 우선하여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모바일 인디 게임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바일 게임은 입력 시스템의 제약과 하드웨어의 한계 때문에 볼륨이 크고 서사구조가 장대한 게임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좌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국 유저들과는 달리 북미와 유럽의 게이머들은 자국의 개발자들이 지금까지 시도해왔던 AAA 게임의 서사지향성을 모바일 게임에서도 구현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최근에 나온 몇몇 실험적인 시도들은 모바일 인디 게임에서도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더군다나 오늘 소개할 게임들은 모바일 하드웨어의 제약을 새로운 메커니즘의 개발을 통해 극복하면서 또 하나의 전범을 만들고 있다.

「80 Days(Inkle, 2014)」출처: https://itunes.apple.com
영국 케임브리지에 거점을 둔 인디게임 스튜디오 인클(Inkle)에서 만든 ‘80 Days’는 올해 GDC 올해의 게임상 중 최고 내러티브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바탕으로 이를 확장한 게임이다.

이전에 쓴 칼럼에서 이 게임을 한 번 소개한 적 있지만, 실제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이 게임이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원작에서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세계일주를 한 경로는 ‘런던-수에즈-뭄바이-콜카타-홍콩-요코하마-샌프란시스코-뉴욕-런던’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이를 확장하여 150개 이상의 도시를 경유하는 경로를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구성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필리어스 포그가 지나간 경로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가보고 싶어 3회차 플레이 때 파리를 거쳐 북구로 올라가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를 횡단하는 코스를 선택해보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도중에 거치는 도시가 별로 없어 일정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들이 자주 발생했고 하인 파스파르투의 재치로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역을 자주 할 수 없어 여행 경비가 모자라는 낭패를 겪었다.

이처럼 장대한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해 게임은 내부 서사를 매우 잘게 쪼갠다. 게임의 진행은 주로 특정 도시에서 만난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데, 이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대화의 선택지를 골라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실제 원작보다 확대되어 50만 단어 이상의 원고 분량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수많은 원고를 진행해 나가는 것은 작은 단위로 쪼개진 대화형 서사들이다. 이 작은 단위의 서사들은 일방향으로 하나의 플롯으로만 뭉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대화에 따라 여러 갈래의 플롯으로 분화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프레임드(Loveshack, 2014)」출처: https://itunes.apple.com
일본 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란 책에서 일본 오타쿠 문화를 분석하면서 근대를 대표하던 “큰 이야기”들이 쇠퇴하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잘게 쪼개진 “작은 이야기”들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루는 현상을 분석한 바 있다.

물론 아즈마 히로키의 논리에는 큰 이야기가 내포하는 ‘이데올로기적 거대서사’에서 ‘거대서사’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모바일 인디 게임에 스며든 작은 서사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영향을 끼치기 위한 이데올로기는 거의 찾을 수 없지만, 그 작은 이야기가 앞뒤로 연결된 플롯에게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능동적인 존재로서의 작은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게임이 ‘프레임드(Framed)’이다. 호주에 기반을 둔 3명의 남자가 꾸린 작은 인디게임 스튜디오 ‘러브색(Loveshack)’에서 만든 이 게임은 영화의 씬처럼 보이는 작은 프레임들을 상하좌우로 옮기면서 작중 캐릭터가 감시의 눈을 피해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다.

여기에서 이 작은 프레임들은 이른바 ‘큰 이야기’를 추동하지는 못하지만,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역할을 하면서 작중 캐릭터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작은 모티프 역할을 하게 된다. 미리 만들어져 있는 영화의 프레임처럼 보이는 이 작은 서사들이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능동적인 모티프로 변화하면서 플레이어는 이 속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메커니즘을 보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디바이스 6(Simogo, 2013)」출처: https://itunes.apple.com
마지막으로 언급할 ‘디바이스 6(Device 6)’는 얼핏 보기에는 ‘이게 게임이야?’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전자책에 가까운 형태를 지녔다.

스웨덴 남쪽 말뫼에 둥지를 튼 시모고(Simogo)에서 개발한 이 게임같지 않은 작품은 겉으로 보면 인터랙티브 픽션이나 하이퍼텍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텍스트를 따라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플레이어는 텍스트가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글자 그 자체가 물리적인 공간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수께끼로 가득 찬 큰 저택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글자가 곧 지도의 역할을 하면서 기존의 읽기 방식을 비튼다. 플레이어는 때로는 세로 읽기 방식으로, 때로는 글자의 방향을 따라 직각으로 저택의 곳곳을 누비면서 텍스트의 방향을 기억하면서 저택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나가야 한다.

이처럼 해외 모바일 인디게임들은 기존 모바일 게임에서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스토리 중심적인 게임을 참신한 메커니즘을 통해 선보이면서 모바일 게임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한국 모바일 게임 유저들이 이러한 장르를 싫어한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자. 이미 장르가 고착화되어버린 한국 모바일 인디 게임을 자본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인디라 부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발자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장르의 게임을 꾸역꾸역 만드는 것을 인디 정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경닷컴 게임톡 이정엽 객원기자 elises@snu.ac.kr

■이정엽은?

198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과 아버지가 사주신 애플 ][e와 북미판 닌텐도를 시작으로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7년째 게임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개설해 왔다.

이 수업들을 통해 제자들의 스타트업을 장려하고 후원하고 있다. 현재 모바일 게임회사 엑스몬게임즈의 감사 겸 서울대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연구교수 및 카이스트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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